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유능과 성실

‘잘’ 보다는 ‘그냥’ 해도 돼

by류하


삼십몇 년을 '유능'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살았다.

잘해야 한다, 정해진 방식을 따라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 모르면 안 된다...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붙였다.

그 채찍질이 나를 성장시켰을까? 어쩌면, 어느 정도는. 나보다 먼저 유능해진 사람들을 존경하고 하나라도 더 배워서 내 걸로 삼으려는 욕심은, 분명 내 능력치를 올려줬다.


그러나 대가는 컸다. 비교하고 자바카라하는 마음은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음에도, 나는 나에게 늘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저 웃고 지나갈 법한 사소한 실수에 상처받고, 일을 해결해 나가면서도 자주 무너졌다. 잘한 일이 없었을까? 그럴 리가. 나를 드러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못한 건 내 탓, 잘한 건 운 또는 타인의 덕. 스스로 만들어낸 서글픔이었다.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나의 감정을 단어에 실어 기록하기도 했고, 읽은 바카라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꽤 자주 검색 상단에서 내 글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잘 쓴 글이라서였을까?

하루하루 다니다 보니 어느새 회사에서 10년 차를 앞두고 있다. 연차가 무색하게 여전히 모르는 게 많지만,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근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일잘러였던가?


둘 다 아니다. 네이버 알고리즘에 간택된 것도, 상사로부터 괜찮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유능함 덕분이 아니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그건 '성실'함이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저 써온 시간들, 그 시간들이 쌓여 단단한 문장을 이룬 건 아닐까. 실수하고 고치고, 모르니까 찾아보고, 일단 부딪치면서 해보고. 상사가 좋게 본 모습은 그 애씀의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유능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기세를 꺾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능하지 못한 자신을 계속 발견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부끄러워진다. 겁이 나기 시작하면 시도하지 못한다. 그렇게 점차 무능의 구렁텅이에 처박혀버린다.


나에게 자주 말해줬다. 지금 잘 못할 수 있어. 못할 수도 있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실수할 수 있어. 문제는 해결하면 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 지금에 집중해, 미리 걱정하지 마. 믿을 수 없겠지만, 이 말들이 나를 살렸다.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성실의 마법은 적용되어, 계속 되뇌다 보니 믿게 됐다. 믿음은 현실이 됐고.


이제는 안다. 삶은 문제로 가득 차 있다는 걸. 그리고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다는 걸. 그 열쇠는 번뜩이는 유능함이 아닌, 미련해 보이는 성실함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내려놓아도 된다. 유능에 대한 욕심은.

대신 성실하자. 누구에게든, 어떤 일이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