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게

다시 시작이다

by희망
그게 가장 견디기 어려워. 때로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게 말이야. 특히 밤에는 더 그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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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4차가 시작되었다. 아직 병원을 가기 전이지만 진료 예약을 했으니 시작이다. 이 시기, 다음 시험관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때가 오면 도망치고 싶어진다. 내 삶으로부터, 해야 할 과정으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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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은 어딘가로 훌쩍 떠나서 할 일없이 돌아다니곤 했다. 여행을 다녀와도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달래서 마음이 단단해진 상태로 진료를 시작하고 싶었다. 신나서 여행 계획을 짤 때는, 여행을 가고 싶어서 시험관을 핑계 삼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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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또 기대하고 실망하고. 그 반복이 가장 힘들다. 사소한 변화에 작은 기대를 걸었다가 실패라는 것을 알게 되면, 믿을 수없이 빠른 속도로 멘탈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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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바카라에서 읽은 내용이 가끔 생각난다. 수용소에서 성탄절부터 새해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는 가혹한 노동조건, 식량 사정의 악화, 기후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었단다.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으리라라고 막연히 기대하던 희망이 상실'되었기 때문이었다. 수용소와 비교하는 건 너무 과하지만 '희망의 상실'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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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초기에는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희망이 생겼다. 희망을 가졌다. '이번엔 될 거야. 왠지 느낌이 좋아.'

그랬다가 금세 '아니야. 안 될지도 몰라. 괜한 기대 갖지 말자.' 하루에도 수만 번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붙들어야 했다. 지금은 음..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이 시간'이 힘겹다. 무덤덤하게 임하면 참 좋을 텐데 그게 너무 어렵다. 게다가 희망 없이 진료를 받는 건 모순이다. 가능하다고 믿으니 노력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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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 노력과 상관없이 운명처럼 정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무기력해진다. 확률이 극도로 낮은 로또를 맞추며 기대하는 느낌. 그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매일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 - 밥하기, 설거지, 바카라 읽기, 글쓰기, 모임 등. 근데 그게 또 어렵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 집중하지 않고 다 내던져버리는, 잠깐의 일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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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여행을 가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에 꼼짝없이 붙잡혀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래서 모든 일로부터 도망쳤다. 밥을 하지 않고, 청소도 일도 안 하고, 글도 안 쓰고, 모임에도 불참했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났다. 하지만, 나는 과연 벗어났던 적이 있던가. 결국 나는 내일 병원에 갈 테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쿠크다스 멘탈을 붙잡고 이 과정이 끝나기를, 좋은 소식이 오기를 또 기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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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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