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멸망한 왕국 몫의 투표권이 내게 왔다

by김동은WhtDrgon

사라진 세력의 빈자리 The Missing Faction:

체제를 이루던 세력 하나가 사라져 그 자리가 균형과 질서의 문제로 남는다.

79_빠진 조각의 권한_모자이크_비잔틴 미술_빛나는 파편_유리·석재_원형 모자이크 빈칸에 놓인 낡은 열쇠.png79_빠진 조각의 권한_모자이크_비잔틴 미술_빛나는 파편_유리·석재_원형 모자이크 빈칸에 놓인 낡은 열쇠

지도에서 사라졌어도, 의결 정족수에서는 빠지지 않았다.

왕국은 백 년 전에 멸망했다. 국경선도 사라졌고 언어를 읽을 사람도 드물다. 그런데 전쟁을 막는 회의에는 그 왕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오래된 헌장이 너무 튼튼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어느 날 주인공에게 사절 둘이 찾아와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한다. 둘 다 그를 잊힌 왕국의 합법적인 대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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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입은 The Missing Faction을 정치적 권한으로 바꾼 창작 변주다. 트롭스 자체가 숨겨진 왕족이나 투표권을 필수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여러 세력으로 이루어진 체제에서 하나가 빠져 균형과 기능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 핵심이다. 세계관의 비어 있는 칸이 현재의 사건을 움직여야 한다.


한 사람이 살아남아도 한 슬롯가 돌아온 것은 아니다

<아바타: 아앙의 전설>의 세계에는 물·흙·불·공기의 네 민족이 있었지만 공기의 유목민들이 학살당했다. 살아남은 아앙은 한 원소의 기술만 보존하는 존재가 아니다. 세계가 잃은 생활 방식과 가르침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혼자 살아남은 인물의 고독을 다루는 Last of His Kind와, 세계 전체의 결여를 다루는 The Missing Faction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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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아앙 한 명이 존재하므로 빈칸이 채워졌다고 할 수는 없다. 공동체는 기술 목록이 아니다. 가르칠 사람과 배울 사람, 함께 생활할 공간, 관습을 조정할 이웃이 필요하다. 후속작 <코라의 전설>에서 공기 문화를 이어 가는 이들과 새로 능력을 얻은 사람들의 문제는 이 차이를 보여 준다. 능력의 회복과 문화의 재건은 같은 날 끝나지 않는다.


창작에서 마지막 생존자에게 모든 전통의 대표권을 자동으로 주는 것도 조심할 부분이다. 그가 기억하는 과거는 특정 나이와 위치에서 본 과거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았던 관습까지 복구해야 하는지, 새로운 구성원에게 옛 삶을 요구할 수 있는지가 훨씬 풍부한 갈등을 만든다.


죽어서 사라진 것과 그만둔 것은 다르다

만화 <샌드맨>의 파괴는 끝없는 일족 가운데 자기 역할을 떠난 존재다. 이 경우 빈자리는 적이 만든 피해만이 아니다. 당사자의 선택이다. 남은 이들은 그 선택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문제와 마주한다. 그가 자리를 비웠다고 우주에서 파괴라는 현상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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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이는 세계관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담당자가 있어야만 일어나는 현상인지, 현상은 계속되지만 담당자가 바카라임을 지지 않는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전자라면 복귀가 생존의 문제이고, 후자라면 권한과 바카라임의 정당성이 문제다. 떠난 인물을 찾아오는 모험은 구조 임무일 수도 있고, 퇴직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강제 복직일 수도 있다.


<헝거 게임>의 13구역은 또 다른 빈칸이다. 캐피톨이 제시하는 소멸의 이야기는 체제의 경고문으로 기능한다. 저항한 곳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 주는 부재다. 그러나 그 공식 설명과 실제 생존 상황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사라졌다고 알려진 세력이 등장하면 인구나 병력이 늘어나는 것 이상으로 기존 권력의 설명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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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복귀를 쓸 때 귀환자에게 당연히 선한 역할을 맡길 필요는 없다. 억압받았거나 지워졌다는 역사와, 지금 행사하려는 권력은 각각 검토해야 한다.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이전 질서를 회복할지 새로운 지배를 만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정치극이 된다.


