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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채형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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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nomemoria</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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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글을 쓴다는 건 글쓰기로 생각한다는 것이고 영화를 한다는 건 영화로 생각한다는 것이고...</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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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8-07-11T10:28:2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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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섯 번째 #3 - 자포자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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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7T06:23:06Z</updated>
    <published>2026-09-27T06:23: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실 (불)가능한 대화와 (불)가능한 말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말속에 말해지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거나 대화가 전혀 되지 못하는 와중에도 주고받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임과 동시에 어느 정도는, 대화라는 것이, 그리고 말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불가능한 것일 뿐 아니라 바로 그렇기에 그것들 안에서 혹은 그것들을 통해서 기대할 수 있는 어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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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섯 번째 #2 - 대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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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2T07:50:37Z</updated>
    <published>2026-05-11T12:26:46Z</published>
    <summary type="html">말과 대화를 구분하고자 한다면, 말이라는 것이 혼자 있을 때에도 가능한 것일 때 대화에는 반드시 나의 바깥으로부터 오는 무엇과의 주고받음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말과 대화의 차이를 말하면서 또 말과 대화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그것들 각자가 가장 불가능해 보일 때의 청자/대화자가 누구인지를 봐야 한다. 이전 글에서 보았던 것처럼 청자 없</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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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섯 번째 #1 - 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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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2T09:32:23Z</updated>
    <published>2026-03-22T09:32:23Z</published>
    <summary type="html">소위 말의 주변에는 침묵이 있다거나 혹은 그 반대를 말하는 것은 이제는 흔한 말이다. 말의 사이사이에도 침묵이 있다거나 침묵의 사이사이에 말이 있을 뿐이라는 문장들도 그렇고 말이다. 모든 이분법적 관계가 그러하듯 결국 말과 침묵은 서로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인데, 그것은 역시나 인간의 말하기라는 신비로운 행위를 이해하고자 할 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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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섯 번째 #9 - 말하지 않고 걸어나가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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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03T14:12:38Z</updated>
    <published>2026-02-03T14:12:38Z</published>
    <summary type="html">끝없이 허물어지는 영화? 그것보다는 자꾸만 성립되지 않으려는 영화. 말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는 영화라기보다는 말의 대상 주변에서 그저 배회하며 말하기를 끝없이 미루려는 영화. 그것 또한 말하기임을 알면서도. 하지만 그렇게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목적은 무엇인가? 배우는 이 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그리고 아마도 프레임 밖에서도) 사라지고 싶어 하고, 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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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섯 번째 #8 - 가만히 있는&amp;nbsp;것.&amp;nbsp;멈추지 않지만 정지해 있는&amp;nbsp;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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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4-14T07:16:47Z</updated>
    <published>2025-04-14T07:16:47Z</published>
    <summary type="html">영화는 영화 속 인물이 SNS에 기록한 사진들을 보여주고, 그 사진 속 침묵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영화는 사진을 꿈꾼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시간이 죽었다고 말한다. 배우는 죽은 시간 속에도 숨이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정지들이 연결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라 정지 옆에 또 다른 정지들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통 명사 시간이 죽은 것이 아니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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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섯 번째 #7 - 확신하지 않는 믿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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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2-01T00:39:06Z</updated>
    <published>2025-01-31T15:27:53Z</published>
    <summary type="html">배우의 확신하지 않는 믿음은 필경 시간에 대한 믿음이다. 그것은 믿음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믿음의 자기 불신이다. 그것은 하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망설이는 액션이다. 그러한 액션은 모호해 보이거나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amp;nbsp;결국엔 그것도 하나의 시지각적 이미지일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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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섯 번째 #6 - &amp;quot;이 시나리오를 벗어날 수 없다&amp;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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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12T14:25:54Z</updated>
