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뭔지 묻지 마라, 판사가 누구인지 알면 된다.

-로이 콘의 세계관으로 읽는 권력의 문법

by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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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악인은 영웅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악행에 분노하면서도, 그들이 지닌 기이한 생명력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선과 악이라는 납작한 잣대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간 심연의 어떤 욕망을, 그들이 대신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처음 로이 콘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그를 미워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고, 평생 거짓말을 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을 속였던 남자. 미워할 이유는 차고 넘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씁쓸한 인정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읽는 방식이 너무 정확해서, 차라리 정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 한마디가 자꾸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법이 뭔지 묻지 마라. 판사가 누구인지 알면 된다."


우리는 정의의 여신이 안대로 눈을 가린 채 공정하게 저울을 든다고 배웁니다. 그런데 로이 콘은, 그 여신이 안대 틈으로 누가 저울 위에 금화를 더 올리는지 훔쳐보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법을 공부한 게 아니라,
법을 쓰는 사람을 공부했다


로이 콘은 1927년 뉴욕 브롱크스의 유대계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앨버트 콘은 존경받는 판사였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출발점이 보입니다. 그는 법이 바카라 속에 적힌 조항이 아니라, 저녁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았습니다.


그는 스무 살에 컬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변호사 시험조차 바로 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법전 속에 박제된 활자보다, 인간의 약점과 탐욕이 세상을 움직이는 훨씬 강력한 동력이라는 것을 그는 일찍이 간파했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많습니다. 로이 콘이 남달랐던 지점은 그 머리를 어디에 썼느냐에 있습니다. 그는 정의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평생 골몰한 질문은 단 하나였습니다.


이 방에서 결정권을 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사람을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들 것인가?


그의 진짜 무대는 좁고 엄숙한 법정이 아니었습니다. 뉴욕의 최고급 사교 클럽, 정치인들의 밀실, 그리고 언론의 헤드라인 뒤편이었습니다. 그는 검사로 출발했습니다. 냉전이 막 시작되던 시기, 소련에 대한 공포가 미국 슬롯를 뒤덮던 시기였습니다. 공포가 클수록 그의 무대는 넓어졌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공안검사로 빠르게 이름을 알렸고, 그 모습이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눈에 들었습니다.


1950년대, '붉은 공포'가 미국 전역을 휩쓸 때 매카시의 곁에는 언제나 수석 보좌관 로이 콘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스물 몇 살의 나이에 냉전의 공포를 권력으로 치환하는 법을 완벽하게 터득했습니다.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 관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슬롯적으로 매장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청문회장과 신문 제목 속에서 부서졌습니다. 그 한복판에 로이 콘이 있었습니다.


공직을 떠난 뒤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 유명인, 기업가, 정치인, 부동산업자, 그리고 범죄 조직 관련 인물까지 변호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늘 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는 힘이 필요해서 그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 사이에서 한 가지 역할을 맡았습니다.


막아주는 사람. 겁주는 사람. 연결해 주는 사람. 상대가 물러설 때까지 몰아붙이는 사람.


대중은 그를 경멸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찾았습니다. 그가 고객에게 판 것은 합법적인 법률 서비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해결'을 팔았습니다. 그에게 법은 신성한 질서가 아니라 전쟁터였습니다. 소송은 진실을 밝히는 절차가 아니라, 상대의 체력과 평판과 돈과 시간을 소모시키는 무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법을 믿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법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법을 안다는 것과 법을 믿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법이 아니라 판사"라는 문장의 무서움


"나는 법이 뭔지 알고 싶은 게 아니다. 판사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이 말은 로이 콘의 세계관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판사는 단순한 법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판사는 결정권자입니다. 최종 결재자입니다.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어떤 말은 믿고 어떤 말은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규칙을 읽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규칙의 무게를 다르게 배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법은 종이에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종이를 해석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규정은 파일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규정을 꺼내 적용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원칙은 모두에게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원칙이 적용되는 순간에는 늘 얼굴이 생깁니다.


로이 콘은 이 사실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법조문을 외우는 사람보다, 그 법조문을 집행할 사람의 성향과 인맥과 두려움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누가 누구와 친한지, 누가 어떤 압박에 약한지, 누가 언론을 두려워하는지, 누가 자기 평판에 집착하는지. 그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태도를 비열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본 세계 자체가 완전한 허구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실은 종종 그런 식으로 움직입니다. 공식적인 기준보다 비공식적인 관계가 더 빨리 작동하고, 서류보다 전화 한 통이 더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회의실에서 결정되는 것 같지만, 사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결론이 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우리의 순진함을 비웃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법이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공정한 절차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성실함과 정직함이 결국 이긴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로이 콘은 말합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누가 판단하는지를 보라고.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지를 보라고.


