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시대를 담는 '빈 틀'에 불과한가?

21세기 AI 시대가 던지는 인간의 본성

by임풍

21세기 AI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담한 질문이 있다. 인간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거창하고 숭고했다. 전통적인 철학과 종교는 인간에게 신성한 영혼이나 고결한 이성, 혹은 선험적 도덕관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혀주며 인간의 존엄성을 높여왔다. 그러나 21세기 인공지능과 뇌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우리에게 오랜 질문을 다시 던지게 만든다. "우리가 믿어온 인간성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19세기 철학자 아서 쇼펜하우어는 그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우주와 인간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을 이성이 아닌 맹목적인 생존의 의지로 보았다. 인간이 자랑하는 이성이나 윤리는 우주의 절대적 주인이 아니라, 생존과 적응이라는 본능을 돕는 유용한 도구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쇼펜하우어가 인간관계의 고통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던 것은 인간을 폄하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이 완전무결한 도덕적 주체가 아니라 조건과 환경에 크게 영향받는 존재라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성찰이었다.

오늘날 과학이 밝혀내는 인간의 실체도 그의 냉정한 관점과 연결된다. 슬롯를 유지하는 실질적인 동력은 때로 거창한 도덕적 구호보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계약과 협력의 시스템일 때가 많다. 인간의 감정은 수만 년 동안 유전자 속에 각인된 본성이고, 이성은 그 감정이 슬롯적 틀 안에서 원만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제어 장치 역할을 한다. 최근의 뇌과학은 인간의 고귀한 사랑이나 헌신조차 도파민, 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종교나 철학이 직관으로 제시했던 독립적 이성의 영역이 실제로는 생물학적 메커니즘과 깊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인간 존재의 가변성과 환경 종속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최근 20년간의 스마트폰 혁명과 중독이다. 수만 년간 진화해 온 인간이 불과 20년도 되지 않아 손바닥만 한 화면에 온 감정을 매료당하는 모습은 인간이 외부 자극과 환경에 얼마나 쉽게 적응하고 영향을 받는 존재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점에서 성경에 나오는 "흙으로 사람을 짓고 생기를 불어넣었다"라는 비유는 현대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는 그 자체로 완성된 고정체가 아니라, 시대마다 새로 주입되는 자극과 문화, 기술이라는 운영체제(OS)를 받아들여 작동하는 가변적인 틀(Shell)일 수도 있다.

이 관점에서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마다 인간이라는 틀을 움직여온 주요 OS가 존재했다. 고대와 중세에는 고통스러운 생존 현실을 이겨내게 하는 종교적 신념과 내세에 대한 희망이 인간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이념과 국가주의, 시민의식이라는 가치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규정했다. 그리고 지금 현대에 이르러서는 미디어, 대중문화, 그리고 스마트폰과 디지털 자극이 인간의 일상을 깊숙이 점령하고 있다. 만약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신경 자극 기술이 더욱 발전하는 미래가 곧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까 우려된다. 우리가 고유한 인간성이라 믿었던 많은 습성과 유대감은 또 한 번 거대한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을 인간의 가치를 폄하하는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다만 21세기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관점은 "인간은 환경과 자극에 선천적으로 취약한 존재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그렇기에 더욱 유익한 환경과 가치를 선택해야 한다"라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우리의 한계를 냉정하게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기술과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보다 주체적인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임풍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인간 의식 탐구, 21세기 대응법, 몸과 맘 균형, 유튜브 채널: 아래 웹싸이트(URL) 클릭 연결, 저서: 21세기 인생 해석, 생각하면서 걸어가기,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다

11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8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