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 마애불을 보는 나의 방법

마애불을 완성하는 마지막은 햇살의 각도

by이른아침

마애불이 웃고 있었다. 슬그머니 올라간 입꼬리를 따라 볼이 치올랐다. 다문 듯 벌어진 입술 사이로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인간미 넘치는 입매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바카라 속 사진으로만 보던, 소문으로만 듣던, 백제의 미소라고 하던 그 미소를 마주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7월 말,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앞에서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이 감동적인 순간을 마주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10여 년 전 전주에서 살던 시절, 완주 치마산 하산길에서 우연히 한 답사객을 만났다. 그는 전국의 마애불 200여 곳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마애불은 향하고 있는 방향에 따라 아름답게 보이는 최적의 시간이 있고, 그것은 햇살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날 이후 마애불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대화를 나누고 몇 달이 지난 뒤, 치마산에 오르면서 마애불을 찾아보았다. 등산로 옆에 있는 커다란 암벽에 새겨져 있었다. 애초에 얕게 새겨진 탓인지, 세월에 깎인 탓인지 희미하게 얼굴 윤곽만 남아 있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지나치면서도 마애불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국의 마애불을 찾아다니는 분의 말에서 느껴지던 기대와 달리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화순 운주사, 고창 선운사, 남원 개령암터 마애불들 앞에서도 느낌은 비슷했다.


이들 마애불은 밋밋하게 다가왔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오랜 기간 마모된 마애불에서 입체감이나 생동감은 보이지 않았다. 온화함이나 위엄도 느끼기 어려웠다. 박물관이나 사찰 법당 안에서 화려하고 완벽하게 보존된 불상에 익숙해진 내 안목으로는 오래된 문화재라는 의미밖에 볼 수 없었다.


<완주 항가리 마애불> <홍성 신경리 마애불>


그러다 2018년 가을, 홍성 용봉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한 마애불을 만났다. 바위 앞면을 오목하게 파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새겨진 불상이었다. 곳곳이 마모되고 깨져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깊게 돋을새김된 덕분에 얼굴 형태는 비교적 또렷했다. 입가엔 엷은 미소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처친 눈매엔 인자함이 아직도 담겨 있었다. 그런 가운데 미간이 두툼하게 표현되어 눈의 윤곽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마주할 때 먼저 눈을 맞추듯, 그날은 나도 모르게 마애불의 눈부터 먼저 쳐다보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의 불상 감상법은 눈이었다. 눈을 어느 정도 뜨고 있는지, 눈동자는 표현되었는지를 보았고, 부처의 눈매가 온화한지, 위엄이 있는지를 살폈다.


마애불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일이 있었다. 경주 여행을 준비하다 인터넷에서 신선암 마애불 사진을 보았다. 높은 암벽 위에서 아침 햇살을 받은 불상에서 살아있는 듯한 입체감이 넘쳐났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자욱한 안개나 구름 사이로 스며든 붉은 햇살에 물든 마애불이 아득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는 신비감마저 감돌았다.


얼른 가서 보고 싶은 갈망이 생겼다. 하지만 경주에 도착한 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이 흐렸다. 남산에 오르다가 급기야 쏟아지는 비에 돌아서야 했다. 그 후로 몇 년을 기다리다 올봄 4월에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오르는 길에 있는 칠불암도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쳐 신선암 절벽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렸던 마애불 앞에 섰을 때 아쉬움이 밀려왔다. 사진에서 보았던 살아 있듯 한 생동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멀리 경주 벌판과 아스라한 산그림자를 향해 무심히 내려다보는 부처님 한 분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터덜터덜 내려오는 길에 재선충에 감염되어 빨갛게 죽어가는 소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소나무 사이로 하늘을 보는 순간 십여 년 전에 마애불을 찾아다니던 분의 말이 떠올랐다. 마애불은 빛의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는 말이었다. 내가 신선암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쯤으로 햇살이 비스듬하지 않고 머리 위에서 쏟아질 때였다.


핸드폰에 찍힌 사진을 꺼내 보았다. 얼굴을 포함한 마애불의 반 이상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늘은 얼굴의 음영을 지워버렸고 돌의 굴곡만 남겼을 뿐이었다. 사진 속에서 내 마음을 들뜨게 했던 생동감은 바위를 비스듬히 비껴가며 음영을 만들어낸 아침 시간대의 햇살 덕분이었다.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


햇볕의 비밀을 어렴풋이 알게 된 후, 서산 마애불을 찾아가기로 했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백제의 미소를 보고 싶었다. 떠나기 전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에서 서산 마애불 편을 찾아 읽었다. 1959년 마애불의 존재를 조사단에게 알려주었다는 한 나무꾼의 마애불에 대한 재미난 입담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와 함께 석불은 목불이나 금동불과 달리 조각할 때 돌이 떨어져 나가면 되돌릴 수 없어 가장 까다롭다는 설명도 있었다.


“눈은 우선 작게 만들고 점점 키워가면서 조화를 맞춘다. 석불 조각에서 한번 뜬 눈은 다시는 작게 할 수 없는 일이니 보통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그동안 불상을 볼 때 눈을 먼저 맞추었던 까닭도 이렇게 장인이 공을 들여 새긴 눈매 덕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1965년부터 마애불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이 세워지면서 관리하는 분의 이야기도 있었다. 보호각에 가려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마애불의 미소가 사라지자, 그는 장대에 백열등을 달아 태양이 움직이듯 불빛 각도를 바꿔가며 관람객들에게 미소의 변화를 보여주었다고 했다.


서산 마애불의 미소는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5월에 찾아갔다. 오전이었다. 하필 안개에 햇살이 가려 온전한 미소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엷은 음영만으로도 입가의 미소는 지금까지 본 어느 불상보다 아름다웠다. 또 기회가 찾아왔다. 7월 30일 피서 나들이로 덕산온천에 왔다. 온천에서 차로 20분 거리였다. 햇빛은 쨍했고 시간은 10시였다. 돌계단을 하나씩 오르는데 손을 잡은 어린 손녀의 걸음은 더뎠다. 계단을 오르고 법당을 거쳐 굽은 길을 지나 이어진 계단을 또 올랐다. 마애불이 보였다.


마애불이 웃고 있었다.


이 순간을 마주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월에 깎여 밋밋한 형상을 마주할 때의 헛헛함, 사람을 대하듯 불상의 눈부터 맞추려는 조급함, 그늘로 인해 입체감을 잃었던 신선암 마애불 앞에서의 아쉬움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뒤였다. 마애불을 완성하는 마지막 화룡점정은 석공의 손길 위에 얹어지는 햇살의 각도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7월말 오전 10시, 천 년 전 석공은 불상을 만들었고 햇빛은 지금도 매 순간 다시 조각한다.>



마애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최복일 작가가 쓴 <한국의 마애불>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바카라은 전국에 산재한 2백 여개에 이르는 마애불에서 간추린 23곳에 담긴 이야기와 감상을 전합니다. 특히 마애불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최적의 시간대를 알려주고, 찾아가는 길을 그림으로 안내해 줍니다. 바카라 뒤편에는 전국의 마애불 소재지와 답사 난이도, 조성연대 등 개요를 수록하여 답사 가이드로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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