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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육아하는 수학교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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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ksangu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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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경북 지역의 16년 차 공립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자 사남매의 아빠 입니다.^^ 40대에 접어드는 시기에 글이 좋아 작가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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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9-15T22:56:5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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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맹모삼천지교의 본질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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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01T14:13:26Z</updated>
    <published>2026-08-01T14:13:26Z</published>
    <summary type="html">맹모삼천지교를 통해 보통사람들은 맹자만 쳐다본다. 사실 중요한 건 엄마의 역할이다. 맹모의 역할은 현대를 살아가는 엄마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것은 맹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맹모는 맹자를 위해 특별한 것을 한 게 아니다. 단지 환경에 따른 아이의 반응에 의해 환경을 바꿨을 뿐이다. 그것이 후세에 큰 의미 해석으로 바뀐 것이 다 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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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필로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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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0T03:00:00Z</updated>
    <published>2026-07-20T03:00:00Z</published>
    <summary type="html">끝분이 누나라는 상징적인 단어를 시작으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써보았습니다. 사실 어머니의 관점에서 흘러오는 전체적인 70여 년에 가까운 이야기를 써보면서 근현대사의 내용을 조금씩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제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 세대들의 삶이 이렇게 흘러왔다는 것을 보며 가족애를 더욱 키우기를 바라는 것입</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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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 시작하는 건태에서의 삶</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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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0T02:00:00Z</updated>
    <published>2026-07-20T02:00:00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렇게나 늘 쉴 틈 없이 바삐 살아오시던 어머니는 환갑육아를 버티고도 또 다른 삶을 고민하셨다. 부지런함이 몸에 베여서 그런지 아직도 조금 남은 대출금을 갚고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그러신 지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어머니는 육아를 끝으로 다시금 할 일을 고민하셨다. 그즈음 아버지도 옥산동의 한 아파트를 시작으로 대구 시지에서의 십 년이 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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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엄마의 환갑 육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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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7T02:00:00Z</updated>
    <published>2026-07-17T02:00:00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 서너 명을 키우면서 육아를 시작하셨다. 그렇게 커오시면서 아버지를 만나 생각지도 못했던 육 남매를 키우며 치열하게 육아와 노동을 하시며 살아오셨다. 그 긴 시간들이 어머니에게는 이제 지치게 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큰누나를 시집보내며 스스로 당부한 바가 있었다고 한다. 줄줄이 딸들이 시집가면 분명 그 아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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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엄마의 꿈 2층 양옥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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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5T02:00:00Z</updated>
    <published>2026-07-15T02:00:00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느새 우리 육 남매는 부쩍 한해 한해 자라면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그리고 대학교로 한 명씩 진학하기 시작했다. 큰누나와 둘째 누나는 취업의 전선에 뛰어들었고, 셋째 누나는 몇 년간 다니던 대학교를 관두고 넷째 누나와 함께 수능이라는 입시를 통해 교대로 진학하였다. 넷째 누나는 경산에 있는 영남대학교로 진학하였고, 끝분이 누나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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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곰티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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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3T02:00:01Z</updated>
    <published>2026-07-13T02: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청도는 동서로 길게 뻗은 형태이다. 이 청도의 산동과 산서의 기준이 되는 곳이 바로 곰티재다. 예전부터 고개의 모양이 곰과 닮았다고 하여 곰티, 곰태, 곰재 등이라 불렸지만 청도 사람들은 보통 곰티재라 부르는 듯하다. 어머니의 옛날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지명이 바로 곰티재였다. 언젠가 어머니께 곰티재 이름이 왜 그렇냐고 물었더니 &amp;quot;옛날에 저 산을 넘어가는 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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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악착같이 살아보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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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0T02:00:01Z</updated>
    <published>2026-07-10T02: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없는 살림살이에도 나는 누나들에 비해 부족함 없이 자란듯하다. 육 남매 중 유일하게 유치원을 나왔으며, 아버지의 권유로 남자는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한다고 국민학교 저학년 때 태권도 학원도 다녔다. 게다가 컴퓨터 시대가 도래됨을 인지하셨는지 어머니는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는 나에게 컴퓨터학원도 보내주셨다. 나의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주변 친구들은&amp;nbsp;내가 부족</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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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족과 나 - - 아버지와 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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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8T02:00:02Z</updated>
    <published>2026-07-08T02: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는 지금도 아버지의 월급날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신다.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된 동대구역 소화물 업무로 벌어오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물론 몇 명 되지 않는 식구라면 오손도손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었겠으나 육 남매를 키우기에는 다소 버거웠으리라. 어머니는 아버지의 월급으로 어떻게든 마이너스가 나지 않도록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셨다고 한다. 이러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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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족과 나 - - 누나와 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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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6T02:00:01Z</updated>
    <published>2026-07-06T02: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주말에 부모님 두 분 모두 직장생활을 하시느라 없으실 때 누나들은 나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물론 부모님 두 분의 자리를 누나 여섯 명이 모두 메워줄 순 없었지만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 든든했다. 잠을 재워주고, 밥을 챙겨주고, 씻겨주고, 놀아주었으니 그거면 다지 않을까? 누나들마다 역할이 나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보통 큰누나와 둘째 누나는 동생들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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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족과 나 - - 어머니와 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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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3T02:00:02Z</updated>
