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 무렵에 눈이 왔다. 한 달에 두어 번 차를 가져오는데 하필 그 날이었다. 아무래도 운전하기 힘들 것 같았다. 수요일에 차를 쓰는 아내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분노의 카톡이 왔다. 집에 가기 몹시 두려웠다.
드디어 인사 공고문이 떴다. 이때쯤이 되면 다들 마음이 들썩인다. 예정일보다 며칠 지나서인지 긴장감은 더했다. 우리 팀 선배 한 분은 이번에 일선으로 돌아간다. 나는 결국 본부에 남기로 했다. 잘한 결정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더 버텨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있기로 한 이유는 선배의 영향이 컸다. 부서장과의 면담 후 마음이 갈팡질팡 했었다. '승진'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혹에 흔들렸다. 그때 선배는 차 한잔하자고 했다. 다른 어떤 것 보다 그 말 한마디가 마음을 고정시켰다.
"그래도 실배 계장은 베푸는 일을 하고 있잖아. 나도 힘들 때 그 생각으로 버텼어."
의미가 중요한 나에게 하필 그 말을 해가 지곤. 그때부터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선배의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선배는 우리 쪽 업무에 특화된 분이었다. 주어진 일은 군말 없이 밤을 새워서라도 완수했다. 계속해서 본부에 붙들려왔고, 몸이 부서지라 일했다. 오십이 조금 넘은 나이에 벌써 머리카락은 몇 가닥 없고, 몸은 바싹 말라 거죽만 남았다. 결국 이번에도 숫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나빠져 부득이하게 내려가게 되었다. 허리고, 어깨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이제 이곳 생활도 마지막이라며 얇은 미소를 짓는데, 왜 이리 마음이 짠한지. 길었던 고통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일보단 본인을 먼저 챙겼으면.
베테랑 선배가 떠났기에 남겨진 사람의 몫이 더 커졌다. 험난한 미래가 불 보듯 뻔하다. 나는 나를 지키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주어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대신 다른 무기를 갈고닦을 것이다. 나에게는 글과 바카라이 있다. 바카라 속에 빠져 잠시 고된 현실을 잊고, 헛된 투정이라도 글에 담아 날려보련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은 다시 찾아온다. 그날을 위해서 천천히 한 걸음 내디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