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은 대부분 일상생활과는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20세기 이후 현대과학으로 올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이제 인간의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과학이 새로 탐구할 만한 것이 이전만큼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과학 발전이 낳은 역설적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과학연구는 인간의 현실적 감각을 아득히 넘어서는 영역에서 주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초끈이론, 중력파, 나노물질, 복잡계 같은 주제들이 그렇습니다. 물론 이 연구들은 해결만 한다면 인류의 지식 지평을 크게 넓힐 수 있는 난제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뭔가 발견한들 우리 삶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과학이 인류의 삶을 크게 바꾼 사례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MSG(Mono Sodium Glutamate), 글루탐산 나트륨의 발견입니다. 오늘날 음식 조리의 필수품으로 꼽히는 그 하얀 가루 맞습니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MSG를 친다”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밋밋하고 평범한 사실에 맛깔스러운 과장을 한 스푼 넣어서,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만든다는 비유입니다.
MSG의 등장은 식문화의 역사에서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즐겨 먹는 컵라면, 떡볶이, 치킨, 삼각김밥을 떠올려 보면 쉽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아무 맛도 없던 맹물에 라면 스프를 털어 넣으면, 입안 가득 깊은 풍미가 밀려듭니다. 이런 깊은 맛은 과거에는 가마솥에 소뼈를 며칠씩 고아내거나, 수많은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정성껏 우려야만 겨우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제는 아주 싼 비용으로 단 몇 초 만에 재현해 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MSG의 기원은 20세기 초 일본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케다 기쿠나에라는 화학자가 최초 발명자입니다. 1864년생인 그는 뛰어난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아 일본 정부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물리화학의 거두이자 190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빌헬름 오스트발트에게 배웠습니다. 귀국해서는 도쿄제국대학(지금의 도쿄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1907년 어느 날의 일입니다. 그날 식탁에 올라온 국물 요리가 유독 맛있었는데, 아내에게 비결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다시마를 우려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케다는 과학자다운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그럼 이 다시마 맛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나?”
사실 예나 지금이나 맛을 낸다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입니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케다의 입맛을 사로잡은 다시마 국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섬세한 온도 조절과 정확한 비율로 오랜 시간 다시마를 우려내야만 그 맛이 났습니다. 이케다는 이 까다롭고 비효율적인 조리법을 화학적으로 표준화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날 이후 이케다는 엄청난 양의 다시마를 실험실로 가져와 구성 성분을 분석했습니다. 그 끈질긴 연구 끝에 맛의 핵심 성분이 글루탐산(Glutamic acid)임을 발견해 냈습니다. 글루탐산은 생명체의 단백질을 이루는 20종의 아미노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자연계의 거의 모든 식품에 함유된 천연 성분이기도 합니다. 이 발견은 동양인들이 오랫동안 "맛있다"라고 느껴왔던 다시마, 멸치, 가랑어포 등에 숨겨진 맛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형태의 글루탐산은 강한 산성을 띠어서 물에 잘 녹지 않았고, 미세하게 신맛이 섞여 있어 그대로 음식에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케다는 실험을 거듭한 끝에, 글루탐산에 소듐(나트륨) 이온을 결합하여 산성을 중화하는 해결바카라을 고안해 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글루탐산 나트륨은 신맛이 줄어들었고 물에도 잘 녹았습니다. 국물 속에 녹은 MSG는 혀의 미각 세포와 빠르게 반응하면서 특유의 감칠맛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케다는 완성된 최종 성분을 고운 하얀 결정 형태로 만들어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이렇게 원천기술을 개발했으니 다음 차례는 비즈니스였죠. 이케다는 스즈키 제약과 제조 기술을 공유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제품의 이름은 ‘맛의 근원’이라는 뜻의 아지노모토(味の素)로 정했지요.
1909년 출시된 아지노모토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상품 출시가 새로운 시장 자체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아지노모토는 ‘조미료계의 아이폰’이라고 할 만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아이폰도 그랬듯) 음식에 넣는 조미료라는 개념을 낯설어했습니다. 하지만 그 놀라운 맛의 효과를 체감하자 대번에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소금 간처럼 뿌리기만 하면 음식이 맛있어지는 ‘마법의 가루’로 여겨진 것이죠. 이게 워낙 잘 팔리니까 스즈키 제약은 1946년 회사 이름도 아예 아지노모토로 바꿔버렸습니다.