    <published>2024-05-12T11:53:17Z</published>
    <summary type="html">최근 유림은 나에게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자신은 못하겠다고, 자신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꽤나 진심으로 하는 말로 보이긴 했지만, 그가 그렇게 말한 이후에 정말로 계속 그 말대로 연기를 안 하겠다는 삶을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까, 그 자신의 말을 지문으로 삼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지문을 잊어버렸거나 무시하기로 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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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섯 번째 #5 - &amp;quot;불안전한 시선&amp;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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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11T01:56:13Z</updated>
    <published>2024-02-18T14:5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불완전한'도 아니고, '불안한'도 아닌, '불안전한' 시선이란 무엇일까? 그 단어 선택이 의도적이었든 실수였든, 어쨌든 그 자신에 따르면 배우 유림은&amp;nbsp;그러한 시선을 이 영화 안에서 가졌다. 그것이 배우가 이 영화 안에서 가진 시선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니 그 불분명한 형용사의 의미를 쫓기보다는, 그 텍스트를 그저 받아서&amp;nbsp;영화와 배우의 시선에 대해서 골똘해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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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3 WFD 세계농아인대회 후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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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1-27T00:31:45Z</updated>
    <published>2023-11-26T15:04:03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3년 7월, 한국에서는 최초로 세계농아인대회가 개최되었다. 세계농아인대회는 세계농아인연맹(WFD)에서 4년마다 개최지를 바꿔가며 여는 대회로, 올해는 한국의 제주도에서 대회가 열렸다. 말 그대로 전 세계의 농인들이 모여 각국의 농 인권의 현황을 비롯한 여러 가지 농인과 관련된 경험과 연구들을 공유하는 자리다.  참가비가 45만 원이라는 점, 거기에 항&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8pb%2Fimage%2F5BPG9kbuu7-elgEPm9Mc04a0Q64.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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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섯 번째 #4 - &amp;quot;상상을 통한 짐작으로 나는 확신할 수 있을까?&amp;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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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9-15T01:52:14Z</updated>
    <published>2023-09-14T16:39: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연기를 하는 사람인 유림은 시나리오를 하나 받았다. 하지만 그 시나리오를 건넨 감독은 그것이 온전히 완성된 시나리오가 아닌 실패한 시나리오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러한 실패한 시나리오를 읽어보자고 했다. 시나리오의 전체를 유림 혼자서 읽어보자고 했다. 그러니까 유림은 시나리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역할을 혼자 도맡아야 했다. 거기에는 배우 자신과 비슷하기도 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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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섯 번째 #3 - &amp;quot;나를 떠나보내는 일&amp;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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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8-01T10:57:00Z</updated>
    <published>2023-08-01T06:19:28Z</published>
    <summary type="html">텍스트는 배우의 원천이다. 텍스트 없이는 어떤 배우도 없다. 텍스트란 이미 쓰인 것이다. 여기서 텍스트란 일반적 의미로서의 '텍스트'와 '쓰인'이라는 말이 갖는, 어떤 기록된 문자 형태로서의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이 문자의 형태이든 기록되지 않아 그저 휘발된 소리나 움직임이었든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미'라는 부사다. 우리가 텍</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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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랑의 고고학 / 이완민 - Archaeology of love /&amp;nbsp;Lee Wan-min / 202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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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09T22:44:47Z</updated>
    <published>2023-05-09T14:06:49Z</published>
    <summary type="html">(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필자의 흐릿한 기억이나 착각으로 인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들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고고학이 갖는 의미는 일단 주인공 영실의 직업적 외관을 특징짓는 측면이 있겠고, 이 영화 자체가 수행하는 영실의 마음속 사랑의 역사에 대한 은유적인 의미로서의 고고학적 발굴과 해석의 측면이 있을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8pb%2Fimage%2FWA4qB98Ye6r1tftnj85KZv_WZ7U.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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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섯 번째 #02 - &amp;quot;스스로 어떤 짐을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생각.&amp;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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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7-02T18:01:09Z</updated>
    <published>2023-03-08T17:08:59Z</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술 행위에는 어떤 부조리, 어떤 기만성이 있다. 아니, 더 넓은 의미에서 아예 말을 한다는 것 자체에는 어떤 부조리, 어떤 기만성이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내 뱃속 또는 내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를 뱉어 내거나 끄집어내어, 들려주든 보여주든 타인 혹은 자기 자신으로 상정될 어떤 세상을 향해 주의를 요구하고 작용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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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섯 번째 #01 - 어디에도 가지 않는 시간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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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11-15T01:33:34Z</updated>
