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늘 해명과 함께 끓는다
* 라면 단상의 다음 편은 임경주 작가님이 이어받으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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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이상한 음식이다. 너무나 친숙해 설명이 필요 없는 음식이면서도 막상 먹으려 하면 온갖 설명들이 따라붙는다. 수프를 먼저 넣어야 한다. 면을 들었다 놨다 하며 끓여야 쫄깃하다. 밤에 먹으면 붓는다. 국물은 남겨라. 이런 말들이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탄수화물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매번 말하지는 않는다. 빵을 먹으면서 "글루텐이 문제라던데" 하고 손을 멈추는 사람도 있지만, 라면만큼 집요하게 자기 정당화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라면은 식품이라기보다 한 끼마다 변명을 요구받는 음식에 가깝다. 냄비에 물을 올리는 순간 먹는 사람은 피고가 된다. 죄목은 대개 게으름, 야식, 나트륨, 가난한 식사, 자극적인 취향이다.
라면은 바로 그 점 때문에 흥미롭다. 라면에는 현대인이 먹거리를 대하는 태도가 거의 전부 들어 있다. 과학에 대한 어설픈 신뢰, 기업에 대한 불신, 몸을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 빠른 해결을 원하는 생활, 그리고 싸고 뜨거운 위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라면 한 봉지는 작지만, 그 안에 한국인의 식품 근대사가 압축돼 있다.
라면 면발이 왜 노란색이냐는 질문부터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비타민 C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딘가 그럴듯하다. 비타민 C는 대중적으로 가장 친숙한 비타민이고, 노란색은 레몬과 피로회복제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라면 면발의 노란빛과 관련 있는 성분은 보통 리보플라빈, 즉 비타민 B2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비타민 C가 아니라 B2라는 정정이 아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만들어냈는가다. 라면은 싸고 빠른 음식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거기에 결핍의 그림자를 본다. 한 끼를 너무 간단히 때웠다는 죄바카라감이 생기고, 죄바카라감이 들 때 사람들은 뭔가로 보충하고 싶어 한다. "노란색은 비타민 때문"이라는 말은 그래서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뭔가 몸에 좋은 요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라면을 택한 자신을 완전히 방치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노란색을 보며 면이 그냥 밀가루 덩어리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어 한다. 라면은 인스턴트 식품이지만, 완전히 인스턴트로만 취급받기는 싫어한다. 그래서 비타민, 계란, 파, 콩나물, 우유, 두부 같은 단어들이 라면 주변을 맴돈다. 심지어 건강한 라면이라 주장하면서 가격은 1.5배 이상을 받는 제품까지 출시되는 지경이다.
우지 파동은 라면에 붙은 가장 강력한 집단 기억 중 하나다. 1989년 이른바 '공업용 우지' 논란은 라면업계에 큰 충격을 줬고, 관련 업체들은 1997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당시 판결은 미국에서 비식용으로 분류된 우지가 곧바로 국내 기준상 부적합 식용우지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식탁의 기억은 판결문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공업용이라는 단어가 한번 음식 위에 내려앉으면 과학적 설명이나 법적 판결을 들이밀어도 의심이 쉽게 걷히지 않는다. 이 단어는 분류명이라기보다 의심의 출발점이었다. 공장, 금속통, 불결함, 속임수 같은 이미지가 한꺼번에 따라왔다. 사람들은 라면을 먹으며 실제 기름의 성분보다 그 단어가 남긴 감각을 더 오래 되뇌었다.
라면은 기술의 산물이기도 하다. 유탕면은 면을 익힌 뒤 기름에 튀겨 수분을 낮추고, 그 덕분에 오래 보관되며 조리가 빨라진다. 라면이 5분 안에 먹는 음식이 된 이유는 단순히 간편해서가 아니다. 이미 한 번 익힌 면을 말리고, 기름과 전분과 수분을 조정하고, 다시 물을 만나면 바로 먹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라면은 일종의 시간 압축 장치다. 공장에서 미리 수행한 조리 시간을 봉지 안에 넣어 두었다가 소비자가 뜨거운 물로 다시 펼쳐낸다. 우리는 라면을 끓인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미 한 번 요리된 시간을 재가동한다. 냄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창조라기보다 복원에 가깝다. 라면은 미래식품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미래식품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보관 가능하고, 싸고, 빠르며, 표준화돼 있고, 개인이 자기 취향대로 마지막 단계를 조정한다.
수프를 먼저 넣느냐, 면을 먼저 넣느냐는 논쟁만 봐도 라면이 얼마나 과학을 끌어들이는 음식인지 알 수 있다. 수프를 먼저 넣으면 물의 끓는점이 오른다는 설명은 화학적으로 방향은 맞다. 물에 염류 같은 용질이 녹으면 끓는점이 올라간다. 다만 실제 조리 조건에서 그 차이가 얼마나 유의미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일부 과학 설명 자료들은 수프를 먼저 넣으면 끓는점이 조금(대략 0.2도~0.3도) 높아진다고 설명하지만, 그 효과를 맛을 가르는 차이로까지 과장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논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라면을 끓이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기술자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라면은 너무 쉬운 음식이라서, 오히려 작은 차이를 만들고 싶은 욕망을 부른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리는 손, 뚜껑을 덮을지 말지의 결정, 계란을 풀지 통째로 둘지의 선택. 이런 행위들은 대단한 요리 기술은 아니지만, 먹는 사람에게 "내가 이 라면을 만들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나트륨 문제도 라면을 둘러싼 해명의 중심에 있다. 국물라면 한 봉지의 나트륨 함량은 제품마다 다르지만, 하루 권장량에 상당히 가까운 수준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물을 남기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남기기도 하고, 말만 하기도 한다. 라면 국물은 먹는 사람의 의지를 시험한다. 면은 그래도 식사라 치고, 국물은 끝까지 유혹이다.
미래의 식품은 아마 더 정밀해질 것이다. 개인의 혈당, 혈압, 장내 미생물 상태에 맞춰 조리되는 음식이 흔해질지도 모른다. 냉장고가 오늘의 결핍 영양소를 계산하고, 조리기구가 염분을 자동 조절하고, 포장지는 소비자의 건강기록과 연동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라면은 낡은 음식처럼 보일 것이다. 물을 끓이고, 봉지를 뜯고, 수프를 털어 넣는 방식은 너무 원시적이니까.
그 원시성이야말로 라면을 오래가게 할 것이다. 라면은 완벽한 식품이 아니라서 인간적이다. 라면을 둘러싼 소문은 그래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소문은 무지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애착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관심 없는 음식에 대해 그렇게 많은 말을 만들지 않는다.
라면이 몸에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도 라면을 너무 잘 안다. 어떤 제품이 더 맵고, 어떤 면이 더 굵고, 어떤 국물이 밥과 어울리는지 안다. 우리는 라면 앞에서 건강한 척을 오래 하지 못한다. 합리적인 척도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결국 물을 끓이고, 봉지를 찢고, 수프 냄새를 맡는다. 라면의 진짜 성분 목록에는 소맥분과 팜유, 비타민 B2 말고도 의심과 해명, 편의와 죄바카라감, 작은 만족 같은 것이 같이 들어 있다.
나도 라면을 끓인다.
물이 끓고, 면이 풀리고, 수프가 퍼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