그는 판사를 골랐다


이 세계관이 가장 끔찍하게 드러난 사건이 로젠버그 부부 간첩 재판입니다. 1953년, 줄리어스와 에델 로젠버그 부부는 핵 기밀을 소련에 넘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습니다. 스물다섯 살의 로이 콘은 이 재판에 깊이 관여한 검찰 측 인물이었습니다.


여기서 사실과 해석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이 콘 본인은 훗날 자서전에서, 자신의 영향력으로 담당 판사와 검찰 측 대표가 결정되었다고 직접 서술했습니다. 이것이 사실 그대로인지, 아니면 자기 역할을 부풀린 허세인지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입니다. 담당 판사였던 어빙 코프먼과 부적절한 사적 교감을 나눴다는 의혹도 오래 따라다녔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가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재판의 결과가 아니라 재판의 무대 자체를 설계했다고. 누가 심판할지를 자기가 정했다고.


더 무거운 사실이 있습니다. 에델 로젠버그는 두 어린 아들의 엄마였습니다. 그녀에게 적용된 증거는 남편에 비해 훨씬 취약했습니다. 핵심 증인이었던 에델의 친오빠 데이비드 그린글래스는 먼 훗날, 자신이 위증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동생을 사형대로 보낸 그 증언이 거짓이었다고 말입니다.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흐릿하게 남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또렷합니다. 그 재판에서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진실을 선고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로이 콘에게 재판이란 진실을 규명하는 신성한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입증하는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믿음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평생의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공포는 설계할 수 있다


매카시즘 시절, 로이 콘이 사용한 전술은 놀라울 만큼 단순했습니다. 대담하고 자극적인 혐의를 던진다. 혐의를 받은 사람에게 결백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언론을 이용해 공포를 키운다. 그리고 아무리 반박당해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이 시기 그가 남긴 말들은 그의 방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나는 정중한 편지를 쓰지 않는다. 협상 따위는 싫다. 나는 싸우는 걸 좋아한다."

"나는 적의 최악을 끌어낸다. 그렇게 그들이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라. 그리고 실행할 생각이 없으면 절대 협박하지 마라. 한 번이라도 빈말을 하면, 다음부터는 아무도 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협박조차 신용 관리의 영역으로 보았습니다. 공포를 유지하려면 약속한 보복은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는 것.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도 정리했습니다.


"나의 공포 유발력은 높다. 나의 무대는 논란이다. 강인한 외면이 나의 가장 큰 자산이다."


여기서 그의 진짜 천재성이 드러납니다. 그가 장악하려 한 것은 판사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판사를 움직이는 여론, 그 여론을 만드는 공포였습니다. 공포가 충분히 크면 굳이 판사를 매수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가 알아서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니까요.


보통 사람은 평판이 나빠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로이 콘은 그 평판조차 무기로 만들었습니다. 저 사람을 건드리면 피곤해진다, 저 사람과 싸우면 끝까지 간다, 저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은 그 자체로 힘이 됩니다.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가 먼저 손익을 계산하게 만들면 됩니다. 무서운 사람은 모든 싸움에서 이길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가 싸움을 피하게 만들면 이미 절반은 이긴 것입니다. 한 평론가의 표현처럼,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혐오한다는 사실 자체를 즐겼습니다. 그것이 곧 자신이 상대에게 공포를 심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매카시즘의 본질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경력과 삶이 무너졌지만, 정작 끝까지 단 한 명의 진짜 소련 간첩도 밝혀내지 못한 마녀사냥. 로이 콘은 그 사냥의 가장 영민한 사냥개였습니다.


모순이 만들어낸 맹수


그토록 지독하게 승리에 집착했던 로이 콘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의 맹렬한 공격성은 역설적으로 가장 깊은 공포와 결핍에서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20세기 중반 주류 미국 슬롯에서 유대인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천장에 부딪히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숨겨야 했던 동성애자였습니다.


이 부분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사적 영역을 포함하므로 조심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정체성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기 안의 취약성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입니다. 그는 부드러워지는 대신 더 거칠어졌습니다. 인정하는 대신 더 부정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더 큰 공격성을 선택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동성애자들을 공직에서 몰아내는 이른바 '라벤더 공포'에도 앞장섰던 인물로 기록됩니다. 타인의 비밀을 폭로해 그 삶을 무너뜨림으로써, 역설적으로 주류 슬롯에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고 스스로의 비밀을 은폐하려 했던 셈입니다.


