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험한 세상에서 지켜보겠다는 아빠의 사랑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6학년 때였는지 중학교 1, 2학년 때였는지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저녁의 충격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아빠가 딸 셋 중 큰딸인 나만 불러 방 안으로 데리고 갔다.
학교 다닐 때, 이걸 꼭 갖고 다녀라.
아빠가 조심스레 건넨 물건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총처럼 시커먼 것이었지만 기역자가 아니라 잡으면 한 손으로 두툼하게 잡힐 네모난 상자 모양. 단지 한쪽 끝에 뾰족한 못 같은 게 두 개 솟아 있었다. 신기한 새 장난감을 받은 듯 두 손에 그것을 넣고 이리저리 만져 보았다.
조심해야 돼. 아무 때나 누르면 안 돼.
그제야 버튼 같은 게 보인다. 물건을 얼른 내 손에서 뺏은 아빠는 조심스레 한 손으로 그것을 들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물건의 버튼을 꾹 눌렀다.
순간 못처럼 보였던 뾰족한 두 금속 사이로 번쩍하는 빛이 쏟아졌다. 빛과 함께 모든 걸 삼키고, 태우고, 녹여낼 듯한 끔찍한 소리가 났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항상 가방에 지니고 있으라고 했지만, 도저히 그걸 건네받을 수 없었다. 온몸이 덜덜 떨리도록 무서웠다.
그 후 그건 늘 내 바카라가방 주머니 안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들어있는 주머니의 지퍼조차 열지 못했다. 그 주머니를 만지기는커녕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못했다. 그게 절실히 필요한 급박한 순간이 왔어도 아마 그걸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딸을 셋이나 둔 아빠가 오랜 고민 끝에 사 온 물건. 큰딸이 이제 달거리를 시작해 제법 처녀티가 나니, 산부인과 의사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산부인과라는 곳이 매일 축복 속에서 아기들이 태어나는 곳만은 아니란 걸 그때는 몰랐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찾아오는 환자들 중에 내 또래의 어린 여자애들이 있었다는 것도. 어린 환자들을 접할 때마다 아빠는 걱정을 넘어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전기충격기를 큰딸에게 건네주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을까? 아빠의 두려움이 조금 가셨을지 모르는 그 순간, 두려움과 공포는 고스란히 내게 전가되었다. 어렸던 나는 내가 성폭력이나 강간 등 무시무시한 폭력의 잠재적 피해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기충격기에서 충격적인 빛과 소리가 터져 나오던 그 순간, 그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겁 없이 흥얼거리며 걸어 다니던 등하굣길이 무서운 길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 또는 범죄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30년도 더 지난 일이고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해가 지면 혼자 바깥을 다니지 못한다. 어쩌다 그래야 할 때가 오면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며 쏜살같이 집을 향해 달려온다.
어둠에 예민하다. 어둠이 시작되면 모든 생활을 중단하고 침대로 도망간다. 전기자극에 예민하다. 한의원에서 침 맞을 때 전기자극을 주는 전침치료나,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할 때 전기자극을 주는 치료를 받지 못한다. 스킨십에 예민하다. 사람이 많은 거리, 만원 전철이나 버스 등에서 어쩔 수 없이 몸을 부대껴야 하는 상황도 잘 견디지 못한다. 남자에 예민하다. 상대는 나를 전혀 여자로 보지 않을 상황에서도 남자와 단둘이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이 모든 공포는 전기충격기 버튼을 누른 그 순간 시작되었다. 세상의 늑대들로부터 딸을 지켜내고 싶었던 아빠의 사랑에서부터. 사랑하는 딸을 험한 세상에서 지켜보겠다는 마음으로 전기충격기를 선물했겠지만, 딸이 건네받은 건 충격과 공포였다. 정말 공포가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걸까?
30여 년이 지난 후, 공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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