빈칸은 자료 화면보다 현재의 거래에서 잘 보인다

게임 <엘더스크롤 III: 모로윈드>의 다고스 가문은 던머의 역사에서 제거되고 악명으로 남은 여섯 번째 가문이다. 플레이어는 현재의 공식 설명과 과거에 대한 상충하는 기록, 돌아온 세력의 활동을 접한다. 사라진 이름을 알아내는 일과 그 이름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일이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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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단순히 잘 알려지지 않은 가문과 실제로 체제에서 축출된 가문은 구분해야 한다. 플레이어가 화면에서 못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세계 안에서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The Missing Faction을 쓰려면 부재가 인물들의 행동과 제도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보여 줘야 한다. 사용하지 않는 문장, 금지된 의식, 특정 해석을 강요하는 기록이 그 흔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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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디아블로 III>의 앙기리스 의회는 용기·정의·희망·지혜·운명이라는 역할로 짜여 있다. 말티엘이 사라지고 티리엘마저 천상을 떠난 본편 초반에는 지혜와 정의의 담당자가 함께 자리를 비운다. 각 역할의 이름을 판단 방식으로 읽어보면, 누가 회의에서 빠졌는지 자체가 결정의 불균형을 암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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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상태가 시리즈 내내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본편 이후를 잇는 소설 <빛의 폭풍>에서는 티리엘이 지혜의 자리에 서지만, 다른 대천사들과 검은 영혼석의 처리 방식을 두고 충돌한다. 블리자드가 공개한 소설 발췌는 자리가 채워진 뒤에도 권위와 신뢰의 문제가 남는 모습을 보여준다. 빈 의자를 채우는 것과 그 의자가 맡았던 일을 다시 해내는 것은 다른 사건이다.


이 사례는 세력의 개성을 병종이나 색깔로만 나누지 말라는 힌트다. 각각이 회의에서 무슨 질문을 하는지 정하면 사라졌을 때의 문제가 보인다. 한 세력이 늘 비용을 물었고, 다른 세력이 민간인의 동의를 확인했다면 그 부재는 다음 전쟁 계획의 빈칸으로 드러난다.


유산보다 먼저 청구서가 도착한다

Evil Power Vacuum은 강한 악의 권력이 무너진 자리를 둘러싼 쟁탈에 초점을 맞춘다. The Missing Faction의 빈자리가 언제나 악당의 자리일 필요는 없다. 사라진 세력이 못마땅했더라도 그들이 하던 일을 누군가 맡아야 할 수 있다. 독점이 끝난 해운로에서 운송 자체가 끊기는 식이다. 해방의 가치와 이후의 실무를 함께 보여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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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투표권도 그래서 돈으로 사고파는 표 한 장에 머물면 아깝다. 대표권을 행사하려면 사라진 왕국의 부채까지 인정해야 한다면 어떨까. 그 땅에 지금 사는 사람들은 왕국 복원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망명자 공동체는 주인공의 혈통보다 자신들이 이어 온 생활을 더 중요한 근거로 여길 수 있다. 모두 이 글이 제안하는 변주다.


TRPG라면 파티에게 왕관부터 씌우기보다 서로 충돌하는 위임장을 주는 편이 흥미롭다. 누가 대표로 인정하는지와 누구를 대표할 것인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절을 돕고 문서를 조사하며 지역의 목소리를 들을수록 권한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정답인 왕족 한 명을 찾으면 끝나는 퍼즐에서 벗어난다.


회의장에는 의자가 하나 비어 있다. 주인공이 앉자 오래된 주문이 작동하고 투표가 가능해진다. 모두 안도하는데 그는 첫 안건을 미룬다. 멸망했다고 적힌 땅에서 아직 살아가는 사람들의 명단부터 가져오라고 한다. 잃어버린 세력이 돌아온다는 것은, 오래 무시해도 되었던 질문이 다시 발언권을 얻는 일이기도 하다.


79_오래 비워 둔 자리의 아침_납화_고대 회화_따뜻한 밀랍 질감_밀랍·목판_원탁의 빈 의자와 햇빛 속 왕관.png79_오래 비워 둔 자리의 아침_납화_고대 회화_따뜻한 밀랍 질감_밀랍·목판_원탁의 빈 의자와 햇빛 속 왕관

함께 읽는 15가지 클리셰와 트롭스

비워 둔 의자 — Empty Chair Memorial: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기리며 그가 평소 앉던 의자를 비워 둔다.<업>(애니메이션): 칼의 거실에는 엘리가 앉던 의자가 남아 있어, 두 사람이 함께하던 생활과 지금의 부재가 겹쳐 보인다.

