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소개하는 글에 이렇게 썼다. "일생 동안 읽을 수 있는 바카라의 양은 제한돼 있고 나는 이미 40년을 살아버렸다. 이제는 '그럭저럭 읽을 만한' 소설까지 읽을 여유가 없다. 이런 조바심 때문에 근래의 내 독서는 점점 강퍅해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권의 바카라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 모든 바카라을 다 읽을 수 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지식이 필요하다면 관련 분야의 바카라을 틈틈이 찾아볼 테니 그건 논외로 하더라도, 소설을 비롯하여 굳이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바카라들(물론 깊이 들어가면 사는데 지장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 바카라들도 좀 더 성숙한 삶을 사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은 일부러라도 찾아서 읽지 않으면 잘 읽지 않게 된다. 막상 찾아보면 그 많은 바카라들 중에서 어떤 바카라을 고를지 막막하다. 어떻게 하면 바카라을 잘 고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바카라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바카라에 대한 흥미를 갖기 위해서, 바카라을 많이 읽는 사람은 제한된 시간 안에 더 많은 바카라을 읽을 요량으로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대개는 ‘남들이 좋다고 하더라,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더라’는 소문을 듣고 바카라을 사거나, 아니면 유명 작가가 쓴 바카라을 찾아서 읽기도 한다. 이렇게 고른 바카라들이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방법이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좋다고 나한테 꼭 좋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읽어야 할 바카라은 많고 참 난감하다. 아예 안 읽으면 어떨까?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건 사랑하게 되면 헤어질지도 모르니 차라리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게 낫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데 헤어질 것을 염려해서 그 사람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남들이 대체로 그런 행로를 겪으니까? 뭐 그럴 수도.
바카라도 마찬가지다.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없으면 어쩌지. 중간에 포기하기도 그렇고. 그럴 바엔 읽지 말자'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나도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재미없는 바카라이라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어쨌든 좋은 바카라은 다 읽고 나서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길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다시 읽고 싶어지는 바카라이다. 사랑이 그런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사랑은 많이 닮았다.
지난 달부터 읽기 시작한 바카라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주말이나 연휴를 이용해서 다 읽으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바카라을 볼 마음의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때 나는 집에서 읽던 바카라을 사무실로 가지고 온다. 퇴근을 미루고 마저 읽기 위함이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지 않으면 바카라을 읽기가 어렵다. 바카라 말고도 재미있는 것이 너무나 많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들이 시시각각 일어나기 때문이다.
소설은, 특히 장편은 읽기 시작했다면 너무 오래 끄는 건 안 좋다. 중간에 멈추었다가 다시 읽으려면 이미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 앞부분을 다시 훑어봐야 하기도 하지만, 바카라을 읽는 행위에도 리듬과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흐름을 타면 수월하게 읽을 수 있지만, 흐름을 놓치면 여간해서는 다시 읽기가 쉽지 않다. 결단해야 한다. 시간을 내야 하고 마음을 쏟아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바카라을 읽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 그렇게 하면서 내가 다듬어지는 것이다.
바카라 내용도 중요하지만 바카라을 읽는 자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바카라을 읽는다고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자세는 두고두고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 나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가고 싶은 저 빛 속으로 말이다. 독서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