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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크눌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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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jongdar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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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작은 물건과 엉뚱한 질문에서 역사를 시작하려 합니다. 기록을 따라가며 오래전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들여다볼 생각입니다. 저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길...</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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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7-01T05:39:2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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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amp;middot;1운동7)아이들도 거리에 나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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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8T23:00:23Z</updated>
    <published>2026-10-08T23:00:23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9년 3월 25일 오후 서울 종묘 앞에서 태극기를 든 걸인의 뒤를 따라 만세를 외친 사람들은 어른들이 아니었다. 『매일신보』는 그들을 &amp;lsquo;아동&amp;rsquo;이라고 적었다. 숫자는 약 마흔에서 쉰 명이었다. 그래서 기사 제목이 「선두는 걸인, 군중은 아동」이었다.  그런데 다른 지역의 기록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거리로 나온 일이 종묘 앞에서만 있었던 특별한 사건은 아니&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9-IIQBlfAXKfwov-gI41IQnwjZ4.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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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제 사람들도 요강을 썼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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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7T23:34:55Z</updated>
    <published>2026-10-07T23:34:55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강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할머니 댁 장롱 옆에 놓여 있던 놋요강이나, 밤중에 화장실에 가기 귀찮을 때 사용하던 작은 단지 같은 것이 떠오를 것이다. 요즘에는 거의 볼 수 없는 물건이지만, 요강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무려 백제에도 요강이 있었다.  백제 사람들은 이 물건을 조금 특별한 이름으로 불렀다. 호자(虎子)였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3zP6WE5SnkeH8ZH0qozKV12Xzyg.jpg" width="477"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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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amp;middot;1운동6)김향화,&amp;nbsp;이름이 남은 민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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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6T23:48:11Z</updated>
    <published>2026-10-06T23:48:11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9년 3월 29일, 수원에서는 조금 특별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그날 수원 기생조합의 기생 30여 명이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자혜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식민지 시기 기생들은 조합에 소속되어 활동했고 경찰과 행정기관의 관리 아래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야 했다. 평소 같았다면 특별할 것이 없는 길이었다.  그런데 경찰서 부근에 이르렀을 때 그 일상은 만세&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weH3c3J6kmxry0-Z9FLl_RufZhk.jpg" width="3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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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옛날 화장실에는 귀신이 살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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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6T00:26:59Z</updated>
    <published>2026-10-06T00:26:59Z</published>
    <summary type="html">화장실에 귀신이 산다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으스스한 이야기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불을 끄고 혼자 들어갔는데 거울 뒤에서 귀신이 나타난다든가, 변기 안에서 손이 올라온다든가 하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에게 화장실에 귀신이 산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집 안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었고, 집터에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h6oXCahkQJcUOFP9pl9Y_A6bL9U.jpg" width="408"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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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이이야기3)한 장의 종이는 몇 번이나 다시 쓰였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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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4T14:33:29Z</updated>
    <published>2026-10-04T14:33:29Z</published>
    <summary type="html">종이는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었다. 조선에서는 종이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고, 국가에서 사용하는 종이는 백성의 부담과 연결되기도 했다. 그러니 쓰임이 끝난 종이를 쉽게 버리기보다는 다시 활용할 방법을 찾는 일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실제 기록을 따라가 보면 종이는 여러 모습으로 다시 쓰였다. 어떤 종이는 기록을 없애기 위해 물에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p8MnEhKvL6edkzQVbanFXFtw4ZU.png" width="283"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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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amp;middot;1운동5)진주, 여러 민중이 한꺼번에 등장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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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2T05:11:47Z</updated>
    <published>2026-10-02T05:11:47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9년 3월 18일, 진주는 장날이었다. 낮 동안 많은 사람이 만세시위에 참여했고 그날의 움직임은 저녁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자료에는 저녁 무렵 &amp;lsquo;노동독립단&amp;rsquo;이라는 이름의 시위대가 등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약 두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이름이 나타났다. &amp;lsquo;걸인독립단&amp;rsquo;.  낯선 이름이다. &amp;lsquo;독립단&amp;rsquo;이라고 하면 흔히 조직적인 비밀결사나 무장단체를 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uM5gM7ISr6ZoZg7oJsYgW9Kvkeg.jpg" width="4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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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이이야기2)조선 시대의 종이 - - 조선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 종이를 필요로 했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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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1T00:23:36Z</updated>
