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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궤적소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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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cksdn5074</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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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주로 에세이를 씁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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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4-28T12:23:26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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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답의 온도는 아직 미열로 남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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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3T11:17:20Z</updated>
    <published>2026-08-13T11:17:20Z</published>
    <summary type="html">정신없는 하루들을 보내고 나니 벌써 8월도 중순이다. 1월에 계약했던 책인 카드도서에 실을 시들을 열심히 써왔다. 현재 1부가 업로드 되어있는 상황이다. 카테고리는 시집, 제목은 &amp;lt;대답의 온도는 아직 미열로 남아&amp;gt;이다. 계약한 1월까지 모아온 시들을 모아 퇴고하고 추가로 써서 1부를 구성했다. 현재는 2부에 실을 새로운 시를 쓰며 동시에 이미 쓴 2부의 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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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나호시 관현악단 - 발묘(출항) 리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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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2T00:39:38Z</updated>
    <published>2026-06-22T00:27:38Z</published>
    <summary type="html">忘れられぬものだけが　美しくはないのでしょう와스레라레누 모노 다케가 우츠쿠시쿠와 나이노데쇼-잊지 못하는 것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겠죠忘れることばかりが　美しくはないでしょう와스레루 코토 바카리가 우츠쿠시쿠와 나이데쇼-잊을 수 있는 것들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겠죠 잊을 수 있는 것도 잊을 수 없는 것도 모두 아름다울 수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 경계조차 불분명한 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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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쇄골쯤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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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6T05:46:07Z</updated>
    <published>2026-06-16T02:16:35Z</published>
    <summary type="html">숨. 따뜻함과 차가움의 합집합. 마주 보고 누웠을 때 내 쇄골쯤 느껴졌던 바람. 당신이 무얼 원하는진 그 하나만 맞고 있어도 알 수 있다. 손바닥 안에 다 들어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쥐고 싶은 허무. 가령 시선 끝에 남는 새벽. 손짓 하나에도 크게 일렁였던 해무. 서성이다 보면 그 속에 파묻혀 끝내 나오지 못하는 것.  설렘. 꽃이 만발할 걸 기대할 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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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망치면서도 남기고 싶었던 것 - 어느 날의 단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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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5T01:56:23Z</updated>
    <published>2026-06-15T01:56:23Z</published>
    <summary type="html">기억에서 파생되는 것. 좋았던 기억이 곧 추억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은 흐려지지만 추억에 대한 감각은 오히려 넓어진다.  어설픈 구애의 말을 던졌을 때, 당신이 웃던 모습. 오래 전 그녀의 집 앞 정자에서 빗소리를 녹음했던 일이 갑자기 떠오른다. 도망치듯 나온 자리였다. 연애를 들켜선 안 될 상황에 그녀의 가족이 집에 들이닥쳤고, 나는 정자 처마 밑</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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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심부름꾼의 노트 &amp;mdash; 김행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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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5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5Z</published>
    <summary type="html">남의 문장이 내 시에 들어온 것 같은 때가 있다.  읽은 것들이 어딘가 남아있다가 쓸 때 나온다. 내가 만든 것 같지만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은 것들. 그럼 이건 내 것인가. 그 물음이 불편했다.  김행숙은 말했다. &amp;quot;완전히 고유한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과 생각들의 연결점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있다.&amp;quot; 완전한 독창성이 없다는 말이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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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를 내려놓으면 보이는 것들 &amp;mdash; 나희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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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5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5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로 시작하는 시가 많다.  나는, 나의, 내가. 화자가 나다.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이 '나'가 시를 좁힌다. '나'가 들어오면 '나'가 본 것만 남는다. '나'가 보지 못한 것은 시에 없다.  나희덕은 말했다. &amp;quot;'나'라는 주어를 내려놓고 중성적인 화자로서 이야기할 수 있게 변화했다.&amp;quot;  '나'를 내려놓는다는 게 처음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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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 시에서 내가 못 보는 것 &amp;mdash; 황병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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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5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5Z</published>
