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대학생 시절, 나는
딱히 진보적이거나 존경받을 만한 사고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특별히 나쁘지는 않았지만,
엄청 혁신적이거나 대단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내가 나름대로 개혁적 성향을 품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어정쩡한 방식으로 이도 저도 아닌 생각에 머물러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자신을 중도로 착각하는 보수였을지도 모른다.
대개 손쉽게 ‘중용’의 균형적 사고를 언급하는 경우처럼.
그것에 대해 강한 타격을 받을 만한 집단에 속한 경우도 드물었다. 소설가 지망생들과 어울리면서
비로소 진보의 생각과 충돌하는 면도 생겼는데, 그 전에는
안온했다는 건 대체로 보수적 성향에 속했거나
비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보수적 성향에 있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더구나 대학에서도 운동권의 색채가 급속하게 빠지고,
병역 문제로 휴학 후 복학했을 때는
이제 진보적 사상을 전투적으로 논하는 분위기는 묽어졌다고 해야겠다.
또 2010년대에 SNS에서 들끓기 시작한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속한 집단이 나쁠 수 있다는 전환을 경험하기도 했고, 우리나라에 ‘강간 문화’가 있다는 둥 하는 비판, ‘맨스플레인’ ‘가스라이팅’ ‘여혐’ 등에 관해서도 개념이 과하게 설정되었다는 생각을 할 만큼 미지의 영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문제 의식이 약하거나 없을 만큼 그 중심에서 벗어난 채 안온한 무풍지대에 있었다고 해야겠다.
그 균열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계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알지 못했던 관점을 조금씩 접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니, 그 전에 써두었던 글에 대해 누군가 불편해 했던 게 비로소 떠올랐다. 여기서는 <프롤로그>에 배치한 글로, 못내 마음이 걸린 지점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다만 학점이 D-였다는 건 기억한다. 그러니까 강좌 철회하고 다른 걸 들을 수도 없는 그 학점, F만도 못한 놈이라는 그 학점, D. 임산부를 뜻하는 이모티콘인 그……, 그러니까 성적표에 떡하니 버틴 D를 긁어냈다가는 반인륜적이라 욕먹을 수도 있을 듯한 그…… 학점. ‘ㄷㄷㄷ’ 소리치며 우는 D를 가엾게 바라보던 학점들과 야유하는 학점들의 이중창이 들렸을 수도 있겠다.” (프롤로그)
이 글 속에는 컴퓨터 실습에서 받은 ‘D-’ 성적표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담겨 있다.
“임산부를 뜻하는 이모티콘 같은 그 D-,”
나는 그때 그 글을 쓰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성적표에서 D-를 없애면 마치 반인륜적인 일이 아닐까?” 하고 농담조로 쓴 글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은근한 불편함을 느낀다.
나의 작은 농담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표현이 너무 경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SNS에서는 이런 유의 농담을 지적하며 불편하다고 했는데, 마치 내게 지적한 듯해
기억에 남기도 했다.
과거에는 가벼운 농담이라 여겼으나, 이제 보니,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차대한 경험일 수 있을 임신을, ‘긁어냈다가는’이라는 낙태를 연상하게 하는 표현과 결부시켜 써놓은 것이기도 했다. 물론 그때는 낙태를 떠올렸다기보다는 단순히 성적표 점수 조작을 표현한 것이라지만, 나중에 보니, 연계성이 있어 보였다.
분명 그때는 “뭘 그렇게 민감하게 굴까?” 싶었다. 하지만 시절은 흘러,
점점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그것을 온전히 수용하지는 못하면서도, 많은 지점에서 타자화된 여성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면서,
약간은 내게도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