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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맑은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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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삶을 오래 바라보다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씁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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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4-19T05:51:1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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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이 켜져 있는 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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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13:06:05Z</updated>
    <published>2026-10-09T13:02:13Z</published>
    <summary type="html">밤이면 아기를 안고 창가에 선다.  잠은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먼저 내 옷을 쥐고 있던 작은 손이 느슨해진다. 오물거리던 입술이 멈추고, 감긴 눈 아래로 속눈썹이 가지런히 내려앉는다. 통통하게 접힌 팔에도 힘이 빠진다. 조금 전까지 제 몸을 꼿꼿이 들고 있던 아이가 어느새 내 팔 안에 몸을 전부 맡긴다. 아기가 잠들수록 내가 안고 있는 무게는 오히려 무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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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당신이 있는 쪽으로 잠이 든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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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7T09:24:38Z</updated>
    <published>2026-10-07T09: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생각날 때가 있다. 금요일과 토요일을 쉬고 다시 출근하는 남편의 흰 가운이 아직 다려지지 않은 채 걸려 있다. 소매와 등판에는 며칠 전 벗어놓았을 때의 주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전에는 토요일 저녁이면 가운을 꺼냈다. 한쪽 소매를 펴서 다리고 가운을 돌려가며 남은 주름을 찾았다. 다림질을 하는 동안에는 다음 날 남편이 조금 덜 힘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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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커피, 빵 그리고 재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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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2T14:47:06Z</updated>
    <published>2026-10-02T13: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산미가 조금 있는 커피를 좋아한다. 적어도 그렇게 알고 있다.  원두를 고를 때면 산미와 로스팅 정도를 본다. 너무 시지도 않고, 너무 다크 해서 쓰지도 않은 것. 그 사이 어딘가에 내가 좋아하는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마셔보면 기준이 자주 움직인다. 어떤 날에는 산미가 조금 있는 커피가 맛있고, 어떤 날에는 묵직한 쪽이 좋다. 지난번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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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격표를 보기 전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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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09:02:59Z</updated>
    <published>2026-09-30T08:56:38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기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한우를 자주 산다.  정육 코너에서는 가격보다 고기의 상태를 먼저 본다. 지방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이유식에 쓰기 좋은 부위인지 살피고 몇 팩을 번갈아 들어본다.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 다음에야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본다. 가격을 보고도 대개 그대로 장바구니에 넣는다.  몇 걸음 옮겨 우리 부부가 먹을 식재료 앞에 서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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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르는 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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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09:03:27Z</updated>
    <published>2026-09-25T17:33: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즘 마트에서 과일을 고르는 사람은 주로 남편이다.  나는 아기띠를 한 채 그 옆에 서 있다. 두 손이 자유롭지 않다 보니 요즘은 남편이 과일을 고르는 모습을 가만히 보는 일이 많다.  과일 코너에는 사과가 산처럼 쌓여 있다. 남편은 잠시 진열대를 내려다보다 그중 하나를 집는다. 손바닥 위에서 반 바퀴쯤 돌려보고 다시 내려놓는다. 다른 하나를 집어 꼭지 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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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 하루는 허리 아래쪽 높이에 놓여 있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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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09:03:41Z</updated>
    <published>2026-09-23T08:45:54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기를 낳기 전에는 집에서 무릎을 꿇을 일이 거의 없었다.  싱크대 앞에서는 서 있었고, 밥은 식탁에서 먹었다. 책을 읽을 때는 소파에 앉았고, 글을 쓸 때는 책상 앞에 앉았다. 냉장고를 열고 서랍에서 물건을 꺼내고 방문을 여는 데에도 몸의 높이를 생각할 일은 없었다. 손을 뻗고, 조금 숙이고, 다시 일어서는 일은 생각보다 몸이 먼저 했다.  그게 어떤 높</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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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 밖의 것을 갖고 싶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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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09:03:53Z</updated>
    <published>2026-09-18T12:56:08Z</published>
    <summary type="html">로마에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들은 로마를 구경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갈 곳이 많았다. 지도에 표시해 둔 곳을 확인하고, 문을 닫기 전에 성당에 들어가야 했다. 오늘 보지 못하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곳을 하나라도 더 보려고 오래 걸었다. 여행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기가 아까웠다.  내가 그렇게 바쁘게 지나던 길에서 누군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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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 보지 못한 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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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09:04:02Z</updated>
    <published>2026-09-16T09:01:44Z</published>
