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역사에 대한 내 두 번째 바카라의 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온라인카지노에 갈무리해 둔 원고들을 합쳐서 바카라 형식에 맞게 재구성했다. 고칠 부분은 고쳐 쓰고, 챕터마다 리드 글도 추가하고, 각주들도 덧붙였다. 이렇게 본문을 완성하니 제법 바카라 같다. 이제 프롤로그, 에필로그, 참고문헌 목록 등만 쓰면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최소한의 과학 공부』와 본문 분량이 거의 같다. 둘 다 공백 포함해서 21만 자(字)가 조금 넘는다.
가장 중요한 제목은 아직 못 정했다. 『최소한의 과학 공부』 때는 출판사 뜻대로 정했… 다고 하면 편집자 선생님이 화내시려나? 어차피 출판사가 1안으로 민 제목을 나도 동의하는 형식이었으니, 그게 그거다. 이번에는 내 의지대로 해볼까 싶다. 두 후보를 고려 중이다. 『과학 연구소의 탄생과 진화』, 『과학 연구소, 역사의 최전선』. 사실 둘 다 진부한 것 같아서 별로다. 아예 방향을 바꿔서 요즘 인기 있는 스타일로 해볼까? 『마흔에 읽는 연구소 이야기』, 『연구소의 인생 수업』. 흠… 인기작들에 묻어가려는 의도가 빤히 보여서 안 되겠다. 그럼 온라인카지노의 1타 작가 소위님 스타일로 해볼까? 『연구소가 없는, 삶은 없다』. 이건 좀 이상하네. 아무리 내가 연구소 직원이라지만, 연구소가 없는 삶은 없다는 뻥을 칠 수는 없다. 근데 다 베스트셀러 제목인데도 희한하게 연구소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없어 보인다. 역시 난 제목 짓는 데 소질이 없다. 이번에도 출판사에서 정하는 대로 해야겠다.
첫 번째 바카라이 뭘 몰라서 고생했다면, 두 번째 바카라은 뭘 알아서 고생한 것 같다. 이 바카라을 출판사로부터 제의받은 때는 한창 『최소한의 과학 공부』를 쓰던 2023년 7월이었다. “지금 쓰는 바카라을 마치자마자 바로 시작하겠다”라고 대표님과 약속했고, 완성 시점을 2025년 1월로 잡았다. 『최소한의 과학 공부』를 쓰는 데 1년 좀 넘게 걸렸으니, 그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러나 완벽한 오판이었다. 이 바카라의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방대했고, 또 어려웠다. 2024년 10월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원고를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당시 작업 진행률은 이미 60%에 육박하고 있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모든 여유 시간을 이 바카라을 쓰는 데에 쏟아부었고, 결국 예정 시기보다 6개월을 넘겨서야 겨우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 믿고 기다려준 대표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힘들게 썼지만, 판매량에는 초연하려고 한다. 안 팔릴 바카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깃발을 꽂는 바카라’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바카라과 비슷한 주제의, 그러니까 세계 유명 연구소들의 성장사를 다룬 교양서는 국내에 없다. 요컨대 바카라에서 다룬 많은 이야기가 처음 출판되는 것들이다. 이 점을 인정받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만약 이러한 독창성이 어필된다면, 비록 수는 적어도 이 바카라을 읽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따라서 대박은 못 치겠지만 폭망도 안 할 가능성이 크다.
이 바카라의 집필 난도는 『최소한의 과학 공부』보다 몇 배는 더 높았다. 가장 큰 문제는, 도대체 참고할 우리말 서적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점이었다. 즉 이 바카라의 강점으로 꼽힐 독창성이, 집필 과정에서는 가장 큰 난점이었던 셈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해외 전문서적의 번역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절감했다. 일례로 닐스 보어만 해도 그렇다. 현대과학의 문을 연 이 거인의 전기가 국내에 하나도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온라인카지노에 내실은 없고 겉멋만 든 패션 인문학을 디스하는 글을 썼었다. 그런 팬시한 다이어리 같은 바카라들 만들 시간에, 해외의 인문학 양서들이나 더 번역했으면 좋겠다.
특히 내가 주로 글을 쓰는 과학사, 과학철학처럼 마이너한 분야에서 번역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나처럼 영어 못하는 사람은 바카라 쓰기가 너무 힘들다. 다행히 그 와중에도 귀중한 번역서들을 일부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바카라들로부터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을 받았다.
며칠 전 딸과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오랜만에 에세이를 한 권 빌렸다. 바카라 쓰느라 과학과 영어에 짓눌린 머리를 식힐 생각에서였다. 故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고집인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라는 바카라이다.
여기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Merry Christmas Mr. Lawrence>다. 다만 사카모토 본인은 이 곡이 싫었다고 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 곡을 들려달라고 해서, 자기도 질렸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10년이 넘게 콘서트에서 연주하지 않고 봉인해 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캐럴 킹과 제임스 테일러의 공연에 갔다가, 마지막까지 <You’ve Got a Friend>를 안 불러서 애가 탔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에 마침내 그 곡이 연주되자, 사카모토는 안도감과 함께 반성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콘서트에 <Merry Christmas Mr. Lawrence> 한 곡만 들으러 오는 관객의 존재도 부정할 수 없음을.
이 대목에서 나는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뮤지션, 아니 작가가 부러웠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그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있다는 의미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말이다. 나도 작가로서 그런 대표작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사카모토 류이치 하면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이듯, 배대웅 하면 떠오르는 바카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번에 내는 두 번째 바카라, 내가 10여 년을 해온 과학기술정바카라이 주제인 이 바카라이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바카라 쓰느라 잠을 거의 못 자니 아내는 늘 걱정이다. 나이도 벌써 40대 중반인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유난히 힘들었던 이 바카라이 끝나간다니까, 아내가 반색하며 묻는다. “그럼 이제 잘 시간 좀 생기는 거야?” “아니, 이제 미뤄둔 글쓰기 코칭 바카라이랑 청소년 교양서 써야지. 내년까지는 계속 이래야 할 것 같아.” “헐… 오빠 진짜 그러다 훅 가겠다.” 바카라을 쓸 시간이 회사 일 끝나고, 딸아이 잠들고 난 이후밖에 없는데, 그럼 별수 있나. 이미 쓰기로 계약한 바카라들은 어쨌든 지금의 페이스로 밀고 나갈 생각이다. 그렇게 해야 다 예정대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안정적인 직업이 있으면서, 좋아하는 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딘가. 나는 이 사실에 감사한다. 그래서 세상에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나는 회사원 작가라는 지금 삶에 만족한다. 그저 이렇게 쓰고 싶은 바카라을 계속 낼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내가 해야 할 일
벌어야 할 돈 말고도 뭐가 있었는데
내가 가야 할 길
나에게도 꿈같은 게 뭐가 있었는데
있었는데
꿈이 있었는데
- 에픽하이(2017), <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