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코에 쌀이 없다

by원정미


나는 25년 전 산호제로 유학을 간 후 쭉 거기서만 살았다. 산호제는 아시안들이 정말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백인 인구보다 아시안 비율이 훌쩍 넘어선 동네다. 인도, 중국, 베트남계가 강세이긴 했지만 한국 사람도 꽤 많았다.

아무리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아시안이라도 살기에 불편함이 없는 동네였다. 학교에 가나, 병원에 가나, 식당에 가나 유색인종들이 많았다. 각자 자기 나라 특유의 억양으로 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서로가 영어를 하고 있음에도 못 알아듣는 웃긴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당연히 한국 마트나 한국 식당도 꽤 있었다. 쌀은 코스코나 큰 미국 마트에서도 항상 구비되어 있었다. 인도, 중국, 베트남 모두 쌀을 먹는 나라들이니까.

그러다 8월부터 캠핑카 여행을 시작했고 콜로라도 스프링에 도착했을 때였다. 쌀이 똑 떨어진 것을 알았다. 남편과 나는 겸사겸사 구경도 할 겸 코스코에 시장을 보러 갔다. 한국 대기업용 김치통도 보이고 메이드인 코리아 화장품도 보였는데 쌀이 없었다.

"왜? 코스코에 쌀이 없어?"

"사는 사람이 없으니까 안 팔겠지."

남편이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다 백인이었다. 나중에 챗GPT에게 물어보니 콜로라도는 65%가 백인이고 동양인은 3% 정도라고 했다.

그 후로 관광지에 가든, 마트에 가든, 카페에 들르든 남편과 나만 동양인인 걸 발견하곤 속삭인다.

"여기 우리 둘만 아시안이야."

"그 많던 인도인과 중국인은 다 캘리포니아에만 사는 거야?"

둘이 웃었다. 아직 아무도 우리에게 '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등의 차별적인 언행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너무 튀어 보인다는 느낌. 다들 우리만 쳐다보는 것 같고, 뭔가 실수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캘리포니아에선 당당하게 썼던 영어도 주눅이 들어서 영어 쓸 일이 생기면 자꾸만 남편에게 떠넘기게 됐다.

앞으로 여행을 마치고 어디로 정착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백인이 주류인 슬롯라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 직업 특성상 말을 많이 하고 잘 들어야 하는 일인데, 혹시 "네가 하는 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고 하면 어쩌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미래의 정착지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적어도 코스코에 쌀은 파는 곳에서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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