    <published>2022-11-14T15:24: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시간은 정말 흐를까? 그러지 않고 혹시 시간은 그저 얼어서는 우리를 배회케 하고, 녹아서는 우리를 잠그는 건 아닐까?  부조리한 시간을 통해 통화는 두 번 반복되고 꿈은 한 번은 꿔지고 한 번은 깨진다 만날 수 없는 만남은 영원히 미뤄지지만 기다림은 가끔은 직접 길을 나서기도 한다  사라짐은 보이지 않음이고 보이지 않음은 못 만남이지만 못 만남은 안 만남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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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네 번째 #01 - 연극적으로 거리를 둔다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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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10-10T09:03:48Z</updated>
    <published>2022-10-10T05:22:07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t;연극적 거리두기&amp;gt;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위기에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에게&amp;nbsp;지원금을 주고자 마련된 일종의 공모전에 제출한 기획이었다. 금지되거나 유보되거나 대체된 '만남'이라는 것에 대해서, 만날 수 있을까 만나지 못할까,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만남'의 시도를 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한정된 짧은 기간에 다소 급하게 시작 및 완성됐었다. 그것은 거창하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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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의당 입당(5개월 후)의 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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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9-04T09:40:20Z</updated>
    <published>2022-08-10T12:26:06Z</published>
    <summary type="html">1. 제대로 된 정당 정치에의 참여만이, 팬덤 정치와&amp;nbsp;유튜브, 내로남불과 말 꼬투리 잡기 싸움 릴레이에 의해 밀려난 사회적 약자 중심의 의제들 한복판으로,&amp;nbsp;정치판은 물론이고 나 자신 또한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은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렇다면 어느 정당에 가입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였는데, 원내 진입을 못 하고 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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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화상: 47km 마을의 창 / 장멩치 - Self Portrait: Window in 47KM</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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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0-29T02:44:51Z</updated>
    <published>2019-10-25T11:56:20Z</published>
    <summary type="html">Self Portrait: Window in 47KM / Zhang Mengqi   영화는 어떤 눈 내린 낡고 낮은 건물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그 건물 외벽에는 중국어로 &amp;quot;오직 OO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amp;quot;라는 슬로건이 겨우 알아볼 수 있게 쓰여 있다. 건물의 문 두 짝에 쓰여 있었을 OO이라는 단어만큼은 거의 완전히 지워진 채로 말이다. 프레임 밖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8pb%2Fimage%2FhUDhN9F7X5Hk302Qxu1flsY1W3o.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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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집 / 윤가은 - The House of Us / Yoon Ga-eu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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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9-01T17:01:44Z</updated>
    <published>2019-08-28T12:17:21Z</published>
    <summary type="html">초등학교 고학년의 하나는 아침을 차리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아침부터 싸우고 있고, 그 광경을 피하는 대신 수저를 식탁에 놓으면서 엄마와 아빠를 주도면밀하게 살피는 듯 눈치 보는 듯하는 하나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두려움이 있다. 동시에 어떤 종류의 대담함과 용기도 있다. 하나의 표정에 놓인 그 공존이 이 영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우&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8pb%2Fimage%2FlTF_UEnFBTKA80SrBnjS8SOMUIE.jpg" width="427"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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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 / 사막별의 오로라 - 김정 황은후 / 2019.08.10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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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8-22T11:52:23Z</updated>
    <published>2019-08-16T08:14:17Z</published>
    <summary type="html">처음부터 연극은 하나의 가상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이것은 적어도 이 연극이 대충 어떤 내용을 담은 연극인지 어느 정도 예감을 했거나 미리 알아보고 온 관객에게는 어떤 긴장감 혹은 우려를 주기도 한다. '혹시 이 연극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 세상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무대에 올리기만 하는 그런 연극은 아닐까?' 그러나 이 연극은 서두르지 않고&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8pb%2Fimage%2FvB16jBWE0nyuUt6ID9D7B8txCZM.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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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숭배와 혐오, 혹은 숭배라는 혐오 - 힘에 대한 믿음, 그리고 믿음의 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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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11-18T02:44:26Z</updated>
    <published>2019-08-12T06:4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숭배와 혐오는 동전의 양면인가? 정확한 비유는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숭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혐오의 대상이 필요해 보인다. 뭐, 간단한 예를 들자면, 어떤 종교인들은 신을 믿기 위해서 악마의 존재 또한 믿으려 하고, 그래서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어느새 본받을 만한 신을 상상하고 그를 닮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자기 주변 사람들 중 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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