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이라는 그럴싸한 이야기 — AI 폭락장을 읽는 법

2026 All-Day-Project (188/365)

byJamin
질문은 "이게 버블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확률은 주어지고, 페이오프는 설계된다.


잘못 던진 질문에서 시작한다


2026년 6월 23일, 코스피는 하루에 910.71포인트, 9.99% 빠졌다. 8203.84로 마감했고, 지수 하락 폭으로는 역대 최대였다.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서킷브레이커가 걸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2%씩 무너졌는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낙폭이었다. 두 종목이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니, 사실상 지수 전체가 두 회사의 그림자였다. 그날 오후 나스닥도 2.2% 밀렸다. 외신은 "한국이 세계 AI 심리를 흔들었다"고 썼다.


폭락 다음 날부터 세상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했다. "AI는 버블인가, 아닌가." 마이클 버리는 "1999–2000년 버블의 마지막 몇 달 같다"며 "하루 종일 AI 얘기밖에 안 한다"고 조롱했다. 반대편에서는 닷컴 때와 달리 지금 빅테크는 영업현금흐름 대비 투자가 140%가 아니라 60% 수준이라 재무가 건전하다고 반박했다. 양쪽 다 그럴듯하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위험하다.


나는 이 글에서 그 질문을 버리려 한다. "버블이냐 아니냐"는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 아니라, 답을 알아도 쓸모가 없는 질문이다. 사후에나 판명되는 라벨을 놓고 지금 다투는 일에는, 우리를 실제 결정에서 멀어지게 하는 착시가 여럿 숨어 있다. 그 착시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전혀 다른 자리에 도착하려 한다.


지금, 최고의 전문가들도 정반대를 말한다


먼저 짚어둘 것이 있다. 이건 똑똑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의 싸움이 아니다. 폭락 직후 월가의 진단은 하나로 모이기는커녕 정반대로 갈렸다.


강세 쪽은 숫자로 말한다. 골드만삭스는 오히려 S&P500 연말 목표치를 7,600에서 8,000으로 올렸다. 2026년 기업 이익이 24% 늘어나고, 그 이익 성장의 절반가량이 AI 투자에서 나온다는 계산이다. 모건스탠리도 같은 8,000을 제시하며 "이 강세장은 벌써 4년째지만 아직 갈 길이 남았다"고 했다. 이들은 2028년까지 전 세계에 약 3조 달러의 AI 인프라 투자가 집행될 텐데 그중 80% 이상이 아직 쓰이지도 않았다고 본다. 돈이 풀리기도 전에 잔치가 끝날 리 없다는 논리다.


약세 쪽은 같은 회사 안에도 있다. 골드만삭스의 리서치 총괄 짐 코벨로는 2024년에 "AI 인프라에 쏟아붓는 돈이 실제 수익으로 돌아오는지는 길어야 2년이면 판가름 난다"고 했는데, 그 시한이 지났는데도 뚜렷한 수익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게다가 지수 상위 10개 종목이 전체의 40%를 차지하니, 이익이 기대에 조금만 못 미쳐도 크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증권가는 대체로 "약세 전환이 아니라 일시적 조정"으로 본다. KB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로 17만 원을, 노무라와 NH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를 88만 원으로 올려 잡았다. HBM 수요가 여전한 데다 범용 D램 값까지 오른다는 게 근거다. 지금의 조정이 오히려 매수 기회라는 목소리가 많다.


세 진영 모두 똑똑하고,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셋 중 하나를 '고르려' 한다는 데 있다. 어느 이야기가 더 그럴듯한지 고르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함정의 입구에 서 있다. 왜 그런지, 그 함정을 네 개로 나눠 살펴보자.


첫 번째 착시: 왜 '1999'는 이렇게 매력적인가


심리학자 트버스키와 카너먼의 유명한 실험이 있다. 린다라는 사람이 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슬롯 정의에 관심이 많으며, 시위에도 자주 나간다. 이제 물어보자. (1) 린다는 은행원이다. (2) 린다는 페미니스트이며 은행원이다. 많은 사람이 2번을 더 그럴듯하게 여긴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이상하다. '페미니스트이며 은행원'인 사람은 '은행원'이라는 더 큰 무리 안에 들어 있는 작은 무리다. 조건을 하나 더 붙였는데 확률이 올라갈 수는 없다. 작은 원이 큰 원보다 클 수 없듯이. 이것이 결합 오류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내일 비가 온다"보다 "내일 비가 오고 우산 장수가 웃는다"가 더 생생하게 들린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더 붙었으니 실제로 둘 다 맞아떨어질 가능성은 오히려 더 낮다. 우리는 이렇게 확률이 아니라 이야기의 그럴싸함에 표를 던진다. 사연이 붙을수록 더 믿는다.


"2026년은 1999년의 재현"이라는 서사가 정확히 그렇다.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숫자가 실러의 CAPE 지수다. CAPE는 쉽게 말해 '지금 주가가 지난 10년 평균 이익의 몇 배인가'를 재는 잣대다. 배수가 높을수록 사람들이 미래 이익을 크게 기대하며 비싸게 사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값이 2026년 5월에 약 41.6까지 올랐다. 140여 년 역사에서 두 번째로 높고, 1999년 12월의 44.2 바로 아래다. CAPE가 40을 넘긴 적은 역사상 1999년 1월부터 2000년 9월까지, 딱 한 번의 구간뿐이었다. 숫자만 보면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 이 소름이 바로 함정이다.


