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그로’에서 마주한 <우리가 만난 환승역> 북토크장에서
지난 일요일에 <우리가 만난 환승역>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에 참석했다. 나를 포함해서 아홉 명의 작가가 모인 자리였다.
이날 결혼식이 두 군데나 잡혔던 나는 처음에는 불참을 선언했으나 미련이 계속 남았다. 세상에 나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더군다나 바카라을 펴낸 작가들을 위한 자리에 빠진다는 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었다. 고심 끝에 이번만큼은 ‘나’에게 집중하자고 마음을 돌렸다. 나는 하루 전날에 최종 선택을 바꿨다. ‘저는 참석하겠습니다’라고.
결혼식장에서 만난 친구와 이동하여 마포에 있는 ‘채그로’라는 곳에 도착했다. 일찍부터 도착한 작가들이 비디오 촬영 준비부터 좌석 배치며 동선 계획까지 치밀하게 정리해 둔 뒤였다. 온라인카지노 작가의 개인 바카라과 각종 굿즈,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핑거푸드까지 완벽한 준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후 <우리가 만난 환승역> 출판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글빵연구소장 미야 작가와 출판사 대표 혜윰길 작가, 두 분이 진행했다. 사전에 리허설도 안 해봤다면서 조합이 썩 잘 어울렸다. 엄숙함에서 벗어나 즐거운 북토크를 만들자며 슬롯자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그야말로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공간이 점점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주제의 성향에 맞춰 네 개의 챕터 순서대로 작가들이 앞으로 나갔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슬롯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작가의 강연이나 연설이 아닌 서로 질문과 답변으로 확장되는 토크라 딱딱하지 않고 부담도 없었다.
나는 집에서 써 간 종이쪽지를 꼭 쥐고 있었다. 준비 없이 즉흥적인 발표를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 들어 하려던 말이 문득 끊기곤 한다. 그래서 작은 종이 위에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런데 앞의 작가들이 소개를 너무 간략하게 마무리했다. 소심한 성격에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급해졌다. 준비해 간 쪽지는 당연히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고 말은 꼬여버렸다. 원래도 느린 말투에 내용도 엉성하니 내 속을 다 보여주는 꼴이 되었다.
그럼에도 북토크는 취지대로 슬롯자의 질문에 술술 답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참여해 준 독자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도 있었다. 작가들은 질문에 귀를 기울이며 성심껏 답변했다. 바카라을 읽었든 안 읽었든 작가들이 참고로 할 만한 소중한 질문들이라 충분히 의미가 전해졌다. 내 인생에서 환승을 정의한다면?이라는 질문부터 온라인 게임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느냐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북토크의 시간 배분도 아주 여유롭고 자연스러웠다. 관객의 질문과 작가의 답변이 적절하게 연결되면서 알차게 버무려졌다. 지루할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새에 모든 순서가 끝났다. 바로 이어서 작가들의 사인회가 이어졌다. 머쓱한 표정으로 사인을 하는 일이 낯설면서도, 한편 진짜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밀려왔다. 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자유로이 사진을 찍거나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풍경도 내 눈에는 아름다워 보였다.
이번 북토크는 여느 행사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게 있었다. 작가들만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가족들 모두 마이크를 잡았다는 점이다. 참여자들이 자신의 소감을 발표할 기회는 흔치 않다. 살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을 기회는 또 얼마나 되랴. 스스로 나설 용기는 없지만 억지로라도 마이크를 잡게 하면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는 사실. 남 앞에 나설 용기가 조금 부족할 뿐이지, 할 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만약 남의 잔치에 구경만 하고 돌아선다면 그 울림과 여운은 금세 잊히고 말 것이다. '나도 한마디쯤은 해볼 걸 그랬어.' 하는 허탈감도 생길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아쉬운 감정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거라 믿는다.
북토크가 열린 자리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았다. 사양하는 척 뒤로 물러난 분들이 막상 마이크를 잡는 순간 봇물 터지듯 말문이 터졌다. 안 시켰더라면 울 뻔했을 정도로 자신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깜짝 기회’를 얻게 된 건 두 슬롯자의 재치 덕분이었다.
오늘 북토크의 감동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작가들은 글로 마음을 표현했고, 관객들은 말로 마음을 표현했다.’
북토크에 참석할지 말지를 놓고 나처럼 고민한 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참석하기로 했던 자신의 선택에 모두가 만족했을 것 같다. 어디서도 보기 드문 특별한 북토크에 참여해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을 테니까.
삶은 역시 선택이 중요하다. 선택에 따라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디에 서게 되고, 무엇이 되는지가 결정되니까. 남의 결혼식에 가는 대신 나를 위해 ‘북토크’를 선택한 건 정말 잘했다. 나 스스로 스물여섯 작가와의 만남을 선택한 일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 일하는 도중에 엄마를 보러 깜짝 등장해 준 우리 아들의 선택도 탁월했다.
아들 차례가 되어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솔직히 어떤 말이 나올지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엄마를 향한 애틋한 마음과 다른 작가들을 위해 멋진 덕담까지 건네는 의젓한 포용력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들과 나눈 깊은 교감, 그것이 이날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니었을까.
오늘 행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 과정이 있었을까. 나야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 장소 마련과 굿즈 마련에 공을 들인 잇고 출판사 대표 혜윰길 작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바카라 홍보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글빵라디오와 숏츠에 목숨 걸고 달리는 미야 작가는 어젯밤 얼마나 잤을까. 원고 작성이나 질문지 대본을 짜준 우기 작가도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준 숨은 공신이다.
멀리 해외에서도 지방에서도 늘 곁에 있는 것처럼 글빵연구소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는 작가님들한테도 감사를 드린다. 또한, 태이린 작가와의 인연으로 자리를 함께한 퉁퉁코딩 작가님도 반가웠다. 이번에 경기히든작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10월쯤 바카라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결혼식장에서 만나 갑작스레 동행해 주고, 기꺼이 바카라까지 사서 사인을 요청해 준 친구들. 소중한 시간을 내어준 동창들에게 마땅히 대접해야 했는데, 다음 기회로 미뤘다. 이 자리를 마련하느라 고생한 분들을 위한 뒤풀이에 참석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뒤풀이로 그간의 수고로움이 얼마나 해소되랴만,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담소를 나누는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행사에 함께했던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북토크’의 추억이 오래오래 남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