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가르치며 배운 것
며칠째 아이와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아이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중간고사를 치렀다. 영어와 과학은 곧잘 했지만 국어와 수학 점수는 신통치 않았다. 마음에 걸린 건 점수가 아니었다. 함께 문제를 풀어 보니 1학기에 배운 내용 가운데 기초가 덜 다져진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서 한글날 연휴부터 짬을 내어 처음부터 다시 짚어 가는 중이다.
의외였던 것은 아이가 아빠와 보내는 이 시간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험을 망쳤는데 주말 연휴에 집에서 아빠가 바카라상 앞에 앉힌다. 아이로서는 썩 반가울 리 없는 장면이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공부라기보다 같이 문제를 풀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시간에 가까웠다. 열의에 차 있다고까지는 못 해도, 적어도 억지로 끌려온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다 오늘, 작은 사건이 하나 생겼다.
음수의 덧셈을 설명하던 참이었다. 아이는 나름의 논리로 자기 답을 고집했다. 수직선에서 음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과 음수를 더한다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엉키면서 생긴 착각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실수였다.
나는 그 답이 왜 틀렸는지 설명했다.
그 순간, 아이의 얼굴이 굳었다.
이해가 안 돼서라기보다 틀렸다는 사실 자체에 마음이 상한 눈치였다. 다시 설명해도 귀를 닫았고, 제 생각을 좀처럼 내려놓지 못했다.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마음이 한번 닫히면 그다음부터는 논리도 설명도 좀처럼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다.
처음에는 조금 단호하게 말했다.
틀리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다. 계산이 틀렸다고 해서 네가 잘못했다는 뜻도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고, 실제로는 어떻게 계산하는지 이해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만 틀렸다는 기분에 붙들려 설명을 밀어내면,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서야 아이가 조금 누그러졌다.
다시 처음부터 설명했다. 아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먼저 짚어 주고, 이미 아는 다른 원리에 하나씩 이어 붙였다. 이번에는 알아들었다. 나는 "거봐, 아까 고집부리니까 그렇지" 같은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곧장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속상했던 순간을 굳이 다시 꺼내 오래 붙들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 장면을 지나오고 나서, 오래전 일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에서 처음 시간 강의를 맡았을 때다. 기초 디자인 수업이었는데, 한 학기에 과제가 열두 개 남짓 되는 꽤 빡빡한 과목이었다. 그런데 과제를 내지 않는 학생이 상당히 많았다.
당시 나의 판단은 단순했다.
과제를 안 냈으니 F다.
학생은 과제를 하지 않았고, 나는 규정대로 성적을 매겼다.
논리로만 보면 흠잡을 데가 없었다. 실제로 꽤 많은 학생에게 F를 주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묻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많은 학생이 과제를 내지 못했을까. 과제의 양은 적절했을까. 수업은 너무 어렵지 않았을까. 내가 조금 다르게 설명하고 운영했다면 결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때의 나는 과제를 내지 않은 것을 온전히 학생의 문제로 여겼다. 수업을 설계하고, 과제를 내고, 평가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은 원인의 목록에서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아마 젊은 나는 내가 꽤 특별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디자인도 곧잘 했고, 새로 등장한 컴퓨터도 남들보다 먼저 익혔다. 그런데도 가진 만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꼈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리에서도 내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믿었다.
학생이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어요?"라고 물으면, 이미 잘하는 사람의 대답은 허탈할 만큼 간단하다.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데."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빨리 달리는 법을 물었더니 "그냥 빨리 달리면 돼"라고 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가진 것을 전부 꺼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증명하는 일과 상대가 제대로 배우는 일은 같지 않다.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난 사람에게 왜 아직 100미터에 못 왔느냐고 다그친다고 해서 그가 더 빨리 도착하지는 않는다. 첫걸음을 제대로 떼고 있는지, 10미터까지는 어떻게 갈지, 거기서 다음 걸음을 어떻게 내딛게 할지를 살피는 편이 오히려 결승선에 닿을 가능성을 높인다.
오늘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붙든 생각도 결국 그것이었다.
내가 이 문제를 얼마나 잘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무엇이 설명을 가로막고 있는지, 다시 한 걸음을 떼게 하려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중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돌이켜 보면 가르치는 방식이 달라진 건 가르치는 기술을 더 많이 익혀서만은 아니었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뛰어난지 매번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받아들인 뒤에야, 가르치는 사람의 시선이 비로소 나에게서 배우는 사람 쪽으로 옮겨 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오늘 아이와 함께 푼 것은 음수의 덧셈이었다. 그러나 내가 다시 확인한 것은, 아주 오래전에 시작된 또 다른 공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