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생일 선물

모든 것은 제자리에

by손현

마흔두 번째 생일인 오늘, 첫 바카라을 다시 꺼냈다. 당시 나는 구글맵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러시아의 낯선 마을로 홀로 700킬로미터를 달려가고 있었다. 잃어버린 박스 하나 때문에.


아래는 2015년 여름,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를 건너던 서른두 번째 생일의 기록.




모든 것은 제자리에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예카테린부르크-말코보-예카테린부르크)


시베리아에선 모든 일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든 된다"는 어느 여행자의 말처럼 말이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일주일 동안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이동했다. 달린 지 이틀째, 옴스크에서 튜멘으로 가는 길은 유독 공사 구간이 많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 늦게 모터사이클에 딸린 알루미늄 박스 하나가 사라졌다. 마지막 주유소에 들렀을 때 (여정 중 잠깐 동행하던) 동년이 깜짝 놀라며 박스 하나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때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스스로 믿기 힘들 정도로 달리는 중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전에 수리했던 박스의 결속 부위가 울퉁불퉁한 도로 때문에 다시 헐거워지면서 결국 떨어져 나갔나 보다. 그 안에는 바이크 수트의 방한용 내피, 수영복, 비상 약, 바카라 두 권 그리고 사촌 동생에게 빌린 랩탑과 외장 하드 정도가 들어 있었다. 다행히 여권, 국제 운전면허증, 모터사이클 차량 보험 및 통관 관련 서류들 등 여행에 필수적인 서류와 정비 용품은 다른 박스 안에 있었다.


몇 년 전 여행 때 짐을 송두리째 도난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엔 마음을 빨리 추스를 수 있었다. 물질에 대해선 이제 포기가 빠른 편이다. 게다가 이날 주행 거리만 570킬로미터가 넘어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


육조 혜능六祖慧能을 눈뜨게 한 구절이 <금강경>에 있습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어디에도 머물지 말라,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그 마음을 일으키라는 말입니다. 움켜쥐었던 것을 놓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것을 늘 움켜쥐고 있으면 거기에 갇혀 사람이 시들어 버립니다. 그 이상의 큰 그릇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중략) 우리가 살 만큼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때 가서 아까워하며 망설일 것 없이, 내려놓는 일을 미리부터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법정 스님 법문집, 『일기일회 一期一會』 중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내려놓은 셈이지만, 어쨌든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모든 걸 비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상심을 찾고자 애썼다. 더불어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에서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가? 이 여행이 일종의 수행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당장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여행 중 찍은 사진들을 저장하는 일들이 불가능해졌지만 이 또한 부수적이다. 극단적으로는 모터사이클조차 본질적인 것이 아니므로 없어도 된다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농담이다.


다음 날 예카테린부르크에 도착했고 동년이 바이크 정비를 맡기는 동안 알렉산더라는 사람에게서 믿기 어려운 메일을 받았다. 튜멘(Tyumen) 가는 길에 친구가 박스를 주웠는데, 그 친구가 영어를 할 줄 몰라 자신이 대신 연락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박스 안의 노트북에서 메일 주소를 찾은 듯싶다. 박스는 튜멘 근처의 말코보(Malkovo)라는 마을에서 보관 중이란다. 내가 머무는 숙소와의 거리는 고작 350킬로미터였고, 시베리아 규모로 보자면 그나마 옆 동네 수준이었다. 다음 날 나는 말코보에서 메일을 보낸 알렉산더를 만나기로 하고, 동년은 예카테린부르크의 호스텔에서 하루를 더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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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박스가 주행 중에 떨어져 나갔고, 이튿날 거짓말처럼 메일이 왔다.

말코보까지 가는 길은 이상하게 불안했다. 잃어버린 박스를 너무 일찍 체념해버렸는지, 그걸 받을 생각에 오히려 들떠있기는커녕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을 확인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그 시간을 단축시키고자 거의 모든 차량을 추월했다. 평균 시속은 140킬로미터 정도였다.


지나온 구간을 되돌아가는 동안 내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왕복 7백 킬로미터를 다시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나 박스 때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스스로를 속여 온 감정, 즉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더불어 그때까지 내비게이션을 한 번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에서 모터사이클로 여행을 할 때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잠깐씩이나마 늘 동행이 있었다. 복잡한 시내에서도 동행을 따라가기만 했다. 하지만 이날은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했다.

러시아를 통과하던 중, 도로에서 마주치는 차량은 주로 이런 트레일러(트랙터 트럭)들이었다.

중간에 미심쩍은 진동이 느껴져 혹시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모터사이클을 세워 확인하기도 했다. 몸을 숙여 도로를 보니 아스팔트 포장 면의 요철 때문에 생긴 주기적인 진동이었다. 그들이 박스를 빌미로 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끊이질 않았다. 말코보에 도착한 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동년에게 이곳의 위치와 그들의 연락처를 메시지로 보냈다. 알렉산더가 영어로 알려 준 주소가 구글 맵에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하필 그 지번의 집에는 인기척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이를 극복할 수도 있다. 한 남자가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내 앞에 섰고 본인을 안드레이라고 소개했다. 알고 보니 엉뚱한 곳에서 서성거렸던 것이다. 안드레이는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고, 박스를 처음 발견했다는 세르게이와 당시 트럭에 동승했던 블라드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딴 마을 말코보에서 만난 이들은 매우 친절했다. 안드레이는 내게 따뜻한 차와 점심을 대접했고, 다시는 박스가 떨어지지 않도록 드릴로 구멍을 뚫어 튼튼한 와이어로 몇 번을 매듭지어 묶어 주기까지 했다. 박스 안의 물건도 모두 그대로였다. 심지어 노트북과 외장 하드도 무사했다. 세르게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과 전생에 인연이 있었나 보다. 세르게이, 안드레이, 블라드 그리고 메일로 연락을 취해 준 알렉산더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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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안드레이, 블라드. 너무 고마운 사람들. 다들 잘 지내고 계시려나.

다시 예카테린부르크로 돌아오는 길은 시속 1백 킬로미터를 넘지 못했다. 언제든 박스가 다시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달리는 동안 사이드 미러를 통해 수시로 뒤를 확인하는 웃지 못할 습관도 생겼다. 대신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박스는 제자리를 찾았고, 나 역시 이제는 온전히 혼자서 다닐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찾았다. 서른두 번째 생일에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다. (2015. 7. 23)



일기를 쓸 무렵의 나는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앞으로 누구와 살아갈지, 부모님이 제공해 준 보금자리에서 독립해 나만의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을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11년이 지난 지금, 그 질문들에 하나씩 답이 생겼다. 수현을 만나 새로운 공동체를 꾸렸고, (한 번의 유산을 겪고) 우리에게 송이가 왔고, 북촌에 자리를 잡았다. 감사하게도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아 여전히 글도 짓고 있다. 당연한 게 하나도 없었는데, 어떻게든 됐다. 아니, 곁에 있어준 이들 덕분에 됐다.


시베리아의 이름 모를 마을에서 박스를 지켜준 세르게이와 안드레이처럼, 지금의 내 곁에도 고마운 이들이 있다. 가족, 동료, 친구들. 덕분에 마흔두 살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많은 걸 누리고 있다.


서른두 살의 나에게도 뒤늦은 축하와 고마움을 건넨다. 그때 리스크를 감수하고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길 잘했다고. 덕분에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