이 지독한 자기기만은 로이 콘이라는 인물이 지닌 비극의 핵심입니다. 그는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게 아니라,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들킬까 봐 두려워 먼저 세상의 숨통을 끊기로 한 나약한 맹수에 가까웠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타인의 수치심을 무기로 씁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타인을 두렵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약함을 미워하다가, 약해 보이는 모든 사람을 경멸하게 됩니다. 로이 콘은 그 인간형의 극단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많은 권력자를 곁에 두고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었던 이유도, 어쩌면 그 소음과 인파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 공허함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포식자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법을 끝내 배우지 못한 사람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방식


여기까지 읽으면서,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셨나요?


공격하라.

아무것도 인정하지 마라.

모든 것을 부정하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승리를 선언하고,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마라.


이것은 로이 콘이 한 젊은 부동산업자에게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원칙입니다. 1973년, 트럼프 가족 기업이 인종차별적 임대 관행 혐의로 법무부의 소송을 당했을 때, 로이 콘은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거액의 맞소송을 냈고, 언론을 끌어들였습니다. 소송은 결국 합의로 끝났지만, 그 방식 자체가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는 사과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격받으면 더 크게 공격한다.


그 젊은 부동산업자가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그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내 로이 콘은 어디 있나?"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트럼프가 평생 3천 건이 넘는 소송에 얽혔다는 사실, 소송을 분쟁 해결이 아니라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분석은 로이 콘의 방식이 그대로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방식이 정치판이나 법정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진짜 불편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법을 매일 목격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더 큰 소리를 치면 주변이 피곤해집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오히려 예민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설명하려는 사람의 말은 길어지고, 공격하는 사람은 짧고 강한 문장 하나로 분위기를 가져갑니다.


진실은 복잡합니다. 프레임은 단순합니다.

진실은 시간이 걸립니다. 프레임은 먼저 도착합니다.


로이 콘은 그 차이를 알았습니다. 그는 진실이 도착하기 전에 프레임을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종종, 진실보다 먼저 도착한 프레임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성찰하는 순간 오히려 약점이 잡히는 슬롯. 과정의 정당성보다 결과적인 승리가 모든 흠집을 덮어버리는 분위기. 온라인에서 사실보다 캡처가 먼저 돌고, 맥락보다 분노가 먼저 퍼지는 풍경. 로이 콘은 오래전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남긴 뻔뻔함의 문법은 가장 효율적인 생존 기술로 둔갑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까지 읽으면 로이 콘을 미워하는 일은 쉽습니다. 잔혹하고, 비열하고, 양심이 없는 사람. 멀리 떨어진 악인을 손가락질하는 일은 늘 편안합니다.


회사에서 새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우리는 일의 내용보다 먼저 그 일의 결정권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합니다. 누군가와 부딪힐 일이 생기면, 항의하기 전에 그 사람의 배경부터 검색해 봅니다. 옳은 말인지보다 누가 한 말인지를 먼저 따집니다. 규칙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 곁보다, 규칙을 만드는 사람 곁에 서고 싶어 합니다.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 때도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글을 쓰면 언젠가 알아봐 줄 거라 믿고 싶지만, 동시에 압니다. 플랫폼의 구조, 독자의 취향, 시기의 운, 노출의 알고리즘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좋은 글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옳은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덜 아쉬운 사람이 우위에 설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기다리고, 더 많이 필요한 사람이 더 자주 설명합니다.


이게 잘못된 걸까요? 아니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솔직하게 받아들인 것뿐일까요? 다만 분명한 건, 우리가 매일 작은 로이 콘의 문법을 사용하면서 산다는 사실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갑니다. 그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라고 믿으면서요. 로이 콘은 그 품위마저 비효율이라며 벗어던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거울이 아니라, 우리가 끝내 되지 않기로 선택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그를 향해 느끼는 분노의 밑바닥에는, 어쩌면 나도 저런 힘을 쥐고 세상을 통제해보고 싶다는 매혹이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혹은 저런 포식자의 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 역시 언제든 무력하게 짓밟힐 수 있다는 생존의 공포가 함께 있습니다.


그를 허락한 시대, 그리고 그를 버린 시대


로이 콘의 삶을 그 한 사람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를 만든 건 시대였습니다.


냉전의 공포는 그에게 무대를 주었습니다. 누군가를 빨갱이로 지목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끝낼 수 있던 시대. 증거보다 분위기가, 사실보다 공포가 앞서던 시대.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로이 콘의 재능은 그렇게까지 위험해지지 못했을 겁니다. 돈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1980년대 뉴욕은 그의 뒷거래를 '능력'이라 부르며 떠받쳤습니다. 시대가 그의 칼에 날을 세워주었습니다.


