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커피 잔을 내려놓고 바카라꽂이에서 바카라을 몇 권 집어 들었다. 바카라을 펼쳐 들고 한때 줄을 그어놓았던 문장들을 다시 접해보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느꼈고 정말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파비오 볼로 ‘아침의 첫 햇살’을 읽다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 당시 학교 근처에 살았던 나는 신도시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 했다. 버스라는 게 반복의 산물이다 보니 하교 시간이 거의 비슷하면 내가 타는 버스의 운전기사도 늘 같은 사람이기 마련이다. 왜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을까, 아마도 ‘차에서 시를 읽는다’는 내용의 글을 쓰다 보니 그랬나 보다. 그 남자는 다른 버스기사보다 젊은 편이었다. 아마 지금 내 나이보다도 어렸을 것 같은데, 하교 시간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면 일주일에 3, 4번은 그였다. 젊다는 이유로 그가 인상적이었을 리 없다. 그는 가끔 핸들 위로 시집을 꺼내 펼쳤다. 그러니까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다 보니 신호대기에 걸리는 지루한 시간을 버스기사들은 신문을 보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신문 대신 늘 시집을 읽었다.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기사가 운전하다가 시집을 읽는다고? 낯설었다. 하지만 그 낯섦이 굉장히 시적이었고 멋졌다. 뿐만 아니라 버스 타는 사람들을 향해 빨리 타라고 재촉하지 않고 허둥거리는 사람을 느긋하게 기다려줄 줄 아는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내 단짝 친구였던 S는 그를 짝사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는 노릇이다. 시집 읽는 버스기사를 짝사랑한 여고생. 아, 뭐 이렇게 적고 보니 나름 낭만적이긴 하다. 근데 실제로 그는 낭만적이었다. 그가 시집 읽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는 정말 바카라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가 시집을 읽는 이유는 소설처럼 호흡이 길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S는 그가 읽는 시집의 제목을 알아내기 위해 가진 노력을 다 기울였으나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이유는 그 시집이 예쁜 꽃무늬 포장지로 잘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S의 짝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날 거란 걸 예감했다. 하지만 S에게 표현하진 않았다. S도 알지만 인정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꽃무늬 포장지로 시집을 포장했다는 건 여자가 있다는 뜻이다. 내 추측대로라면 그 시집은 여자 친구 혹은 그의 아내가 선물했을 것이다.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던 S가 그걸 인정할 리 없었다. S는 늘 버스를 타면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가 비어있지 않으면 그 자리 옆에 서서 집까지 갔다. 어쩔 수 없이 나도 S의 옆에 서서 가야 했다. 나는 그 자리가 싫었다. 뒷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마치 우리만 보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은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 없었을 텐데…
그로부터 약 6개월이란 기간 동안 일주일에 서너 번은 그의 차를 탔으면서도 “아저씨 뭐 읽어요?”라고 말 한마디 걸어보지 못할 정도로 S와 나는 숙맥이었다. 원래 숙맥들이 이상한 거에 꽂히고 그런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도 그 버스기사를 좀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S는 흔한 버스기사와 다른 그의 풋풋한 외모에 반한 거라면 나는 바카라을 읽는 그를 동경했던 것 같다. 신호대기에 걸린 버스의 운전기사가 시집을 읽는 건 그만큼 흔치 않은 일이니까.
나는 내가 바카라을 좋아하니까 바카라을 많이 읽는 남자와 결혼해야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바카라 좋아하는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바카라 읽는 나를 따분해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는 남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러지 못한 남자들을 만나봤기 때문이다. 의외로 바카라 읽는 여자에 대해 불만 많은 남자들이 더러 있다. 내가 그런 남자만 만나와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들은 하나같이 정적이고 비활동적인 취미를 가진 여자 친구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물론 연애 초반부터 그런 걸 드러내진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의 취향, 취미에 대해 따분하고 심지어 답답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남편은 일 년에 바카라을 단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지만(만화바카라은 빼고) 내가 좋아하는 바카라, 바카라 읽는 시간에 대해선 무조건 존중해주는 남자다. 다른 건 여기저기 늘어놓으면 잔소리하지만 바카라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건 뭐라 하지 않는다.(바카라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바카라을 읽고 있으면 내용을 궁금해하기도 하고, 얼마나 재미있는지에 대해 묻기도 한다.(하지만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의 시간을 존중해준 그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한다.(그는 게임과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있어 각자 좋아하는 것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가 좋아하는 건 무시돼도 상관없어, 는 연애 초반에만 가능한 일이다. 두 사람은 각자 좋아하는 게 분명하고 뚜렷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있는 시간을 잘 버틸 수 있다. 좋아하는 게 같다면 더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겠지만 오히려 같지 않아서 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남편에게 절대 독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권하지도 않는다. 그 또한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추천하지 않는다. 우린 그저 각자의 취미를 존중해줄 뿐이다.
다시 시 읽는 버스기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약 6개월 뒤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아마도 회사를 옮긴 것 같았다. 더 이상 그가 운전하는 버스를 탈 수 없었던 S는 그로부터 얼마 후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 재수생을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S는 왜 늘 짝사랑만 했을까? 나는 어제 내 차에 시집 한 권을 문짝 수납함에 꽂아 놓았다. 차가 밀리거나 신호대기에 걸렸을 때 휴대폰 대신 시집을 보기 위해서다. 3년 전인가 우연히 택시를 타고 외근을 가다가 운전하면서 바카라 읽는 남자를 본 적 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정말 차가 움직이는 와중에 그는 핸들 위에 바카라을 올려놓고 달렸다. 보면서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됨과 동시에 멋지다,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바카라 읽는 사람을 동경한다. 그게 의외의 상황이라면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