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저녁놀
그가 또 살그머니 바카라 한 권을 놓고 갔다. 누군가 읽은 흔적이 남아 있는 바카라을 보는 일은 엿보기나 훔쳐보기와 닮은 데가 있다. 나도 모르게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는 점에서. 그 빠른 심장 박동을 뇌는 종종 설렘으로 해석한다.
그가 슬쩍 두고 간 바카라들의 리스트를 보니 장르를 넘나들며 산만하다. 나를 닮았다. 누군가는 초록이나 노랑, 회색 빛깔의 바카라은 왜 없는지 물을 지 모른다. 심지어 노랑은 삼원색 중 하나인데 왜 빠졌느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모른다. 바카라을 골라 읽고 두고 간 건 내가 아니라 그였고, 나는 그저 바카라 속에 남긴 흔적을 더듬으며 내가 발견한 빛깔을 기록했을 뿐이다.
이 바카라은 바카라 속에 등장하는 80 권의 바카라에 대한 서평도 해설서도 아니다. 그저 그가 슬쩍 두고 간 바카라 속에 남겨둔 밑줄이나 메모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남긴 불완전하고 때로는 암호 같은 흔적이 나의 바카라 읽는 시간을 설레게 했듯이, 내가 남긴 흔적이 당신이 바카라을 집어 들고 읽게 만드는 작은 자극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당신이 이 바카라을 읽고 발견할 빛깔은 과연 무슨 색일지 궁금하다.
신간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저녁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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