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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코람데오 Coramde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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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매순간 코람데오(coramdeo) 하길 소망합니다. 영적 시력/시선/시각/시야를 조정하고 지성과 영성 성장을 도모하는 문장, 메시지, 묵상을 나눕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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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16T04:09:0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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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dquo;방언&amp;rdquo;은 오늘날에도 지속되는가? - 은사중지론과 지속론, 성경이 말하는 방언을 파헤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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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6T10:16:22Z</updated>
    <published>2026-10-06T10:16:22Z</published>
    <summary type="html">서론: 성경이 말하는 &amp;quot;방언&amp;quot;은 여전히 관찰될 수 있을까?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amp;lsquo;방언&amp;rsquo;은 성령의 은사를 대표하는 현상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방언을 한다는 자들의 방언 구사 모습을 보면 자음과 모음을 반복적으로 말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를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방언이라 불리는 그런 현상과 신약성경이 말하는 방언을 곧바로 같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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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squo;기독교적&amp;rsquo;이라는 말로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자들 - 기독교적 보수/진보를 외치는 것은 성경적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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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2T00:01:33Z</updated>
    <published>2026-06-22T00:01:33Z</published>
    <summary type="html">오늘날 기독교계 일각, 특히 모든 문화 영역을 기독교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극단적인 행보를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들은 교육, 노동, 정치 참여와 같은 복잡하고 정교한 삶의 과업들을 '기독교적인 것'과 '비기독교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적 칼날로 너무나 손쉽게 난도질한다. 이른바 &amp;lsquo;그리스도의 주권&amp;rsquo;을 모든 영역에 실현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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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회를 '변혁'해야 하는가? - 우주적 종말과 새 창조를 둘러싼 두 관점 - 갱신인가, 소멸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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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5T13:19:28Z</updated>
    <published>2026-06-05T13:1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프롤로그  최근 여러 문화적, 정치적 문제에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연루되어 있는 현실 세계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와 보수/진보를 엮고, 정치에서 기독교인의 역할을 강조하며, 이 악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할 일이 있음을 주창하는 여러 유튜버와 목회자들을 보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동의하지 못하는 생각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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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섭리'와 '운명'은 한 끗 차이&amp;nbsp; - 존 파이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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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35:40Z</updated>
    <published>2026-05-21T06:35:40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성경의 관점이 운명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섭리도 운명과 마찬가지로 장래가 고정되어 있다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에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섭리는 자연종교, 운명론, 행운, 운이라는 잘못된 가르침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운명론과 달리, 하나님의 섭리는 인류 역사의 방향과 목표를 조정하고 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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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과 '우상'은 한끗 차이다&amp;nbsp; - 출애굽기 | 여호수아 | 예레미야 | 에스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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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27:07Z</updated>
    <published>2026-05-21T06:27: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여호수아 24:16-17]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amp;nbsp;(NIV) Then the people answered, 'Far be it from us to forsake the LORD to serve other gods!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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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의 병과 장애는 누구의 책임인가? - 요한복음 9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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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17:57Z</updated>
    <published>2026-05-21T06:17:57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한복음 9: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본문에 등장하는 이 맹인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다. 선천적 맹인이었다는 것이다. 성  경은 유사한 어휘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이 점을 강조한다.  [요한복음 9: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요한복음 9:32] 창세 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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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 - 아브라함 카이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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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13:38Z</updated>
    <published>2026-05-21T06:13:38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나님은 성막을 지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주셨다. 조각을 만들고, 모든 장식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의 영은 언제든지, 어디에든 계신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상관 없다. 일터에서 일을 할 때나, 집에서 빵을 만들거나, 텃밭에서 감자를 키울 때도 고통으로 신음하며 기도할 때도, 아침에 일어나 풍경을 바라보며 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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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quot;여호와를 힘써 알자&amp;quot; 라는 헛된 회개를 하고 있나요? - 호세아 6장 1-6절, 백성들의 불성실한 회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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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09:06Z</updated>
    <published>2026-04-29T00:02:02Z</published>
    <summary type="html">[호 6: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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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를 덮친 현대판 우상숭배, 십자가는 어디에 있는가? - 세상 권력에 무릎 꿇은 강단을 바라보는 어느 성도의 탄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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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5T22:50:28Z</updated>
    <published>2026-04-05T22:50:28Z</published>
    <summary type="html">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참담함과 비통함을 감출 길이 없다.   강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거룩한 자리여야 마땅하거늘, 그 자리에 세속의 권력자가 서고 회중이 그의 연설을 향해 아멘으로 화답하는 광경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교회의 강단에 정치인이 초청되어 박수와 환호를 받는 이 기막힌 현실은 단지 특정 정치적 성향의 문제를 넘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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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인 vs. 성도 - 참된 '성화'란 무엇인가? - 개혁주의 관점에서 바라 본 성화, 지식, 그리고 열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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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0T05:45:11Z</updated>