아지노모토의 대성공에는 일본의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라는 슬롯적 배경도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막 근대화를 시작한 당시 일본의 목표는 “서양을 따라잡자!”였거든요. 그래서 서양의 학문과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배우려고 했지요. 정치와 경제는 물론, 생활과 문화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식문화에서는 충분한 영양 섭취가 중요했습니다. 체구가 왜소했던 일본인들은 식생활을 개선해 덩치를 서양인처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떄문입니다. 실제로 메이지 시대에는 육류 중심의 서양식 식단이 권장되었고, 음식 먹는 방법까지 교육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규나베(소고기전골)가 이 시대의 인기 메뉴였죠. 그것을 먹는다는 건 그저 새로운 음식을 즐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빨리 서양처럼 되어야 한다”라는 국가적 목표의 달성과 연관되었습니다.
MSG 개발에도 이런 영양 강화에 대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케다가 독일 유학 시절부터 관심을 가진 주제이기도 했거든요. 그는 일찍부터 일본인과 독일인의 압도적인 신체 차이가 영양 섭취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낯설게 느끼는 서양식 요리나 단백질 식단을 맛있게 먹기를 바랐습니다. 이걸 가능케 한 매개체가 MSG였던 거죠.
당시 스즈키 제약의 아지노모토 광고도 이 점을 내세웠습니다. “도쿄제국대학의 화학자가 과학적 방법으로 개발한 가장 이상적인 조미료!” 이 카피는 메이지 시대에 널리 퍼진 서양에 대한 동경과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일본 전통의 다시마 맛을 서양의 과학기술로써 재현했다니, 일본인의 국뽕 또한 자극할 수 있었지요.
이케다가 개발한 MSG는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즈키 제약은 아지노모토가 일본 시장을 평정하자 1915년 조선으로도 판매망을 넓혔습니다. 이건 그만한 자신감이 있어서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음식도 국물 요리 비중이 높고, 일본의 식문화와도 비슷한 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스즈키 제약은 이 점에 착안해 조선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습니다. 이 전략은 그대로 적중하여, 아지노모토는 조선에서도 대박이 터졌습니다. 특히 냉면집, 설렁탕집 등에서는 아지노모토 없이는 음식을 못 만들 정도가 되었지요. 조선에서의 매출은 매년 급증하였고, 스즈키 제약에서 조선 지사장의 파워는 본사 사장 바로 다음 수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시 식량 통제로 아지노모토 공급은 급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1943년 조선 지사는 철수해버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인들의 입맛도 이미 아지노모토에 길들여졌다는 것이었죠. 수요는 여전한데 공급이 끊기니 시장에 이런저런 편법들이 생겨났습니다. 밀수는 말할 것도 없고, 상표를 위조한 짝퉁들도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유사품이 1956년 출시된 미원(味元)입니다. 미원은 상표명부터 아지노모토를 모방했습니다. 아지노모토(味の素)에서 素(흴 소) 한 글자만 바꿨거든요. 그것도 일본어 훈독이 서로 같은 もと(모토)인 元(으뜸 원)으로요. 로고도 거의 빼박으로 비슷했습니다.
미원은 아지노모토를 이어서 오랫동안 우리나라 조미료 시장을 독점했습니다. 1960년대 말 이에 도전장을 낸 경쟁자가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삼성그룹의 전신 중 하나인 제일제당이 내놓은 미풍입니다. 미풍은 아지노모토사와 기술 제휴까지 해서 만들었지만, 미원에 별 타격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후 제일제당은 1980년대에 다시다라는 제품을 출시했고, 이때부터 미원의 독점 구도는 깨지기 시작합니다. 국민배우 김혜자가 외친 “그래, 이 맛이야”라는 광고 카피도 다시다의 대히트에 한몫했죠. 다시다에 의해 밀려난 미원은 이제 어른들이나 기억하는 추억의 조미료가 되었습니다.
MSG의 가치는 맛내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몰랐던 미각의 비밀을 밝혀내고, 과학 교과서 속 ‘맛’의 정의 자체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서구 과학계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맛이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의 네 가지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고기나 생선 국물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맛은 이 네 가지가 뇌에서 섞여서 만들어낸, 심리적인 착각에 불과하다고 여겨졌죠.
