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이라는 종이 거울: 슬럼프의 바다를 건너는 항해일지

34kg 감량과 6년의 유지를 만든 '기록의 소매틱스'

by김요일
photo_2026-02-21_19-18-56.jpg

매트 위에서 땀을 흘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나의 의식이 있다. 바로 기록이다. 풀업과 크런치, 스쿼트 같은 웨이트 트레이닝부터 빈야사와 아쉬탕가 요가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날의 종목과 횟수, 강도를 지독할 정도로 꼼꼼하게 적는다. 등, 흉근, 복근, 엉덩이, 허벅지, 이두와 삼두 등 자극을 준 신체 부위는 물론이고, 운동 후 체중계가 뱉어내는 수치들—BMI, 골격근량, 골질량, 체수분, 체지방량—을 데이터화하여 수첩에 새긴다. 3주에 한 번씩 이 ‘항해일지’를 분석해 운동 프로그램을 수정해온 결과, 나는 100일 만에 34kg을 감량했고 체지방 12.4%의 몸을 6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나의 운동은 ‘매트 위에서 절반, 수첩 위에서 절반’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록은 운동의 실체적 의미를 보여주는 종이 거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각의 동물이다. 두뇌가 처리하는 정보의 80%가 시각 정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에 의존한다. 하지만 운동의 성과는 야속하게도 즉각적이지 않다. 오늘 죽을힘을 다해 스쿼트를 했다고 해서, 내일 아침 거울 앞에 울끈불끈한 근육질 몸이나 매끄러운 라인이 바로 비춰지지는 않는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몸매에 실망해 수많은 이들이 수련을 포기한다.

그때 나는 수첩을 펼친다. 거울에 비춰지지 않는 나의 노력이 수첩에 비춰진다. 운동 내역을 글과 이미지로 시각화한 수첩 속에는 열심히 운동해온 나의 궤적이 선명하다. ‘해봤자 무슨 소용인가’라는 회의감이 고개를 들 때, 나는 그간 쌓아온 기록의 두께를 본다. 거기엔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지독하리만치 아름다운 나의 노력이 박제되어 있다. 종이 거울 속에 비친 그 성실함이 다시금 운동화 끈을 묶을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다.

또한 기록은 슬럼프라는 짙은 안개를 헤쳐나가게 돕는 나침반이다. 대개 운동 시작 3주 차가 되면 새로운 동작에 대한 설렘은 사라지고 지루한 반복이 시작된다. 동작이 몸에 배어 운동 효과는 정체되고, 도파민이 터지던 즐거움도 시들해진다. 소위 말하는 ‘슬럼프’다. 사실 이는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인간의 몸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도록 진화했다. 반복되는 활동을 빠르게 ‘습관화’하여 뇌를 쉬게 하고 에너지를 아끼려는 생존 전략인 셈이다. 운전 경력이 쌓이면 신경 쓰지 않아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이 효율적인 습관화가 ‘체중 감량’과 ‘근성장’에는 치명적인 정체기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몸이 동작에 익숙해지는 순간, 칼로리 소모는 급격히 줄어든다. 이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바카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록을 하는 이에게 3주 차의 정체기는 ‘내 몸이 생존을 위해 열일하고 있다’는 신호일 뿐이다. 나는 기록을 분석해 궁변통구(窮變通久)를 실천한다. 습관화된 시퀀스를 비틀고, 부족한 자극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변주를 설계하여 슬럼프의 바다를 유연하게 건너간다.

나에게 운동 기록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연료 삼아 쓴 인생의 항해일지다. 일상의 허무와 방황이 나를 덮칠 때면, 나는 굵은 땀방울과 거친 호흡으로 새겨진 이 지도를 펼친다. 타오르는 근육의 통증으로 기록된 이 여정은 내 인생이 여전히 의미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단단한 섬이다. 나는 그 섬에서 오늘도 나만의 바디프로필을 갱신하며, 더 깊은 삶의 바다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다.


나마스떼.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간장 종지 만한 하늘 아래서, 낙타가 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