    <published>2026-07-03T02: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의 과거 회상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꼭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다. 그 힘든 시절 꼬박 영남방직 공장을 10년 채우셨다는 것이다. 3교대라는 힘든 노동을 하시면서 가정의 가사노동까지 병행하였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러한 세월을 10년 꼬박 채우셨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꼭 야근이 있는 날이면 오후 출근 전 달달한 커피믹스를 한잔 드시고 가셨다. 내겐 군것</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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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의 소년시절(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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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1T02:00:01Z</updated>
    <published>2026-07-01T02: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 동네에는 작은 샘이 하나 있었다. 친구들과 동네에서 열심히 뛰어놀다 보면 목이 한 번씩 마를 때가 있는데 그때 그 샘은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급수처였다. 하지만 그 샘을 자주 이용하는 동네 주민은 바로 앞에 사는 두어 가구 정도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충분히 급수로 쓸만한데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우리 동네는 경산의 대표산인 성암산자락</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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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의 소년시절(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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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9T02:00:01Z</updated>
    <published>2026-06-29T02: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뭔가 모를 외로움이라는 환경 속에서 무사히 유치원을 마치고 국민학교로(그 당시는 초등학교의 명칭이 국민학교였다.) 입학하였다. 조금은 자율성이 커가는 시기다 보니 가족보다는 학교 친구 및 동네 친구들과 더 어울리며 나만의 외로움을 조금씩 잊기 시작하였다. 늘 심심하고 외로운 집보다는 조금만 걸어 나오면 있는 앞동네와 뒷동네에서 어울려 노는 동네 친구와 형,</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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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의 유년시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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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6T02:00:01Z</updated>
    <published>2026-06-26T02: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렇게나 학수고대했던 아들을 낳아 키워가던 어머니께 즐거움도 잠시였다. 뻔한 아버지의 월급으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육 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많은 고민을 하셨다. 아직은 갓 태어난 막내아들을 가슴품에 안고 키울 수밖에 없던 처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냥 손을 놓고 집에서 육아와 가사노동으로만 살기에는 앞날이 깜깜할 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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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삶의 순환논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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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5T01:00:19Z</updated>
    <published>2026-06-25T01:00:19Z</published>
    <summary type="html">부모의 사랑으로 우리는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났으니 살아야지!  살아가려면 밥을 먹어야지! 밥을 먹으려면 돈을 벌어야지!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지! 일을 하려면 무엇이든 배워야지! 배우려면 다시 또 살아가야지!  그렇게 반복된 순환 고리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죽겠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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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엄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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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4T13:39:39Z</updated>
    <published>2026-06-24T13:39:39Z</published>
    <summary type="html">엄마! 나이 먹으니 왜 그 캤는지 알겠다. 왜 그때 한숨 쉬었는지 알겠다.  엄마! 애 키아보이 알겠다. 왜 그래 인상 찌푸렸는지 알겠다.  나이 묵고 애 키우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 부부가 함께 하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  그저 부모 품 속에서 철 모르게 있는 게 낫겠다. 먹고 놀고 자는 거만 신경 쓰는 게 낫겠다.  엄마요. 아부지요. 힘드셨죠? 나이묵</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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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모할머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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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4T02:00:01Z</updated>
    <published>2026-06-24T02: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진라고모할머니는 할아버지 남매간의 막내딸로 태어나셨다. 어머니 말씀에 아마도 고모할머니가 출가하기 전에는 고모와 함께 우리 본가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살았을 것이라고 전하신다. 고모할머니와 고모가 함께 안살림에 대해 신경 쓰는 시절을 겪다 보니 고모와 고모할머니 사이가 매우 각별하셨다고 한다. 진라리라는 동네는 현재 남성현재를 지나 청도 용암온천을 조금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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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짬뽕아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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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9T02:00:01Z</updated>
    <published>2026-06-19T02: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내가 태어난 1982년을 전후로 하여 짬뽕아재네에도 3남매가 태어났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형과 나와 동갑이지만 생일이 빠른 누나, 그리고 2살 아래 남동생까지. 이렇게 삼 남매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즈음 하여 넷째 할아버지네 고모들도 줄줄이 시집가면서 갑태고모만 제외하고 모두 출가하였다.(물론 갑태고모는 큰누나와 동갑이었기에 아직 시집가기에는 이른 나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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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다리던 여섯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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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2T02:00:01Z</updated>
    <published>2026-06-12T02: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청도와 건태마을을 벗어났지만 이내 여러 사건들로 인해 어머니는 나름 많이 지치기도 하셨다. 하지만 이내 기운을 차리고 다시금 원래의 일상으로 복귀하셨다. 줄줄이 딸만 놓여있는 가정을 바라보면서 저 많은 딸들을 어떻게든 키워내야겠다는 일념하나로 몸을 일으켜 또 하루를 살아가셨다. 그러나 아직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한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바로 아들을 출산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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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머니의 간병생활과 윗집 작은할아버지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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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5T02:00:01Z</updated>
    <published>2026-06-05T02: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윗집 작은할아버지네의 맏이인 복현동 아재는 20대에 접어들면서 건태생활을 접고 대구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괜찮은 학력이나 기술이 있지 않았던 터라 먹고살기 위해 어디선가 간단히 세탁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복현동 아재는 아마 그 시기쯤 대구 복현동에서 자리를 잡고 지냈던듯하다. 배운 세탁 기술을 기반으로 세탁소를 운영하였다고 한다. 젊은 나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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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윤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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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31T01:24:41Z</updated>
    <published>2026-05-31T00:42:20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학졸업 후 나는 사회의 잉여로 존재하게 되었다. 길을 찾지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때 같은 처지의 친구와 잉여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삶의 터전과 정반대인 곳으로 향하였다.  이른 아침 보길도행 배를 타고 들어가 섬의 동쪽 끝자락에 놓인 글씐바위를 마주하였다. 하지만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반짝이는 물비늘. 그 물비늘이 내 뇌리에 박혔다.  잉여인간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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