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와 실패를 함께 다루는 방식 그리고 진짜 강한팀의 의미
최근 스타트업에 다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대표님들이나 의사결정권자 분들이 회의나 은연중에 "이런 건 이제 하루면 되는 거 아닌가요? 클로드 쓰면 금방 다 할 수 있는건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비논리적인 의사결정과 그 결정으로 인한 실패의 과정은, 실무자들의 술자리에서 푸념 섞인 원망과 실망으로 빚어진 아주 좋은 술안주로 자리매김 하고, 이직의 의지를 불태우게 되는 상황도 보게 됩니다.
지금 스타트업 씬은 예전보다 분명히 빠릅니다. 개발, 분석, 실험 모두 AI 덕분에 속도가 붙었고, 아이디어를 실제로 만들어보는 비용도 줄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도가 빨라질수록 대표와 팀원 사이의 호흡이 더 멀어지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됩니다.
빠른 시도가 곧 빠른 성공을 의미하진 않으니까요. 오히려 시도가 많아질수록 실패도 함께 쌓이고, 그 실패가 반복될 때 팀 안에 생기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럼 이 상황에서 팀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아마 "이번엔 왜 실패했지?",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은 고민을 할 것 같지만(하면 너무나 좋겠지만), 실제로 먼저 올라오는 건 그게 아닙니다.
"또 시작이네."
"이번엔 또 뭘 바꾸자고 하려는 거지."
"왜 자꾸 안 되는 것만 골라서 하는 거야."
당연한 반응입니다. 대표에게 실패가 다음을 위한 데이터라면, 팀원에게 실패는 야근이고 철야고 재작업이거든요. 추상적인 손실이 아니라 체력과 시간이 실제로 빠져나가는 소모입니다. 그러니 짜증과 지침, 그리고 불신이 분석보다 먼저 올라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실패 자체보다 이 감정의 누적이 팀의 호흡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팀원이 대표를 불신하게 되는 건 실패 때문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왜 이 방향을 택했는지 납득한 적이 없는데 시도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 때문입니다.
이번 실험이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실패하면 어디서 멈추는지, 무엇을 배우면 이번을 성공으로 볼 수 있는지 — 이 맥락 없이 "빨리 해보자"가 반복되면, 팀원 입장에서는 실패가 쌓이는 게 아니라 "이 방향 자체가 맞나?"라는 의심이 쌓이는 겁니다. 그 의심이 불신이 되고, 불신이 되면 다음 시도에 온전히 힘을 쏟기 어렵습니다.
저도 "바로 이겁니다!"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실패를 함께 다루는 방식을 만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복합적인 일이거든요(헤헷).
다만, 분명한건 체크리스트나 회고 템플릿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것보다 먼저 달라져야 하는 게 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먼저의 시작은 시도 전에 팀이 납득할 수 있는 맥락을 먼저 정리하는 것입니다.
왜 지금 이걸 하는지, 실패하면 어디서 멈추는지, 이번에 뭘 배우려는 건지 —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팀과 공유되면, 실패해도 "그래서 다음은 뭐가 달라야 하지?"라는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반대로 이게 없으면, 아무리 빠른 실행도 불신 위에서 돌아가게 됩니다.
실패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엔 잘하자"가 아니라 "이번 실패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지"를 같이 결정하는 것, 그게 팀이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조건입니다. 결국 팀의 신뢰는 방향이 맞다는 확신에서 오는 게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방식을 믿을 수 있는지에서 옵니다.
강한 팀은 실패를 덜 하는 팀이 아닙니다. 실패 이후에도 서로를 믿을 수 있고, 그 믿음 위에서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팀이죠. 그 믿음은 좋은 의지나 빠른 실행에서 오지 않습니다. 실패가 왔을 때 어떻게 함께 다루는지, 그 방식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