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의 생일을 맞이한 거장이 들려준 감흥 속으로
백건우 & 슈베르트 연주회 관람 기회가 생겼다. 위대한 거장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설렘과 동시에 마음 한편에선 갈까 말까 하는 고민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피아노는 썩 좋은 기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습소를 방문했다. 새하얀 얼굴에 은테 안경을 쓴 선생님은 어린 나이에도 차갑게 다가왔다. 5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새까만 피아노와 둘이 남겨졌다.
선생님 손엔 자가 하나 들려있었다. 음이 틀리거나 손가락이 바로 서지 않으면 '탁'소리를 내며 여지없이 날아왔다. 가기 싫다는 말도 못 한 체 2년 넘게 억지로 배웠다. 체르니 40번에 다다랐고, 얼추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칠 정도는 되었지만 여전히 좋다란 감정은 품지 못했다. 다행인지 교습소가 문을 닫았고, 겨우 피아노에서 해방되었다.
불편했던 기억도 80세가 다된 거장의 공연을 막을 순 없었다. 미리 예매를 해서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모임 당일 지인들과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야외 음악 분수 앞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다들 얼굴에서 공연에 관한 기대가 서려있었다.
무대 위에 백건우 씨가 나타났다. 백발에 품이 넉넉한 양복을 입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잠시 침묵이 흘려보내고 이내 첫음이 주변으로 퍼졌다. 그건 귀가 아닌 마음을 울리는 소리였다. 힘을 빼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타고 거장이 들려주는 슈베르트는 삶이 멜로디로 다가왔다. 때론 즐겁고 슬프게, 또 때론 잔잔하다 격정적으로. 수백의 눈동자는 오롯이 무대 중앙의 그에게로 향했다.
'띵'하는 피아노의 한 음이 사라질 동안 주변엔 미동도 없었다. 진한 여운은 큰 한숨으로 대신했다. 1부는 숨 쉴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끝났다. 잠시 쉬는 동안 밖에 서서 사라지지 않은 감흥을 나눴다.
2부가 시작되고 그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연주가 펼쳐졌다. 내 눈엔 80의 생일을 맞은 거장이 아닌 20대의 젊은 청년이 보였다. 슈베르트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불안정한 삶의 단편이 피아노 소리로 그려지듯 펼쳐졌다. 소리가 아닌 보인다는 건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였다. 오른쪽으로 돌아간 고개가 불편했다. 눈을 잠시 감고 음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저 난 그의 시선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이 피아노를 떠날 때 그제야 공연장에 있음을 깨달았다.
거대한 박수소리에 일일이 고개 숙여 답했다. 주머니에서 꼬깃한 종이를 꺼내 소외를 전했다. 80을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있었고, 옳은 방향으로 가기도 그릇된 방향으로 가기도 했단다. 그 모든 것이 삶을 이롭게 하고 싶었고 도구가 피아노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존재, 오늘은 그 수호천사가 참여한 여러분이란 말에 코끝이 찡했다.
피아노는 모른다. 슈베르트는 더더욱 모른다. 건반으로 전해진 오늘은 내일과는 조금 다를 내 안의 양식을 가득 채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