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는 시간의 의미

by초록Joon
아드님은 학교 회장이 될 수 있는 아이입니다.

5학년 선생님과 첫 번째 상담에서 들은 말인데, 적잖이 놀랐다. 내가 이 친구를 이렇게나 몰랐나. 자기 자리에서 본인의 몫을 얌전히 성실하게 해나갈 거라 믿어도, 앞장서 나와 대표가 될 성향은 아닐 텐데. 이번 학년말에 있을 학교 회장 선거에 나가길 바란다는 강력한 추천으로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더 놀란 건 옆에 있던 아들의 반응이다. 다른 이의 권유에도 자신의 선호가 맞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어쩐 일인지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모양새다. 학교 회장이라면 뭔가 하나는 특출나서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해져야 하는데 흠흠. 곰곰이 머리를 굴리더니 수학과 미술이 본인의 강점이라고 결정했다. 큰 결심을 한 표정의 아이가 낯설었지만, 어색한 표정으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두 손을 불끈 쥐며 응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때까지는 믿지 않았다. 아들이 정말로 회장이 되기 위해 나설 거라고는.


해야 하는 일을 시켜도 종종 미루고 가끔 깜빡하던 친구가 스스로 참가 신청서를 받아왔다. 진지하게 작성해서 선생님 두 분의 서명을 받아내 당당히 후보로 지원했다. 얼마 뒤 1차 서류 합격 소식을 기쁘게 전해 주었다. 남은 과정은 면접과 연설, 그리고 투표였다. 그즈음부터 나와 아내는 선거 캠프 활동을 시작했다. 게시판에 붙일 포스터를 만들고, 연설장에서 쓰일 공약문과 피켓도 제작했다. 입후보자는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한 심사 위원들과의 면접을 준비했다. 어떤 학생이며, 회장으로서 이런 자격이 있고, 학교를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내용을 반복해서 읽고 말했다. 무사히 인터뷰를 마친 아들에게 남은 건 이제 연설뿐.


본인만의 스토리로 짧고 굵은 연설문을 완성했다. 우리 부부는 연습 방법을 알려주고, 가끔 가상의 투표자로 경청했다. 아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 앞에서 말하고 또 말했다. 대망의 투표 당일, 자기 몸 크기만 한 선거 피켓을 들고 아들은 떠났다. 엄마 아빠가 현장에 있으면 긴장될 것 같다는 요청에 아쉬움을 접고 집으로 복귀했다. 학교가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교실 앞까지 찾아가 학생회장 후보를 기다렸다. 아들의 실루엣이 보이자마자 달려가 어땠냐고 물었는데, 아들 입으로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함께 걸어 나오는 길에 만나는 선생님마다 인상적이었다며 감탄과 칭찬을 줄줄이 전했기 때문에. 추천자였던 현재 담임 선생님은 물론, 지난 담임 선생님들까지 감동적이었다고 넘치도록 표현했다.


학교 밖에서도 아들을 향한 응원과 지지는 이어졌다. 돌아오는 길 건너편의 6학년 누나들이 아들을 불러세우며 멋지고 놀라운 최고의 연설이었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다른 6학년 형들도 찾아와 손을 내밀며 투표권이 있었다면 반드시 뽑았을 거라고 환호했다. 이 모든 뜨거운 반응이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아 현장의 분위기를 당사자에게 물었다. 자기처럼 완전히 외워서 무대를 휘저으며 연설한 후보자는 혼자였단다. 비록 준비했던 중간 두 문장은 까먹었지만 후련하게 해냈다고. 투표가 끝나고 여러 친구와 동생들이 찾아와 너를 뽑았다며 지지를 표명했다고. 나만 놓쳐버린 명장면에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참석하지 못한 우리 부부를 위해 학교에서 녹화 영상을 보내줬다. 그 속엔 온통 당찬 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들 학교 회장 연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준(JOON)입니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의 학교 회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바카라임감 있고 개방적이며 회복력이 뛰어나고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1학년 때 축구를 했는데요. 그때 저는 최고의 선수는 아니었어요. 그들 중 일부는 제가 팀에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고, 점심시간에 저와 함께 앉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축구를 피하는 대신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자랑스럽게도 좋은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되돌릴 수는 없지만, 문제를 극복하는 해결바카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는 제가 회복탄력성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좋은 리더가 될 것을 보여줍니다.

제가 학교 회장이 된다면 더 긍정적인 학교 문화를 만들겠습니다. 먼저, 다문화를 함께 축하하고 싶습니다. 가끔 학교에서 어떤 아이들이 저에게 와서 “아~~시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선 인종차별을 다루고 싶지 않아요. 그저 다문화에 대한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하모니 데이>를 업그레이드하고, 전통 춤, 음식, 이야기를 공유하고 즐긴다면 문화적 다양성을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문화는 존중받아야 하며, 모든 학교 학생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또한 일 년 동안 ‘가장 깨끗한 화장실 캠페인’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직접 화장실을 관리하도록 하여 좋은 화장실 예절을 장려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연설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제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는 영어를 전혀 몰랐어요. 한 번은 유치원에서 한 친구가 "실례합니다."라고 말하자, 제가 "천만에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하하. 어쨌든 제 요점은 그때는 영어를 몰랐지만 훌륭한 친구들, 선생님들, 학교의 지원 덕분에 지금은 원어민처럼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같은 생각을 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학교 회장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2026년 동안 학교를 깨끗하고 안전하게 지킬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주목하면, 저도 여러분을 주목하겠습니다!
ZOOM in on JOON and I’ll ZOOM in on YOU!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수없이 연습하는 걸 지켜봤지만, 이토록 생생하게 전하고 왔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아이는 자신의 성장을 도운 학교를 더 좋게 만들고 싶다고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많은 이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근사한 외침이었다. 커다란 도전을 마친 아이를 보며 한껏 가슴이 뿌듯해졌다. 부모라면 누구나 가질 내 자식의 대단함에 어깨가 하늘로 치켜 오르던 중, 갑작스러운 변화가 문득 생경했다. 내가 아는 아이는 도전을, 특히 경쟁을 피하는 친구였다. 아무리 좋아하는 분야여도 순위를 매기는 상황이 닥쳐오면 미련 없이 물러섰다.


