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방학+여왕 생신+추석 연휴=???
06/Oct/2020
지난 7일은 우리 세 가족이 이곳 호주에 온 뒤 가장 오랫동안 함께 푹 쉬었던 일주일이었다. 두 학생이 하고 싶었던 것들 중심으로 소중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먼저 아들이 하고 싶었던 일들은...
- 드디어 고래를 만나고 왔다! (원래 정확히는 수족관에 가고 싶어 했지만 스케일을 늘렸다.) 덕분에 나와 파랑은 멀미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왔다. 침몰하는 타이타닉보다 처절했던 고래 구경 후기는 별도로 남길 예정이다.
- 엄마와 꼭 붙어서 하루 종일 놀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와 함께 놀았다. 그동안의 아쉬움을 좀 털어냈다.
그리고 파랑이 하고 싶었던 일들은...
- 방학 맞이? 추석 맞이? 손님 초대 릴레이. 그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몇 안 되는 지인 가족들과 밥을 먹었다. 여행 간 날을 제외하고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집엔 손님과 음식이 넘쳐났다. 그 음식들도 다양했다. 수제비, 보쌈, 겉절이, 무김치, 각종 전, 근대 된장국, 돼지고기 김치찜, 깻잎조림, 깍두기, 오이소박이까지. 그리고 직접 송편도 함께 빚어서 쪄 먹기도 했다. 모두 파랑의 행복이자 기쁨, 취미인 ‘맛있는 밥 함께 나누기’ 덕분이었다.
- 그리고 이건 파랑과 아들의 작품이긴 한데... 처음으로 세 가족이 다 같이 달리기를 했다. 파랑은 뛰고 싶었고 아들은 엄마를 따라가고 싶었고 아빠도 함께하길 원했다. 그래서 함께 호수를 뛰고 왔는데 정말 좋았다. 오랜만에 뛰어 본 개운함, 딱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한번 놀라고 왔다. 좋은 동네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도 이루었는데...
-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 단지 내 수영장에서 다 함께 쉬면서 바비큐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일 년 만에 드디어!) 나와 아들은 물에 들락날락 거리며 늘어졌고 파랑도 선베드에서 마음껏 쉬었고 점심으로 기가 막힌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바로 집 앞에서 이런 호캉스를 누릴 수 있다니 다시 한번 이곳의 삶의 여유에 놀랐다. (심지어 그날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호주 살기를 시작한 지 각자의 일들로 서로 바빠서 함께 맘 편히 쉰 적이 별로 없었는데 마치 호주 여행을 온 것처럼 하고 싶은 것들을 다하고 지낸 일주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휴식을 365일 동안 계속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심심하고 밋밋했을 것 같기도 하다. 풀어졌다 당겨졌다 하면서 지내야 더욱 휴식의 행복과 일상의 보람이 서로 커지지 않을까 싶다.
내일부터 다시 두학생의 개학이다. 백수 육아 담당자인 나에게도 새로운 일상이 펼쳐질 것이다.
1. 속담이 궁금해
‘나 한글 속담 바카라 읽고 싶어~, 배우고 싶어~'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가끔씩 우리 부부가 사용하고 알려주는 속담이 궁금했다 보다. 아들 생일 겸 한국에서 받아볼 물품에 바로 추가했다. 신통방통한 녀석이다. 나도 어려서 속담, 고사성어가 재밌어서 바카라도 많이 읽고 관심이 많았었는데 이런 것도 닮을 수 있나 보다.
2. 아빠가 대충 만든 샌드위치
파랑이 수영장 옆 바비큐 시설로 샌드위치를 만들며 솜씨를 부리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가 해주던 대충 만든 샌드위치 말고 맛있는 거로 해줘~’
아들이 갑자기 쉬다가 말고 벌떡 일어나서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도시락으로 싸줬던 햄, 치즈, 딸기잼 샌드위치가 그렇게 맛이 없었다고 한다. 넌 좀 쌓아두고 묵혀두는 스타일이구나...
3. 속상한 일
아침에 일어나서 내 옆에서 뒹굴뒹굴하며 잠에서 깨던 아들이 갑자기 울먹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난 호주에 오면서 속상한 일이 2가지가 있어. 햐양이랑 똘똘이랑 헤어진 거야.’
하영이는 우리가 한국에서 타던 자동차고, 똘똘이는 작은 선인장인데 물을 제대로 안 줘서 결국 시들어 죽었다.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가라앉을 때까지 꼭 안고 있었다.
4. 물려 입은 팬티
지인분이 물려주신 옷 중에서 속옷도 있었는데 아들이 입기 싫어했다. 나와 파랑은 그냥 팬티라서 남이 입던 게 좀 신경 쓰여서 그러나 보다 했는데 이유가 따로 있었다.
‘난 만화 캐릭터가 싫어’
팬티에 그려져 있던 화려한 그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캐릭터 없이 생활을 해온 것은 맞지만 좀 의외였다. 아들, 그런데 요괴 메카드, 헬로카봇 이런 건 왜 좋아하는 거야?
5. 글자놀이의 보람
아들이 배부르다면서 한 숟가락만 더 먹겠다고 했다. 난 장난기가 발동해서 ‘맛있는 녀석’들에 나오는 ‘한입만’을 알려주면 크게 한 숟가락을 펐다. ‘아들, 두 유 노 한입만?’이라며 아들에게 크게 한입 먹이려는데...
잠시 생각을 하던 아들이 말했다. ‘아빠 한입만이 영어로 뭔지 알았어!’ 나랑 파랑은 바로 생각이 안 나서 아들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원 바이트!’
아주 쉽게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자유자재로 떠올리는 아들에 놀라고 있었는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빠랑 글자 놀이할 때 배운 거야. 아빠랑 함께 한 글자놀이가 도움이 되었어!’
난 더 이상 기쁠 수가 없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고 딱 좋았던 2주간의 방학이 끝났다. 오늘은 다시 아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 올해 마지막 4 Term. 10주 동안 더 즐겁게 놀 수 있기를 기도 할게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