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저작권에 대한 소고
명태 장식물은 모양만 다르면 저작권 침해가 아닐까. 반대로 명태 장식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표절이 될까. 나무를 깎아도, 천을 꿰매도, 플라스틱으로 찍어내도 우리는 그것을 명태 장식물이라고 부른다. 누군가 처음 만들었을 때 무척 참신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재료와 표정, 제작 방식이 달라도 여전히 같은 종류의 물건이다.
그러나 같은 종류의 물건과 같은 창작물은 다르다. 아이언맨을 만화로 그리고, 영화로 만들고, 봉제인형으로 제작하면 질문은 반대로 뒤집힌다. 이번에는 생김새와 재료가 다른데도 왜 모두 같은 아이언맨인지 설명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어느 명태가 어느 명태를 베꼈느냐는 표절의 경계선이 아니다. 같은 소재에서 나온 서로 다른 창작과, 하나의 창작이 여러 형태로 표현된 결과를 무엇으로 구별할 것인가. AI 앞에서 창작이라는 말조차 불경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 시대라면 오히려 이 구분부터 분명해야 한다.
AI 창제작 환경에서 가장 먼저 드러날 문제는 창작의 자유보다 공유지의 초토화일 수 있다. 어느 날 작품 플랫폼에 1분마다 500개의 작품이 올라온다면 New 게시판부터 망가진다.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보다 작품이 추가되는 속도가 더 빠르면 ‘새 작품을 둘러본다’는 행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500명의 작가가 하나씩 올린 500개와, 한두 명이 자동화해 쏟아낸 500개는 플랫폼에서 같은 사건이 아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천 권의 바카라을 등록할 수 있는 시대에도 그 천 권을 오직 천 개의 개별 콘텐츠로만 다뤄야 할까. 대량 생성 환경에서는 콘텐츠뿐 아니라 발행 주체도 관리 단위가 되어야 한다.
이건 저작권 문제와 같진 않다. 다만 공통점은 있다. 결과물 하나만 떼어서는 바카라임도 권리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IP도 특정 이미지나 마스코트 하나로만 볼 수 없다. 누가 만들고, 발행하고, 사용을 허락하는지까지 따라붙는다.
무엇을 하나의 저작물로 볼지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재료의 수급과 가공이 제작을 좌우하던 환경에서는 완성된 실물, 이른바 하드카피가 작품을 파악하는 익숙한 기준이었다. 전통적인 미술도 작가, 제목, 제작 연도, 재료 및 기법, 크기로 작품을 특정한다. 그러나 이 방식 역시 하나의 고정된 객체가 있다는 물질 세계의 전제를 깔고 있다.
작품을 사진으로 옮기면 무엇이 남는지 선명해진다. 사진에는 원작의 재료도, 실제 크기도, 물리적 유일성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 표현은 남는다. 그 사진을 다시 찍고 또 찍어도 원작과의 관계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물질적 원본과 그 안의 표현은 애초에 같은 것이 아니다.
디지털에서는 이 차이가 더 뚜렷하다. 콘텐츠는 하나의 물질 덩어리라기보다 복제되고 이동하고 변형되는 정보의 배열에 가깝다. AI는 같은 설정과 지시에서도 서로 다른 이미지와 영상, 음성을 계속 만들어낸다. 창작을 최종 출력물에만 한정하면 무엇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AI 시대에 출력물은 프롬프트의 그림자일 뿐이다.
‘멋진 캐릭터’라는 말 자체에 보호할 만한 구체성이 없다면, ‘멋진 캐릭터를 그려줘’라는 한마디로 나온 이미지에는 단지 이미지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저작의 지위를 줄 수 있을까.
그 모든 구성이 우연이라면? 같은 지시를 천 번 반복하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랐다면? 그 쇼핑의 행위와 안목에 저작의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선택에도 판단은 들어간다. 하지만 그 판단만으로 작품 전체의 창작성을 설명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반대로 이름과 외형, 성격, 관계, 행동 방식, 세계의 규칙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그 설계로 여러 결과물을 만들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프롬프트라는 형식이 아니다. 그 안에 얼마나 구체적인 창작적 구성이 들어 있는가다. 막연한 아이디어와, 요소들이 일정한 관계를 이루도록 설계된 구성은 같지 않다.
캐릭터도 그렇다. 아이언맨은 만화와 영화와 봉제인형에서 모습이 달라도 아이언맨이다. 외형뿐 아니라 이름, 설정, 능력, 관계, 이야기 같은 요소의 결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캐릭터 IP도 한 장의 디자인보다, 여러 표현에서 같은 캐릭터를 식별하게 하는 구성의 연속성을 봐야 한다.
여기서 메타데이터의 의미도 달라진다. 단순한 파일명이나 작성일이 아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설정에 속하는지, 무엇에서 파생됐고 무엇이 변형됐는지, 누가 공식적으로 발행할 권한을 갖는지까지 포함한다. 이런 관계 정보는 서로 다른 결과물을 하나의 IP로 묶기도 하고, 비슷하게 생긴 결과물을 서로 다른 창작으로 가르기도 한다.
제목이나 설정 문구 하나하나를 독점하자는 뜻은 아니다. 보호할 창작적 구성과 출처·권한을 확인하는 정보는 구분해야 한다. 다만 최종 이미지 한 장만 떼어놓고 작품의 모든 권리 관계를 판단하는 방식으로는 생성과 변형이 반복되는 환경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 캐릭터 IP 세계에는 캐릭터 디자인 가이드라는 관례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저작의 주체는 캐릭터 이미지가 아닌 캐릭터 IP 디자인 가이드라는 서적이 되어야하는 것 아닌가?
물질 세계의 저작권은 원본과 복제물, 소유와 사용, 하나의 고정된 결과물을 구별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메타 세계에서는 작품의 정체성이 물질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 창작적 설계, 그 설계가 이어지는 변형의 계보, 이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주체까지 함께 봐야 한다.
이것은 현재 저작권법이 이미 그렇게 작동한다는 설명이 아니다. 물질을 중심으로 형성된 저작의 단위를, 정보와 관계와 변형이 작품의 정체성을 만드는 환경에 맞게 다시 생각해보자는 제안이다.
결국 AI 시대의 문제는 그림을 누가 그렸느냐에만 있지 않다. 무엇을 하나의 저작으로 묶을 것인가. 그 질문부터 다시 해야 한다.
김동은WhtDrgon.26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