    <summary type="html">제주에서 자라며 오래 보아온 것은 바다였다. 바다를 볼 때는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까운 물결을 보고 있다가 어느새 수평선까지 가기도 했고, 조금 전까지 햇빛이 머물던 자리를 따라 눈을 옮기기도 했다. 바다 쪽에서 먼저 움직여주니 나는 그저 따라가면 되었다.  집 앞 바닷길을 따라 자주 달렸다. 가만히 서서 보고 있을 때에도 바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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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꽃이 피지 않는 이유를 찾느라 흙만 뒤집고 있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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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09:04:17Z</updated>
    <published>2026-09-11T13:01:52Z</published>
    <summary type="html">내 이십 대에는 가을마다 시험이 있었다.  임용시험은 늘 11월 무렵이었다. 그래서 9월이 되면 높아진 하늘보다 남은 날짜가 먼저 보였다. 반소매를 입고 책상에 앉았는데, 어느새 소매가 손목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쯤이면 올해도 거의 다 왔다는 뜻이었다.  노량진에서 보낸 마지막 가을도 그랬다. 최종 모의고사를 보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사람 하나가 누우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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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직 보지 못한 일이 있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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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09:04:29Z</updated>
    <published>2026-09-10T11:01:27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루가 끝나고 나면 기억나는 것은 대개 몇 가지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기분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그마저도 며칠이 지나면 서로 비슷해졌다. 별일 없었던 날은 더 빨리 사라졌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부터 이상하게도 그 별일 없던 날들로 자꾸 돌아가게 되었다.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오가던 몇 걸음. 한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이 서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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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와 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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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6T23:28:45Z</updated>
    <published>2026-09-06T14:51:32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없이 넓은 바다에 배 한 척을 띄웠다.  처음에는 나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배였다.  바다는 생각보다 자주 얼굴을 바꾸었다.  어떤 날에는 구름의 가장자리까지 물 위에 비칠 만큼 잠잠해서 노를 저을수록 세상이 내 쪽으로 오는 것 같았고,  또 어떤 날에는 밤새 두 팔이 저리도록 물을 밀어냈는데도 아침이면 어제보다 먼 곳에 떠 있었다.  바다에서는 애쓴 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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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을과 석양을 좋아하는 데는 같은 이유가 있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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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4T13:31:33Z</updated>
    <published>2026-09-04T13:29:05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하루 동안 빛이 움직이는 모습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오래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있다. 해가 뜨는 순간도, 완전히 어두워진 밤도 아니다. 하루 동안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환하던 빛이 낮아지고 사물의 그림자가 길어질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올라온다. 슬프다고 하기에는 따뜻하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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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몇 걸음의 무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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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3T23:39:24Z</updated>
    <published>2026-09-01T05:00:40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떤 날에는 몸 안 어딘가에 모래가 들어찬 것 같은 날이 있다.  무엇을 먹어도 입안에 모래알 몇 개가 남아 있고  물을 마셔도 몸 안에는 자꾸 마른 것들만 쌓인다.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가슴 한가운데까지 좀처럼 닿지 않는다.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던 소리들이 그날은 유난히 가까이 와 있다.  휴대전화가 짧게 울리는 소리. 식탁에 컵이 닿는 소리. 문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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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꽃이 피지 않는 이유를 찾느라 흙만 뒤집고 있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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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3T23:39:51Z</updated>
    <published>2026-08-25T05: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마음의 정원이 오래 마른 채로 계절을 지나갈 때가 있다.  눈빛과 표정에는 잘 접히지 않는 종이 같은 뻣뻣한 기운이 남아 있고  퍽퍽한 마음을 지나 메마른 숨 끝에서 겨우 올라온 말들은  따뜻해지기 전에 자꾸 밖으로 먼저 나가버린다.  예전에는 공중에서 가볍게 흩어졌을 말들까지 자꾸 마음 안쪽에 묵은 먼지처럼 쌓아두게 된다.  그렇게 오래 메마른 날에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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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탁기 돌아가는 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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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3T23:42:58Z</updated>
    <published>2026-08-21T13:01:33Z</published>
    <summary type="html">모두가 잠든 밤이 되면  밖을 오래 버티고 돌아온 구김들과 집 안 곳곳에 남겨진 옷들이 하나둘 세탁기 앞으로 모여든다.   우유 냄새 가득한 아기 손수건과  손바닥만 한 양말을 조심스럽게 한쪽으로 옮겨 담고  오래 서 있던 발의 피로가 밴 남편의 양말과 아이를 안느라 잔뜩 늘어난 내 옷은  또 다른 바구니 안에서 구겨진 채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서로 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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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같은 달력 안에 서로 다른 시간이 산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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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3T23:43:50Z</updated>
    <published>2026-08-18T04:39:07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에게 달력은 늘 다음 장이 먼저 궁금한 종이였다.  마지막 강의가 끝나는 오후와 밤 비행기를 예매해 둔 금요일.  돌아갈 방향보다 떠날 이유가 더 많던 날들에  동그라미를 치며  아직 오지도 않은 날들을 마음속으로 몇 번씩 살아보곤 했다.  시간이 지나자 달력에 적히는 말들도 조금씩 달라졌다.  &amp;lsquo;마지막 출근&amp;rsquo; &amp;lsquo;이사&amp;rsquo;  몇 글자 되지 않는 메모 아래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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