하지만 이케다는 이 독특한 풍미가 네 가지 맛의 그 어떤 조합으로도 재현될 수 없는 독립적인 맛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일본어로 맛있다는 뜻의 '우마이(うまい)'를 적용해 '우마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우마미는 현재 세계 식품과학계와 의학계에서 국제 학술 표준용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우마미를 주제로 한 논문들이 생리학과 식품영양학 등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우마미를 우리말로는 감칠맛이라고도 번역합니다. 하지만 세계 식품과학계에서는 ‘우마미’라는 표현을 더 정확한 용어로 사용합니다. 단순히 “맛이 좋다”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글루탐산이 만들어내는 제5의 맛을 가리키는 과학 용어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웹스터 영어사전에도 일본어 ‘umami’ 그대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우마미가 과학적으로 인정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혀의 세포에서 우마미를 감지하는 수용체가 실제로 발견된 것입니다.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의 찰스 주커 교수팀은 혀의 미뢰 세포 표면에서 아미노산을 인식하는 정교한 수용체를 발견했습니다. 이 수용체는 글루탐산 같은 특정 아미노산에 반응하도록 특화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다른 형태의 글루탐산 수용체들 역시 인간의 혀 곳곳에 분포하며, 우마미 정보를 뇌로 전달한다는 사실이 잇따라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MSG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몸에 나쁜 화학조미료’라는 억울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논란의 시작은 1968년 미국의 한 의사가 의학 학술지에 보낸 짧은 편지였습니다. 그는 중국 음식점을 다녀온 뒤 목이 뻣뻣해지고 몸이 나른해졌는데, 그 원인이 “중국 음식에 다량으로 쓰이는 MSG일지도 모른다”라는 추측을 적어 보냈습니다. 문제는 이 가설이 충분한 과학적 검증도 거치기 전에 언론을 통해 ‘중국음식점 증후군’이라는 자극적인 이름으로 퍼져나갔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2010년대 일부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들은 식당에서 쓰는 MSG를 위험한 화학물질처럼 묘사했습니다. “MSG를 쓰지 않는 착한 식당” 같은 표현도 유행했지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MSG가 암을 유발하거나 신경세포를 손상하는 위험한 물질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루어진 수많은 연구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식품안전청(EFSA),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주요 기관들은 MSG를 일반적인 섭취 범위에서 안전한 식품 첨가물로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MSG의 핵심 성분인 글루탐산은 원래 자연계에 널리 존재하는 아미노산입니다. 다시마와 멸치뿐 아니라 토마토, 치즈, 고기, 버섯 같은 식재료에도 풍부하게 들어 있지요.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국물 요리의 상당수는 이미 자연 상태의 글루탐산을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MSG는 흔히 오해하듯 석유를 합성해 만드는 인공 독성물질도 아닙니다. 대부분 사탕수수 당밀 등을 미생물로 발효해 생산합니다. 우리가 건강 식품이라고 여기는 된장, 치즈, 요구르트와 비슷한 발효 공정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천연은 안전하고 MSG는 화학이라 위험하다”라는 단순한 구분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애초에 세상의 모든 음식은 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도 화학식으로 쓰면 H₂O입니다.
물론 어떤 음식이든 과하게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MSG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금이나 설탕도 마찬가지인 문제이지, MSG만 특별히 위험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문제라고 본 것은 MSG 자체보다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공포와 자극 중심으로 소비한 슬롯 분위기였습니다.
MSG 논란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종종 ‘화학’이라는 단어에는 막연한 불안을 느끼고, ‘천연’이라는 말에는 무조건 안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이름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성분과 구조, 실험 결과로 판단합니다. MSG를 둘러싼 논쟁은 과학을 발견하는 일만큼이나,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오늘날 MSG는 아주 익숙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라면 스프에도 들어 있고, 냉동식품이나 과자에도 쓰이며, 집에서 끓이는 찌개에도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작은 하얀 결정 속에는 평범한 조미료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왜 어떤 음식은 유독 맛있을까?”라는 소박한 질문에서 출발한 과학적 탐구의 결과였습니다.
이케다 기쿠나에는 다시마 국물의 맛을 분석하다가 인간이 기존에 알지 못했던 제5의 맛, 우마미의 존재를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그 발견은 인간의 식문화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과거에는 비싼 재료를 오랜 시간 조리해야만 얻을 수 있었던 깊은 맛을, 이제는 누구나 쉽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이 미각의 세계를 민주화한 셈입니다.
동시에 MSG 유해성 논란은 과학이 슬롯 속에서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합니다. 충분한 검증 없이 퍼진 자극적 정보는 수십 년 축적된 연구 결과보다 더 빨리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곤 합니다. 과학기술이 중요해지는 시대일수록, 정보를 많이 아는 것보다 그것이 믿을 만한 근거를 갖췄는지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과학은 저 멀리 우주나 자연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국물 한 숟가락 속에도 과학은 존재합니다. MSG는 세상을 바꾸는 과학이란 꼭 거창한 시도가 아니라, “왜 이 음식은 맛있을까?” 같은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