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다

by무하

동창회를 다녀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많다.

분명 좋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오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마음속은 텅 빈 듯 공허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차창 밖을 보며 문득 자문하게 된다.

'우리는 정말 반가워서 만난 걸까. 아님 외로워서 확인받기 위해 만난 걸까?'

언제부터인가 동창회는 순수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각자의 성적표를 내보이는 비교의 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안부로 시작하지만, 대화는 금세 곁가지를 친다. 누구는 자식이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누구는 최근에 갈아탄 아파트 평수와 오른 집값을 은근히 흘린다. 상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여주기보다, 자기 차례가 오면 어떤 카드를 꺼내 보일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분위기가 감돈다.


자식이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는 분명 자기 자식이 자랑스럽고 대견할 것이다. 그동안 겪었던 노력의 결실이니 얼마나 그 이야기를 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자식이 대기업에 취직은커녕 매번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를 백여 곳에 보내도 번번이 낙방만 하는 아들을 둔 친구가 있다면, 또 아파서 일자리는 커녕 병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하는 딸을 둔 친구가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듣는 마음은 얼마나 불편할까. 분명 자랑스러워서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의 마음도 살펴볼 줄 아는 배려가 더 먼저 아닐까.


모임의 풍경은 이제 사는 곳에 따라 '급'이 나뉜다. 어느 동네에 사느냐는 질문은 단순한 거주지 확인이 아니라 삶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강남의 요지에 사는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다. 화제가 명품 가방이나 시계로 흘러가면 대화는 더 좁아진다.


가령, 한 친구가 ‘이 가방 구하느라 몇 달을 대기했는지 몰라’라며 운을 떼면, 명품에 문외한이거나 관심 없는 친구들은 입을 다문 채 커피잔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소외된 이들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씁쓸한 박탈감을 느낀다.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진다. 학교 다닐 때 공부에는 도통 취미가 없던 친구가 사업이나 부동산으로 큰 부를 쌓아 나타나는 경우다. 그 친구는 모임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치장하고 나타나 오늘 식사는 내가 쏜다, 며 지갑을 먼저 연다. 처음 한두 번은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매번 반복되는 호의는 점차 권력처럼 느껴져 불편해진다. 고마움보다는 '자신이 이만큼 성공했다'는 사실을 남들 앞에서 과시하려는 태도에 심사가 뒤틀리기 때문이다.

만날 때마다 자식 자랑, 돈 번 이야기를 구구절절 반복하는 친구를 보면 이제는 화가 나기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정말로 삶이 풍요롭고 내면이 꽉 찬 사람이라면 굳이 타인의 입을 빌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쓸 필요가 있을까. 진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일수록 태도는 겸손해지고 말은 단순해지기 마련이다.

동창회에서 가장 '빈티' 나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끊임없이 증명하려 드는 사람이 아닐까. 아무리 값비싼 옷을 입었어도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 있다면 그 영혼은 허기져 보일 뿐이다. 반대로 가진 게 많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고귀한 여유를 풍긴다.


진정한 여유는 지갑의 두께나 명품 가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남에게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자랑하지 않아도 멋이 풍기는 당당한 여유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나는 이제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다.

남들에게 내 삶을 증명하느라 소모했던 시간들을 이제는 나를 위해 쓰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