    <published>2026-09-30T23:44:17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선의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한 가지가 궁금해진다. 그렇게 많은 노동을 들여 만든 종이를 조선 사람들은 어디에 사용했을까? 종이는 책을 만드는 데만 쓰이지 않았다. 나라의 행정을 움직이는 문서가 되었고, 과거시험의 답안지가 되었으며, 장례와 의례에도 사용되었다. 사람들의 집 안에서는 편지를 쓰고 보관하는 생활용품이 되기도 했다.  종이가 많이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V-1a26FAs3j1eIEtqCLeJztyZ00.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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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amp;middot;1운동4)장터가 만세의 무대가 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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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23:49:46Z</updated>
    <published>2026-09-29T23:49:46Z</published>
    <summary type="html">장날은 원래 사람들이 살아가는 날이었다. 며칠 동안 모아둔 곡식을 내다 팔고, 소금을 사고, 농기구를 고치고, 멀리 사는 친척이나 이웃의 소식을 듣는 날이었다. 평소에는 서로 다른 마을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였다가 다시 각자의 마을로 돌아갔다. 그래서 장터에는 물건만 모이지 않았다. 사람도 모였고, 소문도 모였다.  1919년 봄, 바로 그 장&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6C3r9MeHJYcsRKIe2Ack6NadyrQ.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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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amp;middot;1운동3)만세 소식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해졌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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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9T23:47:19Z</updated>
    <published>2026-09-29T23:42:03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9년 3월, 조선 사람 모두가 신문을 읽었던 것은 아니다. 독립선언서를 직접 본 사람도 많지 않았다. 더구나 신문과 공식적인 보도는 총독부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만세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가장 중요한 길은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서울에서 직접 시위를 보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누군가는 독립선언서나 격문을 가지고 기차를 탔다. 다른 지역에서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daKJ-HNpZ09O1QBn-SoYrRGIAfM.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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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달동네 사람들은 똥을 어디에 눴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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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8T23:22:01Z</updated>
    <published>2026-09-28T23:22: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즘은 집에 화장실이 없는 집을 상상하기 어렵다.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화장실은 당연히 집 안에 있다. 문을 닫으면 나만의 공간이 된다. 밤에 가고 싶으면 그냥 일어나서 가면 되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다. 그런데 불과 몇십 년 전 서울의 모습은 지금과 꽤 달랐다. 특히 산비탈이나 하천 주변에 만들어진 판자촌에서는 집 안에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많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Y7JEa22wA-vsW35HqZdWIMZDSGw.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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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지가이끈3&amp;middot;1운동2)3&amp;middot;1운동은 누구의 운동이었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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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8T23:11:21Z</updated>
    <published>2026-09-28T23:11:21Z</published>
    <summary type="html">3월 1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세가 터져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사람들은 학생과 종교계 인사들이었다. 독립선언서를 준비한 민족대표들이 있었고, 거리에서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실제로 여러 지역에서 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3&amp;middot;1운동을 떠올리면 흔히 민족대표와 학생, 지식인과 종교인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qz4JeVgjiLa7yLz23u8gFmhQPgw.jpg" width="484"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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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이이야기1)조선의 종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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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6T04:22:43Z</updated>
    <published>2026-09-26T04:22:43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즘 종이는 너무 흔하다. 종이를 한 장 쓰고 버리는 일도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종이는 지금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종이 한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닥나무를 기르고 거두는 일부터 시작해 껍질을 벗기고 삶고 씻고 두드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여기에 종이를 직접 뜨는 사람들의 노동까지 더해졌다. 그렇다면 조선의 종이는 도대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FeKselSjqU2JtvEmSjy9TLkDsck.JPG" width="33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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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똥은 언제부터 오물이 되었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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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6T04:08:46Z</updated>
    <published>2026-09-26T04:08:46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똥을 보면 당연히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면 끝이다. 거리나 집 주변에 똥이 쌓여 있다면 더럽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그것을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도 똥이 지금처럼 &amp;lsquo;버려야 할 것&amp;rsquo;이었을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꼭 그렇지는 않았다. 조선시대 농부들에게 똥은 더러운 것이면서 동시에 꽤 귀한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7zSSXFBDAiC9KpIF0zy0v8JonQE.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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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지가 이끈 3&amp;middot;1운동1)서두는 걸인, 군중은 아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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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4T23:00:26Z</updated>
