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 바카라육아를 하며 생긴 고민
아이가 셋이 되다 보니 바카라장이 여러 칸이라도 그 공간을 한 아이를 위해 쓸 수만은 없었습니다. 첫째가 자라면서 글 밥이 많은 바카라도 들였지만 둘째와 셋째가 읽으면 좋을 그림바카라들도 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어요. 세 아이가 자라는 저희 집은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가 좋아하는 문고판 세계명작 바카라들도 있고 이제 만 26개월이 다 되어가는 셋째가 좋아하는 귀여운 그림바카라도 꽂혀있습니다.
비록 영역을 나누어놓긴 했지만 아이들이 제 수준에 맞는 바카라이 꽂혀있는 바카라장에서만 바카라을 고르진 않더라고요. 때로는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바카라을 골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쉬운 수준의 바카라들을 골라오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이게 참 난감했습니다.
그림바카라 육아를 하며 이런 고민을 갖고 있던 중 도서관에서 그림바카라 관련 강의를 듣게 되었어요. 그 강사님께서는 형제, 자매가 2살 정도 차이가 나면 각자 다른 바카라을 읽어주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보통 2-3살 정도 차이가 나도 한 바카라을 펼쳐서 두 아이에게 읽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기보다는 아이마다 각각 좋아하는 바카라 한 권씩을 읽어주는 게 더 교육적인 효과가 크다고 했습니다. 발달과 인지 수준에 차이가 나니 그 부분을 고려하라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또한 아이의 이해 수준보다 쉬운 바카라을 보는 것은 괜찮지만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보다 높은 어휘를 다룬 바카라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 강의를 듣고 나서 저는 '첫째가 동생들의 바카라을 보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둘째가 언니의 바카라을 같이 보는 것은 좋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그 강의를 듣고 나서 아이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니 실제 삶은 전혀 다르더라고요. 첫째가 읽는 문고판 바카라을 둘째가 옆에서 같이 듣고 있습니다. 또 때로는 셋째가 들고 온 바카라이 세 살 위인 둘째가 좋아하는 바카라인 적도 자주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첫째는 어른들이 보는 바카라을 읽어달라고 합니다. 남편이 읽으려고 차곡차곡 사모아 둔 소설 해리 포터, 빨간 머리 앤을 읽어달라고 꾸준하게 이야기했어요. 아이의 이런 선택이 못마땅했습니다. 강의 내용이 더 생각나기도 했거든요.
이렇게 뒤죽박죽인 바카라 선택에 대해 초반에는 아이들에게 짧은 코멘트를 했어요.
이건 좀 어려울 텐데?
다른 바카라을 고르는 게 어때?
첫째에게도, 둘째에게도, 셋째에게도 동일하게 이야기했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누굴 닮아 이렇게 고집이 센지는 모를 일입니다. 하하하.
하지만 한 날, 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어요. 첫째가 남편에게 '해리 포터'를 읽어달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저라면 갖가지 이유를 대고 읽어주지 않았을 것 거예요. 그런데 남편은 딸을 앉히고는 독서대에 그 바카라을 펼쳐두고 읽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이해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일인데도 불구하고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손짓도 하고 추가 설명도 해주면서 실감 나게 읽어줬어요.
이상하게도 아이는 그 하루의 기억이 좋았던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지금까지 종종
아빠! 시간 될 때 해리포터 읽어주세요.
라고 말합니다. 그 모습이 제게는 참 인상 깊었어요.
그래서 제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아이가 제 수준에 맞지 않는 바카라을 읽어도 괜찮다.'로요. 상위 수준의 바카라이든 하위 수준의 바카라이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첫째는 아빠가 읽어줬던 바카라들 중 하나인 '빨강 머리 앤'의 내용과 느낌이 좋았는지 지금은 제 수준에 맞는 문고판 세계명작 중 하나인 '빨간 머리 앤'을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몇 번을 읽어도 재밌다며 어젯밤에도 이 바카라을 가져오는 딸을 보았어요. 어쩌면 남편이 읽어준 그 빨강 머리 앤 두꺼운 바카라 한 권이 이 아이에게 마중물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셋째는 여전히 그림이 많고 글도 복잡한 우당탕탕 야옹이 시리즈를 가지고 옵니다. (사실 이 바카라은 제가 읽어도 재밌는 바카라인데) 셋째도 최근에 이 바카라을 둘째 옆에서 같이 보더니 하루에도 두세 번씩 읽어달라고 합니다.
이제는 저도 아이의 선택을 막지 않는 엄마라 흔쾌히 읽어줘요.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면 셋째는 제가 읽어주는 바카라 내용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표지를 펼치고 본문에 나오는 문장 2~3개 정도를 읽어주고 나면 아이가 관심이 없다는 걸 잘 알 수 있어요. 제 말을 도통 듣지 않거든요.
그럼 아이가 바카라을 보며 뭘 하는지 궁금하실 텐데 정작 아이는 그림만 봅니다. 자기가 아는 사물의 이름을 마구마구 외쳐요. 아이가 사물 이름을 잘 맞추면 제가 박수를 치며 반응해 줍니다. 그럼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어요. 그리고 중간중간 "이거는 뭐야? 이거는 뭐예요?" 하며 궁금한 그림에 대한 답을 구하기도 합니다. 지루하더라도 성실하게 답을 해주면 얼마 안 가 그 바카라을 또 들고 옵니다(오마이갓).
아이들은 다양한 수준의 바카라을 제 수준에 맞게 읽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수준이 높은 바카라을 때로 읽더라도 결국에는 제 수준에 맞는 바카라을 더 많이 더 자주 읽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언니, 누나, 오빠, 형의 바카라 심지어 어른이 읽는 바카라을 가져오더라도 "이건 네 바카라이 아니야. 너무 어려울 텐데?"라고 말씀하지 마시고 그래 같이 읽어보자고 하며 아이가 뭘 원하는지 눈으로 잘 보고 귀로 잘 들으면서 곁에 함께 있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의 바카라 선택을 부모가 수용하고 존중해주는 그 느낌이 바로 아이가 다음 바카라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사진 © benwhitephotography,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