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기는 게 아니라 제 입장을 말하는 거예요”

관계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의 마음

by이숙영

상담실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은 친구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지난주 어떻게 지냈니?”라고 물으면,

“이번에도 친구랑 싸웠어요.”


잠시 뒤 아이는 꼭 이런 말을 덧붙이곤 했다.

“근데 지금은 화해했어요.”


신기하게도 이 아이의 이야기에는 늘 두 가지가 함께 있었다.

갈등, 그리고 어떻게든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어 하는 마음.


겉으로 보기엔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였다. 말을 유창하게 잘했고, 논리적이었으며, 반박도 빨랐다. 친구들과 토론하는 걸 좋아했고, 학교에서도 발표를 자주 하는 편이었다. MBTI 유형을 줄줄 외우며, 친구와 가족의 성향을 나름대로 분석할 정도로 지적 능력이 뛰어난 똑똑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런 아이에게 주변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


“너는 네 입장만 생각해.”

“너무 예민한 것 아냐?”

“말이 강압적이라 피곤해.”


상담실에서 조금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제가 상대방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곧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상대 입장에서 말하면 엄마가 제 어려움을 모를까 봐요. 그리고 제가 불리해질 것 같아서요.”


나는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 물었다.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해 본 적은 있어?”

아이는 작게 고개를 저였다.


“그럼… 선생님이 대신 전해줘도 괜찮을까?”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순간, 나는 이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아이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마음이 지워져버릴까 봐, 먼저 자기 입장을 붙잡고 있는 아이에 가까웠다.


아이는 상담 중 ‘공정’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왜 언니는 검사 안 하고 저만 검사해요? 공정하지 않아요”

“친구가 규칙을 어겨서 선생님께 말했는데, 왜 저만 참견했다고 혼나요? 억울해요.”


흥미로웠던 건, 아이가 ‘공정’이라는 단어의 뜻이 궁금해 방에 있는 국어사전을 스스로 찾아보았다는 점이었다. 아이는 단순히 떼를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억울함을 가장 정확한 언어로 설명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아이에게 공정은 단순히 규칙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공정은 사랑받고 있는지, 믿어지고 있는지, 존중받고 있는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왜 나만 검사해요?”의 진짜 뜻은 어쩌면 이런 말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왜 저를 더 문제 있는 아이처럼 봐요?”

“왜 저를 믿어주지 않아요?”


이 아이는 사람을 좋아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친구들에게 계속 연락을 보내고, 연결이 끊기는 상황을 어려워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사람을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연결되어 있어야 안전하다’는 감각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친구 관계에서도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가까워지고 싶고, 더 친해지고 싶고, 관계를 안정적으로 붙잡고 싶다 보니 설명이 길어지고, 설득이 많아지고, 상대를 자신의 방식으로 이끌려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같이 잘 지내고 싶어서”였지만, 친구 입장에서는 “숨 쉴 공간이 없는 느낌”이 되기도 했다.

이 아이는 언어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표현력도 좋고, 기억력도 좋고, 추론 능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아이가 말을 잘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충분히 성숙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아이들은 감정을 ‘생각’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불안을 느끼면 설명하고, 억울하면 논리로 정리하고, 관계가 흔들리면 더 많이 말한다.

겉으로는 성숙해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런 여린 마음이 남아있기도 하다.

“내 마음도 좀 알아줘”


이런 아이들을 만나면 어른들은 종종 ‘논리 싸움’을 시작한다.

“그건 네 생각이고.”

“상대 입장도 생각해야지.”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하지만 이 아이에게 더 필요했던 건,

‘네 말이 틀렸어’가 아니라,

‘왜 네 마음이 그렇게까지 급해졌는지 함께 이해해 볼게’라는 경험이었다.


상담에서 중요한 건 아이의 자기주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입장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 마음을 함께 담는 힘,

설명하지 않아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경험,

관계가 흔들려도 내가 완전히 버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안전감을

조금씩 배워가는 일이었다.


어느 날 아이는 말했다.

“모든 친구가 다 같은 건 아니더라고요.”

그 짧은 문장 안에는 이미 중요한 변화가 담겨 있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나를 지우는 것도 아니고, 상대를 이기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아이는 이제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었다.


* 다음 글에서는 이런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