바뀐 지배자, 비슷한 방식 — Meet the New Boss: 새로 등장한 권력자가 전임자와 닮은 통치나 행동을 반복한다.<퓨처라마>(애니메이션): 파라오가 된 벤더는 옛 지배자의 잔혹함이 끝났다며 자기 방식의 잔혹함을 예고한다.

압도적인 선거 승리 — Landslide Election: 접전이 성립하지 않을 만큼 큰 표 차이로 선거를 이긴다.<24>(드라마): 데이비드 팔머는 대통령 선거에서 큰 득표 차이로 승리한다.

낮아진 지위가 주는 자유 — Gracefully Demoted: 직급이나 지위가 내려가 오히려 원하는 삶이나 일을 하게 된다.<스타 트렉 IV: 귀환의 항로>(영화): 커크는 제독에서 대령으로 강등되지만 다시 우주선 지휘를 맡게 된다.

정점의 외로움 — Lonely at the Top: 높은 지위나 성공을 얻는 대신 동등하고 편한 관계를 잃는다.<크로스 로드>(뮤지컬): 엘리자는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파가니니에게 다른 감정을 느낀다.

조직이 배정하는 배우자 — Bureaucratically Arranged Marriage: 당사자를 잘 모르는 제도나 조직이 자기 목적에 맞춰 결혼 상대를 정한다.<디 아메리칸즈>(드라마): 필립과 엘리자베스는 잠입 임무를 위해 부부로 배정된 뒤 오랜 공동생활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마법으로 강제되는 계약 — Magically Binding Contract: 약속의 이행이 법정이나 신뢰 대신 초자연적인 힘으로 보장된다.<인어공주>(애니메이션): 우르술라는 에리얼과 맺은 계약을 내세우며, 트라이튼의 권력만으로 이를 깨뜨릴 수 없다고 맞선다.

식 없이 함께 사는 부부 — Common Law Marriage: 공식적인 혼인과 별개로 두 사람이 실질적인 부부처럼 생활한다.<듄>(소설): 레토 공작과 제시카는 삶과 자녀를 함께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정식 부부의 지위를 갖지 않는다.

자기 원칙을 지키는 악당 — Noble Demon: 악당의 편에 서 있어도 비겁하거나 잔혹한 수단을 모두 허용하지는 않는다.<메가마인드>(애니메이션): 메가마인드는 숙적을 정말 죽였다고 믿게 되자 처음에는 충격을 받고, 승리 뒤에도 자신이 원하던 악당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세대가 다른 라이벌 — Intergenerational Rivalry: 나이 차가 큰 두 인물이 경험과 재능 등을 겨루며 경쟁 관계가 된다.<30 록>(드라마): 중년 임원 잭은 최고경영자 자리를 놓고 현 경영자의 열네 살 손녀와 진지하게 경쟁한다.

정보를 거래하는 사람 — Knowledge Broker: 정보망을 통해 다른 인물들의 사정과 비밀을 모으고 거래한다.<매스 이펙트 2>(게임): 리아라는 일리움에서 정보상으로 일하며 섀도 브로커의 정체와 행방을 추적할 자금을 마련한다.

되돌아오는 협박 — Blackmail Backfire: 비밀을 이용한 협박이 실패하고 협박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배트맨: 이어 원>(만화): 고든이 불륜을 아내에게 먼저 고백하자 경찰청장이 사진으로 가정을 압박하려던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 — An Offer You Can’t Refuse: 제안의 형식을 갖추지만 거절하면 폭력이나 심각한 손해가 기다린다.<대부>(영화): 마이클은 아버지가 총을 동원해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든 일을 케이에게 설명한다.

변호사 군단 — Army of Lawyers: 많은 법률 대리인이 상대를 압박하는 힘이 된다.<사라진 배심원>(소설): 담배 회사를 둘러싼 재판에서 양쪽은 변호사 조직과 자원을 동원해 다툰다.

흩어진 조각을 모아라 — Dismantled MacGuffin: 중요한 물건이 나뉘어 있어 여러 조각을 찾아야 완성된다.<캐슬바니아 II: 사이먼의 퀘스트>(게임): 사이먼은 드라큘라의 신체 일부를 모아 그를 부활시킨 뒤 다시 쓰러뜨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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