    <summary type="html">내 시에 대해 예상 밖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시 슬프네요.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다. 이 시 차갑네요. 따뜻하게 쓴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경험이 몇 번 있었다. 처음엔 독자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나중엔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황병승의 시는 오랫동안 퀴어 미학으로 읽혔다. 한 비평가가 물었다. 왜 비평은 그쪽으로만 달려갔을까. 실제로는 가족으로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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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속이 보이는 문장을 쓸 때 &amp;mdash; 황현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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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4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4Z</published>
    <summary type="html">잘 썼다고 생각했던 문장이 있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 뭔가 보인다. 이걸 왜 썼는지가. 이 행이 독자를 설득하려는 줄이라는 게. 감동시키려는 의도가. 그 순간 그 문장은 별로가 된다.  황현산은 말했다. &amp;quot;속을 드러내는 건 좋지만 속이 보이게 쓰면 안 된다.&amp;quot;  속을 드러내는 것과 속이 보이게 쓰는 것. 이 둘은 방향이 반대다.  속을 드러내는 것은 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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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목이 쉰 채로 부르는 노래 &amp;mdash; 진이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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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4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4Z</published>
    <summary type="html">말이 잘 안 나오는 날이 있다.  쓰고 싶은데 손이 안 간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잡히지 않는다. 그런 날에 억지로 쓴 것은 대개 읽기 어렵다. 억지가 보인다.  진이정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amp;quot;내 서정의 목은 늘 쉬어 있다.&amp;quot;  이 말이 자기 시의 조건이기도 하다는 걸, 그에 관한 비평을 읽고서야 알았다. 쉰 목소리가 결함이 아니라 특성이라는 것.</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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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금치를 삶는 일 &amp;mdash; 이근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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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4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4Z</published>
    <summary type="html">평범한 날에는 시를 못 쓴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감정이 있어야 하고,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한다고. 그냥 지나가는 날에는 재료가 없다고. 그런데 실제로 시가 나온 날을 세보면 대부분 평범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그냥 멍하니 있다가. 이근화의 시에 시금치를 삶는 날의 자기 자신을 담은 행이 있다.  시금치를 삶는 일이 시가 된다. 그리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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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우면서 쓴다 &amp;mdash; 김경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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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4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4Z</published>
    <summary type="html">퇴고를 무서워한 때가 있었다.  초고를 고치면 원래 것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처음 잡은 감각이 흐려진다고. 그래서 조금만 고쳤다. 시는 여전히 별로였다.  김경주는 말했다. &amp;quot;시는 쓰면 쓸수록 무언가를 쓰기보다는 지운다는 느낌이에요.&amp;quot; 쓰기가 아니라 지우기. 이 방향이 바뀌면 퇴고가 달라진다.  무언가를 지울 때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남는 것이 드러난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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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행을 나누는 것은 숨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amp;mdash; 이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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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4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4Z</published>
    <summary type="html">행을 바꾼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다.  길어졌으니까. 어색하니까. 그쯤에서 쉬어가는 것 같으니까. 이원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 이유들이었다. &amp;quot;행과 연은 단순한 호흡의 정리가 아니라 화자, 시제, 주어가 배치되는 기준이다.&amp;quot;  이 말을 읽고 내 시를 다시 봤다. 왜 이 행에서 나눴지. 화자가 바뀌는가. 시제가 달라지는가. 아무것도 없을 때가 많았다. 그냥 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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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루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amp;mdash; 박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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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3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3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장 아팠던 날에 쓴 시를 다시 읽은 적이 있다.  별로였다. 아팠던 것이 그대로 보였다. 거리가 없었다. 시가 아니라 기록이었다. 그날의 나는 거기 있었고, 독자가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박준은 말했다. &amp;quot;생생한 것을 생생한 대로 쓰는 것은 시의 방식이 아니다. 삭이고 태워서 가루를 내는 작업이 필요했다.&amp;quot;  가루. 그 말이 맞다.  날것의 감정은 덩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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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완두는 완두처럼 운다 &amp;mdash; 이제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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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3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3Z</published>
