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역설 0562 부디 소원을 말할 때에는 금전을 올리고 싶지 않다. 결코 필요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욕망의 날 것을 직설할 때에는 균형을 놓친 상태에 놓인 것이라 치부하는 탓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진정 필요한 건 말하지 않아야 한다. 말하는 순간 욕망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편입된다. 마치 안전해 보이나 태풍의 눈처럼 폭풍 전야를 맞게 될 것이다. 세상은 온통 욕망의 활화산이자 발화성 물질이다. 욕망을 어서 말하라고 끝없이 부추긴다. 그래야 서둘러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욕망은 발화하는 순간 더 이상 욕망이 아니다. 욕망의 본질은 간절한 바람에 있다. 간절함은 결코 말 로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근 언어로 욕망이라 함부로 말하는 어리석음을 피하고 싶다. 욕망을 말하는 순간 욕망은 더 거세지지만 정작 욕망에 가닿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맛보게 된다. 그래서 욕망을 잘 다루는 자는 문학을 하고 철학을 하고 예술을 하는 것이다. https://brunch.co.kr/@voice4u/365 https://brunch.co.kr/@voice4u/333 글쓰기는 욕망을 지혜롭게 욕망하는 방법이다. 은유와 비유로 욕망을 완충하고 포섭한다. 그나마 문장들이 욕망을 담아내는 그릇으로는 기능하지 않을까. 오늘도 무한한 내 안의 욕망의 용광로에서 문장으로 한 바가지 퍼 올려본다. 욕망의 순도라도 가늠해 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