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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영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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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youngillkim</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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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작가 김영일의 브런치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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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2-07T09:41:5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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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의 말 - 기억이 닿는 곳까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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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16:23:47Z</updated>
    <published>2026-10-11T06:17: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 글은 내 기억과 어머니가 직접 들려준 말, 가족사진과 1960년 신문기사에 기대어 썼다.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연표에 적고, 전해 들은 이야기는 그 출처가 드러나도록 썼다. 부산에서 광주리에 무엇을 담았는지, 왜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었는지, 첫 교실에 들어선 날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모른다. 어머니가 말하지 않은 마음을 대신 적지 않으려 했다. 함&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RZYjMlEzhSYrdoQfbCMBQXJKlcA.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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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영희의 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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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06:16:46Z</updated>
    <published>2026-10-11T06:16:46Z</published>
    <summary type="html">김영희의 시간 &amp;mdash; 1933~2021 기억과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김영희의 생애를 연대순으로 적는다. 1933년 &amp;nbsp;서울 영등포 출생. 2남 4녀 가운데 장녀. 1940년대 후반 &amp;nbsp;수도여고 재학. 학업 성적이 뛰어났으며 훗날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회고. 1950년 &amp;nbsp;6&amp;middot;25전쟁 발발. 가족과 부산으로 피란. 약 1년간 광주리 행상. 1950년대 초반 &amp;nbsp;</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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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4장 - 2021년 12월 15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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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0T04:53:21Z</updated>
    <published>2026-10-10T04:53:21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평의 두 달을 함께 보낸 사람은 췌장암을 앓고 있었다. 병의 이야기는 양평에 가기 약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여고 동창 모임에서 누군가 강남의 한의원을 추천했다. 어머니가 가보고 싶다고 해 함께 찾아갔다. 진맥을 받고 보약을 지어 안양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약이 도착해 한 봉지를 드셨는데 더는 못 먹겠다고 했다. 약재를 바꾸어 다시 받았지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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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3장 - 열 가지 후회와 어머님의 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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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0T04:53:01Z</updated>
    <published>2026-10-10T04:53: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평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amp;ldquo;네 인생을 돌이켜보면 내가 후회되는 게 열 가지다.&amp;rdquo; 그 숫자를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뜻밖의 말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두 가지만 들었다. 첫 번째는 내가 결혼하기 전 만났던 한 인연이었다. 어머니는 그 인연이 이어지기를 바랐지만 닿지 않았고, 훗날 내 결혼생활이 큰 굴곡을 겪자 그때를 다시 떠올렸다. 두 번째는 미국&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tY6nIQ3TU9pJ548GOsxvhrcDEMk.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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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장 - 양평에서 만난 김영희 - 새소리에 밤을 새우고, 드라마를 기다리고, 아들을 놀리고, 찾아온 사람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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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2T03:08:20Z</updated>
    <published>2026-10-10T04:52:37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평에서 함께 지낸 두 달 동안 어머니의 하루에는 작은 기다림이 있었다. 드라마 시작을 알리는 내 목소리, TV 시청 뒤 셋째 아들과의 통화, 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소리였다.  병원에서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짐을 꾸려 양평의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네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관리사무실까지는 50미터 남짓한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S09-GVdjFaCOTrNNxiDK3pUOmXU.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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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1 장 - 고궁해설사가 되고 싶었던&amp;nbsp; &amp;nbsp; &amp;nbsp;김영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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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0T04:52:03Z</updated>
    <published>2026-10-10T04:52: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평에서 함께 지내던 어느 저녁, 나는 어머니에게 오래 품어온 마음을 물었다. &amp;ldquo;어머님, 지금 조금만 더 젊다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예요?&amp;rdquo; 어머니는 &amp;ldquo;경복궁에서 고궁해설사를 하고 싶다&amp;rdquo;고 했다. 학생 때 전공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다시 묻자 &amp;ldquo;고고학&amp;rdquo;이라고 답했다. &amp;lsquo;고고학&amp;rsquo;이라고 말할 때 어머니는 아주 조금 웃었다. 자랑도 넋두리도 아닌, 낮&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qNRtKkwSkC1jA41y9L4VFMCFvIQ.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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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장 - &amp;nbsp;평생 화장대 하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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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0T04:51:36Z</updated>
    <published>2026-10-10T04:51:36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그까짓 화장대가 뭔데, 평생 여자 몸으로 화장대 하나 못 가져봤다.&amp;rdquo;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해 전쯤, 지나가는 말처럼 작은 소리로 흘린 한마디였다. 사달라는 부탁도 아니었다. 혼잣말 같은 푸념이었다. 나는 당근마켓에서 작은 앉은뱅이 화장대 하나를 구했다. 1만 원이었다. 어머니 방에 놓아드렸다.  방 한쪽 벽에 화장대를 붙여 놓자 어머니는 한참을 그 앞</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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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nbsp;&amp;nbsp;9 장 - &amp;quot;니가 뭘 아느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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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2T04:00:41Z</updated>
    <published>2026-10-10T04:51:18Z</published>
    <summary type="html">말년의 어머니는 시각장애 1급이었다. 언제부터 눈이 나빠졌느냐고 묻자, 1975년 아버지의 병 수발을 한 뒤부터 시력이 서서히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시력이 나빠진 뒤에도 흰 지팡이를 거의 짚지 않았다. 막내외삼촌이 고급 지팡이를 사다 드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좀처럼 들고 다니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어머니는 &amp;ldquo;남 보기 모양이 빠진다&amp;rdquo;고 했다. 대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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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 장 - 내 첫 번째 시청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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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2T03:05:02Z</updated>