    <published>2025-12-20T05:43:52Z</published>
    <summary type="html">0. 서론 - 두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  오늘날 교회 안에는 여러 유형의 교인들이 존재한다. 사람은 저마다 모습과 성격이 다르고, 주님이 허락하신 은사 또한 다르기에, 교인마다 저마다의 특색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교인, 즉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성도'도 있지만 '성도가 아닌 자'도 있다(마 13:24&amp;ndash;30; 마 13:47-48 등</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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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율법보다 자신이 정한 규례를 격상시키는 행태 - &amp;quot;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amp;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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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04:34Z</updated>
    <published>2025-12-13T04:15:55Z</published>
    <summary type="html">'율법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은 그것을 지킬 책임을 더하는 것이다.  '율법에서 무언가를 빼는 것'은 그것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율법을 가감하거나 그것에 준하는 행위를 하려는 것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보다 더 큰 권위를 가졌음을 드러내는 행위다(마 5:17-19; 15:3-9; 계 22:18-19).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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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도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동행'을 추구한다 - 아브라함 카이퍼, 하나님께 가까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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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04:34Z</updated>
    <published>2025-12-13T04:05:41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저 교회를 출석하는 사람들은 기도를 거의 습관적으로 한다. 그들은 식사 때에 반드시 기도한다. 밤에 자기 전에는 기계적으로 감사를 드리며 몇 마디 기원을 한다.  그러다가 큰 고난과 역경에 빠졌을 때, 그러한 부르짖음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을 보면, 곤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고는 크게 실망한다. 또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강청' 기도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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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란, - 아브라함 카이퍼, 하나님께 가까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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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04:34Z</updated>
    <published>2025-12-13T04:01:30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나님께서는 가까운데 계신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먼 곳에 계신 하나님(렘 23:23)도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고 우리의 간구하는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다. 비록 옆에 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소근소근거리며 기도할지라도 말이다.  다음의 질문보다 이에 대한 좋은 설명은 없을 것이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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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 - 존 파이퍼, 섭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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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04:34Z</updated>
    <published>2025-12-13T03:58:30Z</published>
    <summary type="html">주님의 기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마 6:9).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냥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그 이름이 경외를 받도록 &amp;lsquo;기도하라&amp;rsquo;고 말씀하신다. 이는 &amp;lsquo;하나님&amp;rsquo;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결정적인 원인이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우리와 다른 이들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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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적을 좆는 자들은 예수를 떠난다 - 요한복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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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09:07Z</updated>
    <published>2025-12-13T03:55:38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 6:48-51]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위의 말씀은 오병이어 사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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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quot;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구나&amp;quot; - 요한복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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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09:06Z</updated>
    <published>2025-12-13T03:51:54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 4: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이 신하는 예수님이 참으로 누구신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몰랐다. 왕의 신하는 그저 아들의 병 치유를 바랄 뿐이었다. . .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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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험에 근거하지 말고 성경에 근거하라 - 존스토트, 성령 세례와 충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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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04:34Z</updated>
    <published>2025-12-13T03:46:38Z</published>
    <summary type="html">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적으로 주어 지는 것은 영적 은혜이지, 영적 은사나 경험이 아니다.  당신이 어떤 경험을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권면하려 한다면, 당신의 경험에 근거하지 말고 성경에 근거해서 권면하기를 부탁한다.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당신이 사람들에게 회심과 전적으로 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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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늘날 교회는 '성전'인가 '신전'인가? - 베데스다의 역설, 병 치유를 기다리는 사람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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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3T03:43:59Z</updated>
    <published>2025-12-13T03:43:59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 5:3-4]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위의 본문에서 [] 안의 내용은 가장 권위있는 성경 사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후대의 다른 사본에는 기록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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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 언약, 순종을 '일으키는' 내면의 변화 - 존 파이퍼, 섭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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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1T06:04:34Z</updated>
    <published>2025-12-13T03:35:32Z</published>
    <summary type="html">[렘 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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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 - 마태복음 마가복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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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3T03:28:16Z</updated>
    <published>2025-12-11T07:40:35Z</published>
    <summary type="html">마태복음 15장 22절에는 '가나안 여인'이 등장한다(마가복음 7장 26절의 &amp;quot;수로보니게 여인&amp;quot;)  마태복음이 굳이 마가복음의 '수로보니게(시리아-페니키아)'라는 당시의 현대적 지명 대신, 구약의 옛 명칭인 '가나안'을 끄집어낸 것은 매우 의도적인 신학적 장치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역사적이고 적대적인 배경을 가진 '가나안 여인'이 도대체 어떻게 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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