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리츠(Fritz)’
첫 독일어 회화 시간에 선생님이 이름표를 나눠주며 독일 이름을 정하라고 했을 때,
고민 끝에 선택했다.
짧고 발음하기 쉬워 보였고,
독일 남자 이름 중 흔하다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이 이름은 그날 이후로
나에게 묘한 상징이 되어버렸다.
“프리츠.”
처음으로 독일어 이름이 불렸을 때, 모두가 교실에서 한 번씩은 자기 이름이 불리는
그러니까
출석 부르는 시간이었으므로
의례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릿속에
긴 코트를 입고 철십자기를 단 병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묘하게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흐릿했는데,
비로소 확연히 느껴진 것이다.
원어민 선생님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릴 때
옆에서 친구가 말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 병정1.’
나는 갑자기 영화 화면에서
고위급 간부가 지나가는 주변에서
보초를 서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어딘가 음침한 그림자 속에서 나치 경례를 붙이며 손을 높이 올리고 있는 모습.
그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이름이 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프리츠라는 이름은 그때부터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사실 칠판에 쓰인 이름 중에 총을 들고 있지 않을 법한 이름을 찾기는 어려웠다. 마치 독일어 이름은 모두 중대한 역사 속 장면과 관련 있는 듯했다.
‘한스’, ‘울리히’, ‘디터’.
그 모든 이름이 영화 속 독일 병정처럼 들렸다. 프리츠는 그나마 간결하고 무게감이 덜한 이름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다소 건조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단순함 속에 일종의 친숙함이 있었다.
“나는 울리히, 근데 너는 누구냐?”
“야, 난 이제부터 한스라고 불러!”
나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프리츠야”라고 대답했다.
원래 한국 이름이 아닌 외국 이름을 자기 이름 삼는 건 어쩐지 어색했고 나 같지 않았다. 누군가는 외국에 나갔을 때 쓸 이름이 될 수도 있으니, 신중히 골랐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 이름을 다시 소리 내어 말할 때마다
묘하게
쓴맛이 느껴졌다. 독일어 이름이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 이름에 얽힌 역사적 이미지 때문일까?
그때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