    <published>2026-09-24T23:00:26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9년 3월 28일, 『매일신보』에는 눈길을 끄는 짤막한 기사가 하나 실렸다. 제목은 「선두는 걸인, 군중은 아동 ― 색다른 소요자」였다. 기사가 전한 사건은 사흘 전인 3월 25일 서울 종묘 앞 큰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오후 3시쯤 한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나타났고, 『매일신보』는 그의 이름을 기록하는 대신 &amp;lsquo;거지&amp;rsquo; 또는 &amp;lsquo;걸인&amp;rsquo;이라고 불렀다. 그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clLCQITLCZSFrFhPV09YjJ2_i6M.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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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똥을 치우는 사람이 왜 선생이 되었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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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6T04:04:28Z</updated>
    <published>2026-09-24T14:50:40Z</published>
    <summary type="html">똥을 치우는 사람을 &amp;lsquo;선생님&amp;rsquo;이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실제로 똥을 치우는 사람에게 &amp;lsquo;선생&amp;rsquo;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 있었다. 연암 박지원이다. 그는 한양에서 똥을 치우며 살아가던 한 사람을 가리켜&amp;nbsp;&amp;lsquo;예덕선생(穢德先生)&amp;rsquo;이라고 불렀다. 예(穢)는 &amp;lsquo;더럽다&amp;rsquo;는 뜻이고, 덕(德)은 말 그대로 &amp;lsquo;덕&amp;rsquo;을 뜻한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VtLJTsDzkDyzcNor89x8O9sN2Kk.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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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신부9)사진신부의 시대는 왜 끝났을까 - - 사진으로 이어진 이주의 시작과 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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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4T14:32:06Z</updated>
    <published>2026-09-24T14:32:06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인 사진신부의 이주는 오래 지속된 제도가 아니었다. 1910년 무렵 시작되어 1924년까지 이어진, 비교적 짧은 시기의 이주였다. 그 배경에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와이 한인사회의 남녀 불균형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사이의 이민정책이 함께 놓여 있었다. 1908년 미국과 일본의 신사협정으로 일본인 노동자의 새로운 이민은 제한되었지만, 이미 미국에 살고 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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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신부8)사진 한 장이 남긴 것 - -&amp;nbsp;사진신부의 삶은 그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겼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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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2T23:15:43Z</updated>
    <published>2026-09-22T23:15:43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진신부들이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가장 급한 문제는 당장의 생활이었다. 어디에서 살 것인지, 무엇을 먹고살 것인지, 남편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낯선 사회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가 눈앞의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만든 가정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자라기 시작했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미국은 부모처럼 새로 적응해야 하는 낯&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yd2CRJGnABgWcKOHrATRb4B3Hu0.jpg" width="24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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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양의 똥은 어디로 갔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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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2T00:33:04Z</updated>
    <published>2026-09-22T00:33: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래의 글은 9.12일자 게시물을 브런치북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기본 내용은 같으니 이미 읽으신 분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는 똥도 많이 나온다. 조선시대 한양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으니 매일 상당한 양의 분뇨가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하수도가 있던 것도 아니고, 화장실에서 물을 내릴 수도 없었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Eao2n4QtFOMh1wGrgYVMebUdDco.jpg" width="4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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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신부7)함께 모이고, 함께 살아가다 -  - 생활 공동체가 사회활동으로 넓어지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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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2T00:11:50Z</updated>
    <published>2026-09-21T23:41:34Z</published>
    <summary type="html">농장을 떠나 도시로 나온 사진신부들에게 달라진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도 바뀌었다. 농장에서는 남편과 가족, 같은 캠프의 한인들이 생활의 중심이었다면, 도시에서는 가게와 일터, 교회, 자녀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같은 처지의 여성들끼리 생활정보를 나누고, 돈이 필요할 때 서로 돕거나 계를 만들어 자금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1tETv_d50Chy7yX-X3pKSllXQvE.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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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시대 사람들은 똥을 버리지 않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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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1T04:00:08Z</updated>
    <published>2026-09-21T03:59:44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래의 글은 9.11일자 게시물을 브런치북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기본 내용은 같으니 이미 읽으신 분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람은 매일 똥을 눈다. 오늘도 그렇고, 조선시대 사람들도 그랬다. 그런데 조선시대 농부들에게 똥은 지금처럼 그냥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농사를 지을 때 꼭 필요한 거름이었다. 세종 때 편찬된 농서 《농사직설》을 보면 척&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cHdk%2Fimage%2FNknf9MOIwat06zRsV_YWhGtuBbE.jpg" width="3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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