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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범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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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kimshwan</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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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지나온 삶에서 잊히지 않는 순간을 꺼내 씁니다. 때로는 한시와 옛사람의 삶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마음을 들여다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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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8-04-06T11:25:5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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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7화. 중국 학회3) - 최치원의 꿈속 밀회 - 최치원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쌍녀분(雙女墳). 고순현, 2008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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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1T14:03:14Z</updated>
    <published>2026-10-11T13:58:35Z</published>
    <summary type="html">2008년 10월 중국 안휘성(安徽省) 무호(蕪湖)의 안휘사범대학(安徽師範大學)에서 열린 당대문학국제학술연토회(唐代文學國際學術研討會)에 참석하였다. 이백학회와 당대문학회가 매년 번갈아 열리기 때문에 사실 해마다 학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남경까지 직항편이 있었고, 공항에는 학회에서 보낸 차가 나와 있어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명칭은 사범대학이지만&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a2jK7XENmBFqcO8umZSFjYIYk8g.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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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6화. 중국 학회2) - 구화산에서 만난 신라 왕자 - 구화산의 높이 99미터 지장보살 김교각 동상.&amp;nbsp;2014년 2월 촬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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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0T11:39:33Z</updated>
    <published>2026-10-10T08:19:12Z</published>
    <summary type="html">2001년에 이백(李白) 탄생 1300주년 기념 학회에 참석하였다. 남경(南京) 근처 마안산(馬鞍山)시에 이백기념관이 있었다. 이백은 만년을 지금의 마안산 근처에서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까운 당도(當涂)에는 이백의 묘가 있다. 이곳에 기념관이 세워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홀수 해에는 이백학회가, 짝수 해에는 당대문학회(唐代文學會)&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DUD0qwAMW-HoTzM6p_bhCbpoOT0.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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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5화.중국 학회1) - 이백을 따라 장강에서 장안까지 - 1997년 중국 만현에서 열린 &amp;lsquo;이백과 삼협 국제학술토론회&amp;rsquo;에서의 발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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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9T07:18:42Z</updated>
    <published>2026-10-09T07:18:42Z</published>
    <summary type="html">97년 중국에서 온 교환교수에게 중국 학회를 하나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바로 그해 이백 학회로부터 &amp;lsquo;이백과 삼협 국제학술토론회&amp;rsquo;에 초청을 받았다. 이백 관련 논문을 발표해 달라는 공지도 있었다. 국내 학회만 다니다가 중국 학회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거리가 좀 멀었다. 상해에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성도(成都)로 갔다. 성도에서 하루를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9wyvHOH7bDcpDR08NxmrBhQ9_4M.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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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4화. 교환교수를 스승으로 - 대만에서 오신 호 교수님과 함께. 1984년 겨울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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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07T22:00:32Z</updated>
    <published>2026-10-07T22:00:32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교환교수와의 인연이 많다. 상당히 많다.  처음으로 오신 분은 대만 정치대학의 주(周) 교수였다. 괴짜였다. 술은 한 방울도 못 마시는데 담배는 골초였다. 다른 담배는 피우지 않고 오직 대만의 총통패 담배만 피웠다. 담배가 떨어지면 안 되니까 대만에 가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나 부탁했다. 당시 공항으로 들어올 때 1인당 가지고 올 수 있는 담배는 20갑&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LxLdjKRmcPYYFYGdROBJkY7cy9U.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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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3화. 민주화 뒤의 고통 분담 - 부산대에서 1만여 명의 학생과 대화하는 최재훈 총장. 1987년 4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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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10T13:16:57Z</updated>
    <published>2026-10-05T22:00:37Z</published>
    <summary type="html">81년 말 내가 귀국했을 때는 &amp;lsquo;서울의 봄&amp;rsquo;은 이미 지나가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다. 80년 5&amp;middot;18민주화운동도 지나갔고, 계엄령도 해제된 뒤였다. 그러나 대학은 조용하지 않았다.  부산대학에 임용되고 보니 데모는 일상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운동장은 언제나 학생들이 모였고, 교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qYAwVsjffcgLhANI4pPgNdAPh7A.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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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2화. 인문학은 힘이다 - 교실 밖에서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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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04T05:24:15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세심하게 수업 준비를 하는 편이 아니었다. 지식을 설명하는 것보다 학생이 실제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 자신도 그렇게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영영사전과 영어 소설을 들고 다녔다. 회화책도 자주 보았다. 우연히 기차에서 마주 앉은 미군 흑인 병사한테 &amp;ldquo;Do you speak English?&amp;rdquo; 했다가 코웃음을 산&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ooY4souk6WUhEBkAhoprV8IenNA.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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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화. 대학은 만능이었다 - 만능의 대학인들, 자유의 산행. 