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패턴 바꾸기
1년 가까이 주변과 거리를 두고서 나의 내면과 대화를 하려 했다. 쉬어도 쉬어지지가 않았고 이대로는 안 된다, 계속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직업 생활을 꾸준히 이어가는 건 차치하고도 쉬는데도 마음이 계속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방법을 알 수가 없고 외부의 자극을 의도적으로 줄이려 작년부터 요가와 명상을 시작했다. 끝없는 잡념을 잠시나마 내 앞에서 밀어내고 텅 비워두며 내면의 평화를 기대했다. 순간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관찰자의 시점에서 흘려보내는 훈련을 하다 보니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마음공부라는 것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잠깐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것에 관심을 써보기도 했지만 원하는 게 정확히 알 수 없는 내 입장에선 뭘 끌어당겨야 할지조차 몰라 방향을 다시 틀었다. 마음공부로 오랫동안 외면했던 내면의 감정들과 그 감정이 처음 생겨난 어린 시절의 사건들을 파헤쳤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들을 억누르지 않고 당연하고 타당하며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무의식 정화라고 불리는 것을 나에게 적용하면서, 결국 느꼈던 건 하나다. 내가 느낀 감정들은 평가받고 짓눌리거나 탄압당해선 안 되며, 그 자체로 날 것으로 느끼고 존중받았어야 함이다. 바깥으로 인정해 달라고 소리칠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인정이 이뤄져야만 끝이 나는 거였다.
꽁꽁 숨기거나 때론 밖으로 은밀히 드러났던 나의 인정욕구와 생존욕구, 수치심은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말하고 있었다. 나 좀 봐달라고, 아무리 남이 봐줘도 소용없고 네가 나를 봐달라고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땐, 그동안 밖만 쳐다보며 대체 뭘 하고 있었나 싶어 머리가 띵해졌다. 내가 나의 마음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있는데 누가 나를 직면해 주고 존중한단 말인가. 그래서 감정패턴을 리프로그래밍하기로 했다.
눈을 감고 명상하며 내 안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만났을 때, 그들은 의기소침하거나, 억울하고 답답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또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일생에 걸쳐 반복되어 온 감정패턴을 고칠 방법은 바로 이거였다. 내면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고 그 감정을 알아주고 인정해 줘야 끝나는 일이었던 거다.
몰라줘서 미안했다고 말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느낀 것들은 끌어안기에 너무 아프고 처참하고 무서웠기에 모른 척 외면하고 억눌렀다고 인정을 해버렸다. 지금이라도 안 쳐다보면 나는 죽을 때까지 상처받은 내면아이들의 악다구니 속에서 살겠다 싶어, 살기 위해서였다.
1년에 걸쳐 삶이 크게 변하진 않았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나를 자바카라하거나 삶을 부정하는 등 스스로 고통을 재생산하는 버릇에서 보다 자유로워졌다. 생존모드에서 빠져나와, 나는 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할 건 겪고 가야 할 것도 있었던 것뿐이다. 내게 필요한 것과 원하는 건 내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