도전 회피의 역사는 길고 오래다. 아주 어릴 적부터 사랑하는 그림 그리기로 대회에 출전하는 걸 꺼린다. 마음먹고 나섰던 한 번의 경험이 탈락으로 돌아온 탓이다. 표면적으로는 작품의 제목을 짓고 설명하는 게 어렵다지만, 다른 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체가 싫어서일 테다. 학교 록밴드에 들어가고 싶어서 드럼을 연습했다. 오디션 공고를 보았음에도 날짜를 대충 기억해서 놓치고 말았다. 정작 부딪힐 시간이 다가오자, 차일피일 미루다가 벌어진 일로 해석된다. 충분히 안타깝지만, 기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강인한 체력과는 거리가 멀어도 오래달리기에는 진심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두권에 진입했다. 상위권에는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경기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진다. 아들은 이에 응한 적이 없다. 혹시라도 찾아올 기분 좋지 않은 결과를 받기 싫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꿈이라고 정한 축구 선수의 길도 쉽지 않다. 학교 대표를 뽑는 관문을 넘으려는 시도를 못 하고 있다. 너무 부담이 된다며 매년 다음 해로 미루고 있다. 영원히 피할 수 없고, 경험해 봐야만 앞으로 나설 수 있음에도 도전을 멀리해 왔다. 그랬던 아이가 학교 모든 사람 앞에 나서서 정면으로 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크나큰 간극을 뛰어넘은 성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내심 기대, 아니 확신했는지 모른다. 이렇게나 훌륭한 연설과 유권자의 열광을 접하고 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는 참가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놓고는 혼자서 뒤로 꿍꿍이를 숨기고 있었다. 당연한 기쁜 소식을 기다리던 즐거운 나날이 며칠 흘렀다. 어떻게 축하하고, 무슨 선물을 줄지 고민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날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상황을 묻지 않고 우선 품에 꼬옥 안았다. 흑흑 대며 어깨를 들썩이면서 털어 놓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동안의 노력에만 집중하고 칭찬하려던 다짐이 무색하게 아이의 아쉬움에 동조하고 말았다. 사연은 이러했다. 회장 2명과 부회장 2명을 뽑는 선거였는데, 작년까지는 남녀 1명씩 뽑았으나 이번부터는 성별과 상관없이 득표순으로 뽑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성별 비중을 맞춰 최종 당선자를 선정했다고. 그러는 바람에 전체 순위 4위에 해당하는 아들이 탈락했다고 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멈출 수 없었다.


분노가 치밀어오르면, 모든 방면으로 남을 비난하게 된다. 지키지도 못할 성별 무관 방침을 왜 세웠으며, 더군다나 그런 상황을 굳이 친절하게 설명해 줘야 했을까? 차라리 몰랐더라면 이렇게나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냥 표를 많이 못 받았나보다 하고 말이다. 한창 속으로 열을 내다가 이제야 울음이 사그라드는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제아무리 내가 화가 난들 몸소 견뎌내는 이 친구의 속만 할까. 다시 힘차게 안고 등을 토닥이며 최선을 다한 모습이 정말 멋졌다고 격려했다. 감정을 추스른 아이는 내 품을 떠나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그 뒤로 아들은 단 한 번도 그때의 감정을 다시 드러내지 않았다. 안에서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선거 포스터와 피켓을 보관하려는 나에게 꼭 버려달라고 한 걸 보면, 아직 보이지 않게 싸우는 중인가 싶다. 차마 도전 시도의 첫 역사를 버리지 못하고 몰래 숨겨두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패를 만난다. 무너지는 순간을 향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한다. 물론 기분이 마냥 좋진 않다. 이런 거 없이 한 번에 탁 성공하고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은 원치 않는 씁쓸함을 느껴야만 한다. 때론 달콤함을 맛보기 전에 그만두기도 한다. 아니, 거의 다 중도에 포기하는 게 자연스럽다. 어쩌면 인생이란 여기저기서 넘어지는 시간의 합인지도 모른다. 되는 게 없는 게 당연해져 버리는.


그럼에도, 확실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분명히 자란다. 쓰러지고 나면 그 전과 달라져 있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아무리 부모라 해도 자식에게 알려 줄 수 없다. 해보면 알게 될 거라는 설득력 약한 권유를 건네는 게 전부다. 조금 더 애를 써 본다면, 아이가 다시 일어나길 기도하는 정도랄까.


아무런 내색 없이 6학년으로 올라간 아이는 학급 반장 선거에 출마했다. 마치 원래 계획되어 있던 것처럼. 전과 같은 열정으로 준비했고, 연설했고, 당선되었다. 편안한 안전 지역에서 천천히 벗어나는 중이다. 실패한 만큼 단단해진다는 걸 알아가는 표정으로. 내 부족한 기도가 운 좋게 통했을지도.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텅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바카라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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