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글쭈글한 손 끝에 닿던 차가운 위로
국민학교 시절, 교실 뒷구석에 쌓여있던 우유 박스 속 흰 우유는 내게 늘 숙제 같은 존재였다. 특유의 비릿함이 싫어 급식 시간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 눈을 피해 저 우유를 가방 속에 숨겨갈까 고민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우유가 선물처럼 다가오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커다란 손을 잡고 따라나섰던 일요일 아침의 목욕탕이다.
그 시절 커피우유는 아마 백 원도 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달콤한 사치였을 것이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아버지가 내미신 동전 몇 개에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삼각 포장이 쥐어지던 그 찰나의 설렘만이 선명할 뿐이다.
커피우유가 가장 맛있는 순간은 정해져 있다. 뜨거운 탕 안에서 온몸의 진을 빼고, 묵은 때를 벗겨내어 손가락과 발가락 끝이 쪼글쪼글하게 불어 터졌을 때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인 양치질까지 마쳐야 한다. 치약의 화한 기운이 입안의 모든 잡미를 지워버려, 혀 위의 미뢰들이 마치 갓 태어난 상태처럼 깨끗해졌을 때 비로소 완벽한 타이밍이 찾아온다.
탈의실의 선풍기 바람을 쐬며 마주하는 그 첫 모금은 경이로웠다. 냉장고 구석에서 막 꺼낸 소름 끼치는 차가움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면, 흰 우유의 텁텁함을 지워버린 부드러운 단맛이 온몸으로 퍼졌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탐닉할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의 향이자, 뜨거운 열기를 견뎌낸 아이에게 주어지는 훈장 같은 위로였다.
오십 줄을 넘긴 오늘, 나는 샤워를 마치고 다시 그 커피우유를 집어 들었다. 포장지도, 브랜드도, 심지어 입안을 감도는 그 달콤한 배합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때의 그 전율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온몸이 쭈글해질 정도로 뜨거운 탕 속에서 치열하게 열기를 견디지도 않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무방비한 상태로 세상의 단맛을 기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라진 것은 커피우유의 맛이 아니라, 입맛이 초기화되었던 그 순수한 시절일 것이다. 세상의 온갖 쓴맛과 짠맛에 길들여진 지금의 혀로는, 목욕탕 앞 평상에 앉아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었던 여덟 살 아이의 그 직관적인 행복을 다시 재현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편의점 냉장고에서 커피우유를 찾는다. 비록 그때의 그 소름 돋는 맛은 아닐지라도,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만큼은 내 손을 잡고 목욕탕 계단을 내려오던 아버지의 큼지막한 손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