    <summary type="html">뜻을 모르고 쓴 단어가 있다.  정확히는 뜻은 알지만 왜 여기 쓰는지 몰랐다. 소리가 맞는 것 같았다. 앞 행의 흐름이 이 단어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냥 놔뒀다. 나중에 읽어보니 그 단어가 있어야 했다. 뜻으로 고른 게 아니었는데.  이제니는 낭독회에서 사람들이 단어 뜻을 물으면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뜻으로 쓴 게 아니기 때문에.  이제니의 시에는 완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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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를 쓰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 &amp;mdash; 김승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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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3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3Z</published>
    <summary type="html">쓰고 나서 왜 썼는지 모를 때가 있다.  초고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런 물음이 생긴다. 이걸 왜 쓰기 시작했지. 처음 잡은 이미지는 어디 갔지. 그 물음이 나오면 대개 시가 흐릿하다. 방향을 잃은 채로 도착한 것이다.  김승일은 세 가지를 먼저 정하라고 했다. 화자, 무대, 말하기 방식. 그리고 그다음에 물어야 한다고. 왜 이 시를 쓰고 싶은가.  간단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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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계속 쓴다는 것 &amp;mdash; 최승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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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3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3Z</published>
    <summary type="html">왜 쓰냐고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이 없었다. 좋아서 쓴다고 하기엔 좋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잘 쓰고 싶어서라고 하기엔 못 쓰는 날이 잘 쓰는 날보다 많았다. 그래도 쓰고 있었다. 이유를 모른 채로.  아무것도 안 되는 날에도 시를 썼다. 잘 쓴 게 없는 날에도. 그래도 뭔가 적었다. 같은 책상에서, 같은 날에. 한쪽은 나를 설명하는 글이고 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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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명을 배우는 중 &amp;mdash; 허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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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2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2Z</published>
    <summary type="html">납득시키려 쓴 시가 있다.  읽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려고. 이 감정이 이해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그렇게 쓴 시는 깔끔했다. 논리가 있었다. 그래서 별로였다.  허연은 말했다. &amp;quot;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정직한 비명이다.&amp;quot;  비명은 납득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르면 그만이다. 들을지 말지는 듣는 사람이 결정한다.  내가 쓴 시들을 다시 보면 어느 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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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직이라는 말의 무게 &amp;mdash; 김민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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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2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2Z</published>
    <summary type="html">천직이라는 말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쓴다.  다른 것을 해봤지만 결국 여기로 왔다거나, 처음부터 다른 건 생각해본 적 없다거나. 어느 쪽이든 '선택했다'는 뉘앙스가 없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력서를 쓴다. 글과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고 적는다. 그러면서 시도 쓴다. 같은 날에, 같은 책상에서. 이 두 가지가 이어져 있는지 모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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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린 구석을 응시하는 일 &amp;mdash; 오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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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3T04:12:52Z</updated>
    <published>2026-06-13T04:12:52Z</published>
    <summary type="html">오은 시인이 인터뷰에서 말했다 &amp;quot;나의 구린 구석까지 응시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것이 시&amp;quot;  나는 시를 쓸 때 나를 향하는 시어를 피하게 된다.'너'라는 환상을 만들고 그 안에 집을 짓는다.예쁜 사랑을 말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말했다.그렇게 만든 집은 대부분 파도 앞 모래성이었던 것 같다.결국 허물고 새로운 시 세계를 만들게 됐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나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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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늘이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 - 시인 김언의 &amp;lt;사유 노트&amp;gt;를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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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2T11:53:12Z</updated>
    <published>2026-06-12T11:53:12Z</published>
    <summary type="html">내가 집착하는 것 중 하나인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그간 나는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에 많은 신경을 쏟고 있었다. 이를 테면, 지금 쓸 수 있는 글이 있다는 믿음. 시를 쓰든 에세이를 쓰든 오직 '지금'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믿음에는 장단점이 있는데, 각각 몰입과 좁은 시야가 있다.  우선 몰입이라고 하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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