나는 수염을 길렀다. 1980년대 말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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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10-03T07:24:03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대학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은 거의 모든 지식의 총집합체였다. 더구나 나는 지적 호기심과 충동이 매우 강했다. 책을 읽다가 천문이나 지구, 물리 등에 의문이 생기면 전혀 모르는 교수에게도 전화를 걸어 물어보곤 했다. 같은 대학의 동료 교수라는 관계는 이럴 때 상당히 편리했다. 모두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도대체 이보다 더 좋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H6v5Xcwqket7Nlh9qFGc8T9MJuo.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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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화. 교수 임용 후 첫 미션 &amp;mdash; 학생 어학연수 인솔 - 일월담 원주민 마을에서 학생들과 함께. 1984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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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30T14:49:02Z</updated>
    <published>2026-09-30T14:11:23Z</published>
    <summary type="html">9월에 발령을 받았지만 이미 나는 전임 행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 선배 형이 학과장이었는데, 겨울방학에 학생들을 인솔하여 대만에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어학연수가 그렇게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개인의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라 학교에서 직접 인솔하는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7H06NgfeTmrvf7QaeBAylVp2Zx4.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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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화. 천방지축 교수 인생의 시작 - 시간강사로 함께한 학과 야유회 &amp;mdash; 고사리분교. 83년 5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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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5T08:14:30Z</updated>
    <published>2026-09-25T08:14:30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것도 또 하나의 실수였다. 선배 형의 말만 믿고 내려왔는데, 대학의 인사가 형의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임용은 되지 않았다. 대만에서 성급하게 귀국한 뒤 겪었던 일을 벌써 잊은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강의를 모두 정리하고 내려왔기 때문에 다시 올라갈 수도 없었다.  나는 형의 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CIlvKI6ddlkIK2vJe5WKCDiV2Yw.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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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8화. 자전거 타고 부산으로 - 자전거 하이킹으로 들렀던 부산에서 34년을 살았다. &amp;mdash; AI 재현 이미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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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2T22:00:37Z</updated>
    <published>2026-09-22T22:00:37Z</published>
    <summary type="html">서울대는 역시 달랐다. 가르쳐 주는 대로 반응을 했다. 당시 이미 상대평가를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성적 산출에 내가 어려움을 겪었다. 거의 모든 학생이 잘하는데 정해진 비율에 따라 억지로 성적을 갈라야 했다. 100명이 넘는 학생을 비율에 맞춰 분류하는 일은 단순한 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1점 차이로 B와 C가 갈리는 것이 과연 교육 현장에서 합리&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LDo4bYUC_DBNz-eGpuIu-SdGfZs.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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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화. 서울대에서 무당 굿하듯 떠들었다 - 끝내 가지 못한 프랑스어 수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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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20T22:00:40Z</updated>
    <published>2026-09-20T22:00:40Z</published>
    <summary type="html">귀국하면서 나는 바로 선배님 댁으로 갔다. 서울에서 당장 갈 곳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완전히 귀국했다는 말에 선배님은 난감해하셨다.  내가 크게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선배님은 대학에 자리가 하나 있으니 지원해볼 수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 학과의 주임교수가 우리 동문인데 선배님에게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했고, 선배님이 나를 추천한 것이었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HCq8CI3MTZuB38WpaDQW4W5appw.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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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6화. 나의 성급했던 귀국 - 우리의 텍스트는 구두점이 전혀 없었다.구두점 찍기는 고된 훈련이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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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9T23:00:20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보인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동오대학(東吳大學)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이 대학의 전신은 1900년 중국 소주(蘇州)에 설립된 동오대학으로, 중국에서 서양식 대학 교육을 일찍 도입한 대학 가운데 하나였다. 1949년 이후 대만에서 다시 학교가 세워졌으며, 특히 법학&amp;middot;상학&amp;middot;외국어&amp;middot;인문학 분야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대학이었다. 다만 대륙에 있을 때에 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QFHpqgL1U_C-OvIitNBKCV3nqBE.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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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5화. 얼떨결에 맡은 유학생 회장 - 타이베이 단오절 용주대회. 선수들을 격려하는 옥만호 대사. 197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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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7T13:24:29Z</published>