    <published>2026-10-10T04:50:4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어머님, 이것 좀 한번 들어보세요.&amp;rdquo; 매주 수요일, 영상을 올리기 전이면 나는 어머니에게 먼저 들려드렸다. 철학과 종교,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영상은 그렇게 어머니의 귀를 먼저 거쳐 세상에 나갔다. 어머니는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무조건 잘했다고 하지 않았다. &amp;ldquo;요 내용은 요렇게 고쳐라.&amp;rdquo; &amp;ldquo;저 부분은 저렇게 하는 게 낫겠다.&amp;rdquo; 나는 다시 고쳤다. 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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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 장 - 내가 먼저 말할 때까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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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2T20:53:05Z</updated>
    <published>2026-10-09T22:1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평에서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amp;ldquo;내 뱃속에서 네 놈이 다 나왔는데 어찌 성격이 이렇게 다 다르냐?&amp;rdquo; 두 살 터울로 같은 집에서 자란 아들 넷을 어머니는 끝내 서로 다른 사람으로 보았다. 네 아들은 각자 다른 길을 갔다. 둘째가 서울지방법원에서 근무할 때, 어머니는 오랜 동창들과 함께 아들이 일하는 곳을 둘러보았다. 훗날 둘째가 양평에 찾아와 어머니 손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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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 장 -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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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22:09:28Z</updated>
    <published>2026-10-09T22:09:28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평에서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amp;ldquo;근데 니 아버지는 평생 바람을 피셨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죽냐.&amp;rdquo;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더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amp;ldquo;많이 서운하셨겠네요&amp;rdquo;라는 한마디라도 건넬 걸 그랬다. 어머니는 1975년 아버지의 위암 수술 때 약 두 달 동안 학교를 쉬며 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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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 장 - 장녀는 결혼해도 장녀였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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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22:08:54Z</updated>
    <published>2026-10-09T22:08:54Z</published>
    <summary type="html">월급날이면 큰외삼촌이 대문 앞에 서 있곤 했다. 안양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어머니는 월급에서 돈을 떼어 동생 손에 쥐여주었다. 막내외삼촌은 어머니가 결혼할 때 여섯 살이었다. 네 아들을 키우던 어머니는 그 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도 보탰다고 했다. 언제 얼마씩이었는지는 나도 다 알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대문 앞의 동생과 어머니 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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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 장 - 노란 손수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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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09:15:09Z</updated>
    <published>2026-10-09T09:15: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양평에서 어머니와 지낼 때 내가 물었다. &amp;ldquo;어머님, 교편생활 하실 때 어떤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amp;rdquo; 수십 년의 교직생활 가운데 어머니가 고른 것은 1975년의 한 장면이었다. 그해 아버지가 위암에 걸려 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는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약 두 달 동안 아버지를 간호했다. 어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담임이 오래 자리를 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xSSOCMWMQXfp8q4NFYc-4ReHxZo.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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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 장 - 주말마다 백리길을 오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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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09:14:33Z</updated>
    <published>2026-10-09T09:14:33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에게는 서로 다른 두 번의 백리길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남편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1960년 9월 8일자 경향신문 「사회와 생활과 시련과―구두 닦는 퇴역장교 김씨의 경우」가 그 길을 남겼다. 기사는 군복을 벗은 아버지가 서울역 부근에서 구두를 닦고, 비가 오면 종이우산을 팔았다고 전한다.  1960년 9월 8일자 경향신문 석간 기사. &amp;lsquo;아내는 주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6aDfmqmDDRvsCkWEUJGQL-e8h8Q.png" width="426"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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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 장 - 1956년, 한장의 결혼사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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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02:41:22Z</updated>
    <published>2026-10-09T02:41:22Z</published>
    <summary type="html">1956년 결혼사진이 남아 있다. 아버지는 군복을 입고 있고 어머니는 그 옆에 서 있다.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보아온 사진인데 이 책을 쓰면서 처음으로 다르게 보였다. &amp;lsquo;우리 부모님&amp;rsquo;이 아니라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보였다. 결혼 뒤 어머니는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강원도 양구로 갔고 교직을 내려놓았다. 그 선택 앞에서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듣지 못했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cTOuPfaMyNNLHG05qu5OzUR3Jjs.png" width="424"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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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장 - 고고학을 꿈꾸던 소녀 - by 김영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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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2T03:00:10Z</updated>
    <published>2026-10-08T21:50:53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에게 학생 때 무엇을 공부하고 싶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amp;ldquo;고고학.&amp;rdquo; 여든을 넘긴 어머니는 주저 없이 답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왜 고고학이었는지 끝까지 묻지 못했다. 1933년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난 김영희는 2남 4녀 가운데 장녀였다. 외할머니는 키가 자그마하고 조용한 분이었다. 외갓집 안방에는 서울시장 김현옥에게 받은 효부상 액자가 걸려 있&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bYxh3v5Y9Y5T8-dNkztIjaOBM0E.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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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롤로그-나는 어머니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 어머니 김영희 여사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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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3T08:14:33Z</updated>
    <published>2026-10-08T10:39:53Z</published>
    <summary type="html">검정 우산을 짚고 자기 길을 걸었던 한 여자  살아 계실 때는 당신이 내 어머니라는 것만 알았습니다. 당신이 떠난 뒤에야 한 여자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김영희.  내 어머니여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참 멋진 여자였습니다.  양평에서 함께 지낸 두 달 동안 어머니는 오래 묻어둔 말을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9ojT%2Fimage%2FFXjeEiQiTmeCCbzdOdnlZZywk_A.png" width="424"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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