동시에 그 시대는 그에게서 한 가지를 끝까지 금지했습니다. 그 자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슬롯는 그가 타인의 삶을 유린하는 것은 너그럽게 허락했지만, 그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동성애자로 존재하는 것만큼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거대한 구조 속에서 그는 늘 판을 지배하는 갑(甲)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시대의 억압이 만들어낸 가장 비극적인 돌연변이였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를 무너뜨린 결정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그 숨겨진 자아와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매카시 청문회 시절, 그는 절친한 동료 데이비드 샤인이 군에서 특혜를 받도록 무리하게 손을 썼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청문회 전체가 스캔들로 번졌습니다.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었던 것을, 가장 공개적인 무대에서 스스로 드러낸 셈입니다.


시대는 변덕스럽습니다. 그를 키워준 바로 그 세상이, 마지막에는 그를 버렸습니다.


매수할 수 없는 판사 앞에서


모든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의 오만은 생의 마지막에 극적으로 무너집니다.


인간이 만든 법정의 판사는 인맥과 거래로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마지막 판사는 결코 매수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그는 에이즈와 마주합니다. 화려했던 육체는 속수무바카라으로 쇠약해졌고, 그가 쌓아 올린 모래성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죽어가는 의뢰인을 속여 유언장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고치도록 했다는 혐의 등으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평생 법을 무기로 휘둘렀던 사람이, 결국 법조계에서 추방된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소설이라면 지나치게 노골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상징적인 결말입니다.


죽음이 턱밑까지 왔을 때도 그는 자신의 병을 에이즈가 아니라 간암이라고 우겼습니다. 평생 '약자는 패배자'라는 공식 속에 살았던 그에게,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 끔찍한 굴욕이었을 겁니다. 그가 한 다큐멘터리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해명하지 않았고, 단 한순간의 후회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잔혹한 역설은 그가 남긴 유산에서 나왔습니다. 그가 병으로 권력의 끈을 놓기 시작하자, 화려했던 파티의 인맥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며 모든 문법을 전수해 준 제자 도널드 트럼프마저, 그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곧장 거리를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마라, 약자는 버린다"는 로이 콘의 가르침을, 그의 제자가 그를 상대로 가장 완벽하게 실천한 셈입니다.


평생 공포로 사람을 다스렸던 남자가, 정작 자신이 가장 약해진 순간에 가장 먼저 버림받았습니다. 이보다 더 그의 세계관을 정확하게 증명하는 결말도 없을 겁니다.


강한 사람인가?
강해 보여야 했던 사람인가?


그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을까요?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는 소리쳤고, 몰아붙였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적에게 두려움을 주었고, 의뢰인에게는 강력한 방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진짜 강함은 무엇입니까. 자기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것. 사과할 수 있는 것.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두려운 것을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이 기준으로 보면 로이 콘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강해 보여야만 했던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는 "나는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그의 힘이었고, 동시에 그의 감옥이었습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평화로운 순간에도 싸움의 냄새를 찾습니다. 논쟁이 없으면 논쟁을 만들고, 적이 없으면 적을 상상합니다. 타인을 믿는 일이 어색하고, 조용한 친밀감보다 긴장과 우위가 익숙해집니다. 그런 삶에서는 휴식도 의심스럽고, 사랑도 거래처럼 보이고, 침묵마저 패배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로이 콘을 보며 악인의 얼굴만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그의 행적은 분명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그 안에서 한 인간의 피로를 봅니다. 끝까지 강해야 했던 사람. 끝까지 부정해야 했던 사람. 끝까지 싸워야만 자기 존재가 유지된다고 믿었던 사람. 그는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자기 자신도 다치게 했습니다.


우리는 왜 아직 그를 떠올리는가?


세상의 법을 조롱하며 마천루 꼭대기에서 샴페인을 기울였던 그는, 정작 단 한 번도 타인의 진실한 사랑이나 존중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병명조차 거짓말하며 본연의 자아를 부정해야 했던 삶. 그 공포와 외로움을 우리는 승리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전히 그를 떠올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의 방식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누군가는 여전히 법이 뭔지보다 판사가 누구인지를 먼저 묻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가 보다 누구를 아느냐가 결과를 좌우하는 장면을, 우리는 뉴스에서, 회사에서, 타임라인에서 매일 봅니다.


로이 콘은 세상의 작동 방식을 정확히 읽어낸 사람일까? 아니면 세상을 그렇게 더럽게 만든 사람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진실을 본 동시에, 그 진실을 핑계 삼아 더 나쁜 쪽을 선택한 사람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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