    <summary type="html">당시 통역을 좀 하던 때였다. 하루는 방문단을 공항에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바로 유학생회 총회장에 갔다. 정기총회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좀 늦게 도착해서 맨 뒷줄에 앉아 있었다. 유학생 회장 선거가 있었다. 뒤에 앉아 있었지만 나만 넥타이를 매고 있어서 사람들 눈에 띄었다. 누가 나를 후보로 추천했다. 추천받은 사람이 또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KlUhayXqrX00mv4x2kM6Xy72xis.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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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4화. 기숙사에서 쫓겨났다 - 대만 유학 3년째, 나는 장자의 우언을 만났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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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9-15T15:45: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 학교는 2년이면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내 동기들은 논문을 거의 마쳐가고 있었지만, 나는 1년을 더하기로 작정했다. 아무래도 대만 학생들보다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학점은 모두 끝낸 상태라 이제 논문을 준비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학교에서 날벼락 같은 통지가 왔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모두 기숙사에서 나가라는 것이었다. 우리 남학생 기숙사를 여학&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BCd1OAqFlVy1sLfOwdHsfgz6mz8.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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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3화. 대만 원주민 아가씨 &amp;ndash;&amp;nbsp;나의 이상형이었다 - 대만 원주민 민속공연단의 여성들, 1970년대 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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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13T22:00:44Z</updated>
    <published>2026-09-13T22:00:44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만에 가장 먼저 정착한 사람은 5,000~6,000년 전부터 살아온 오스트로네시아계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이들이 대만의 처음 주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 뒤 대만의 역사는 꼬이고 또 꼬였다.  16~17세기부터 중국의 가까운 복건성(福建省)에서 많은 사람이 이주해 왔고, 뒤이어 객가인(客家人)도 들어왔다. 이들이 오늘날 대만 한족의 큰 뿌&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p9CsaJ7xA7xzB98Ll-SFzE5qf1I.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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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화. 나의 엉터리 통역 - 나의 첫 통역 &amp;mdash; 대만의 한 현정부 앞에 선 한국 군수 방문단, 197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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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12T08:38:15Z</updated>
    <published>2026-09-12T08:38: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학갈 때 나는 아르바이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당시 시골에서 대학까지 가르쳤으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뒷바라지였다. 유학은 우리 집에서 나 말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동생들이 학교에 더 진학하지 않고 집에서 부모님을 도와 일한 것이 나에게는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학비 벌이는 쉽게 시작되었다. 대사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선배&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lAUwVh8tZvWWHFh_9o9lqRM1KLo.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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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1화. 대만에서 조우한 중공군 - 합환산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학생. 운무속의 아름다움. 197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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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13T04:04:27Z</updated>
    <published>2026-09-11T10:43:44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대만 유학의 목표를 두 갈래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는 학교 안에서의 공부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 밖에서의 문화 체험이었다. 가능한 한 많은 곳을 여행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당시 대만에는 중국청년반공구국단(中國青年反共救國團), 줄여서 구국단(救國團)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구국단에서는 대만에 유학 온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가량 대만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N3pDIBGavv41syrVGsJx0JyPfZ8.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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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화. 기숙사의 귀신 - 1970년대 대만 유학 시절의 기숙사 생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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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9T16:03:17Z</updated>
    <published>2026-09-08T22:00:36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만에서 처음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중학교에서 대학교까지 10년 동안 하숙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기숙사의 공동생활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우리 방에는 철학과 석사과정생 하나와 박사과정생 하나, 그리고 나까지 셋이 살았다. 박사과정생은 청소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툴툴거렸지만 직접 말은 하지 못했다. 방에는 세 개의 평상이 있고 단독 샤워실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6OwIJyGKN8O7WLShCNzLR4FRqUQ.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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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화. 교수님은 공자의 직계 후손이었다 - 공덕성 교수 부부가 살었던 곡부(曲阜)의 공부(孔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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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9T14:24:25Z</updated>
    <published>2026-09-04T14:42:38Z</published>
    <summary type="html">수업은 역시 어려웠다. 나는 학부에서 들어야 하는 선수과목도 있었다. 일상 중국어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수업은 달랐다. 우선 내용 파악이 잘 안되었다. 그러니 교수님의 말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수업이 끝나면 함께 들었던 동학(同學)에게 다시 설명을 들어야 했다. 그중 한 여학생은 거의 1대1로 나의 멘토가 되어주었다. ​ 교수님들은 대체로 연세가 많았다. 1&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zu0Ds3BnVI1RWKCNPlT_UB3hFh8.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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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화. 고량주로 신고한 나의 유학 생활 - 내 친구는 표나지 않게 술을 잘 마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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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9-09T15:13:56Z</updated>
    <published>2026-09-02T06:58:16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제는 출국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대만에는 입학시험 날짜보다 보름쯤 일찍 가기로 했다. 우선 시골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가친한테 유학 학자금을 받았다. 8월은 시골에 돈이 없을 때였다. 대부분 친척한테 빌려오신 돈이었을 것이다. 가친의 외숙부이셨는데 언제라도 돈이 있으셔서 해마다 내 등록금을 그분에게 빌려 마련해주셨다. 공항에는 친구 몇 명과 아저씨 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qWw%2Fimage%2FA0Z_XDIXBAzMQUMq9T0FBRdoizU.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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