"주가가 비싸다"는 건 하나의 조건이다. "주가가 비싸고, 그래서 1999년처럼 무너진다"는 건 두 개의 조건을 이어 붙인 서사다. 뒤엣것이 훨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조건이 늘어난 만큼 실제로 그대로 일어날 확률은 낮아진다. 세부가 붙을수록 이야기는 생생해지고, 생생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더 확실하다고 착각한다.


강세론자도 반대 방향으로 똑같이 한다. "AI는 인터넷급 혁명이고, 그래서 지금 조정은 매수 기회다" — 역시 두 조건을 붙인 매력적인 이야기다. 앞서 본 세 진영의 근거가 다 그럴듯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는 양쪽 모두를 확신하게 만든다. 확신은 확률과 무관하게 자란다.


두 번째 착시: 곰과 황소가 같은 무덤에 눕는다


나심 탈렙이 《무작위에 속은 사람들》에서 지적한 결과 편향은 잔인할 만큼 정확하다. 우리는 성공을 실력으로 과대해석하고, 실패를 운으로 축소한다. 버블 논쟁에서 이 편향은 두 겹으로 작동한다.


첫째, 우리는 맞춘 사람만 기억한다. 마이클 버리가 지금 권위를 갖는 이유는 2008년을 맞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에도, 2011년에도, 2015년에도 "이건 버블"이라고 외쳤다가 시장이 계속 오르는 바람에 조용히 사라진 수천 명의 비관론자는 우리 시야에 없다. 생존자 편향의 정확한 거울상, 말하자면 소멸자 편향이다.


반대로 강세론자는 성공한 기술혁명만 본다. 인터넷은 살아남았으니 인용되고, 같은 시기 수백 개의 닷컴은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다. 곰은 맞은 예언자만 세고, 황소는 이긴 기술만 센다. 둘 다 살아남은 표본만 들여다보며 자기 이야기를 강화한다.


둘째, 어느 쪽이 사후에 옳았든 그것은 그의 통찰을 증명하지 않는다. 2006년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이 자기 안목을 확신했지만 2008년이 그것을 타이밍의 운으로 되돌려놓았듯, 이번에 버블 붕괴를 외친 사람이 옳더라도 그것이 그의 모델이 옳았음을 뜻하진 않는다. 멈춘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 결과로 과정을 역산하는 순간, 우리는 다음 판에서 반드시 속는다.


세 번째 착시: CAPE라는 너무 깔끔한 게임


루딕 오류. 탈렙의 표현으로, 지저분한 현실을 규칙이 분명한 게임으로 오해하는 착각이다. 카지노의 룰렛은 확률이 계산되지만, 카지노를 망하게 하는 건 룰렛이 아니라 탈세하는 직원과 납치당하는 사주다. 규칙 안의 위험만 계산하는 순간, 규칙 밖의 진짜 위험을 놓친다.


"CAPE가 35를 넘으면 이후 10년 실질수익률은 0이나 마이너스였다"는 문장은 정확하고, 그래서 위험하다. 이건 과거 표본이 적은 극단 구간에서 뽑아낸 규칙이고, CAPE는 회계 기준 변화·금리 레짐·무형자산 비중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언제를 말해주지 않는다.


"10년 안에 낮은 수익률"과 "다음 달 폭락"은 완전히 다른 명제다. 케인스의 오래된 경고대로, 시장은 당신이 버틸 수 있는 것보다 오래 비이성적일 수 있다. 실제로 CAPE는 1997년에 이미 위험 수위였지만, 지수는 그 뒤로도 3년을 더 올랐다.


깔끔한 지표 하나로 시장이라는 복잡계를 압축하려는 충동, 그것이 루딕 오류의 핵심이다. 지표는 게임의 규칙처럼 보이지만, 시장은 규칙이 정해진 게임이 아니다.


네 번째: 1차 질문을 버리고 2차로 내려가기


여기까지가 "버블이냐 아니냐"라는 1차 질문이 왜 함정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쓸모 있는 사고는 한 층 아래에서 시작된다.


쉽게 말해, 1차적 사고가 "이 도미노가 넘어질까?"라고 묻는다면, 2차적 사고는 "넘어지면 그 뒤 도미노는 어디까지 이어지나?"를 묻는다. 1차적 사고는 "AI 주식은 비싼가?"에서 멈추지만, 2차적 사고는 "비싸서 흔들린다면, 그 다음엔 무엇이 딸려 넘어지는가?"로 내려간다.


지금 미국 시장에서 다섯 개 기업이 S&P500의 30%를, 상위 10개가 40%를 차지한다. 앞서 코벨로가 "이익이 기대에 조금만 못 미쳐도 크게 무너질 수 있다"고 한 게 이 대목이다. 이 쏠림은 단순히 '비싸다'는 문제가 아니다. 인덱스 펀드는 지수 비중대로 기계적으로 사기 때문에, 매달 자동으로 들어가는 연금과 퇴직 자금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소수의 AI 종목에 몰린다. 은퇴자의 안정자산이 파이프라인을 타고 엔비디아의 베팅으로 흘러드는 셈이다.


그러면 진짜 질문이 달라진다. "AI가 버블인가"가 아니라, "한 종목이 흔들릴 때 패시브 자금이 강제로 동반 매도되며 증폭시키는 연쇄가 어디까지 번지는가"가 된다. 6월 23일 코스피가 왜 하필 서킷브레이커까지 갔는지도 여기서 읽힌다. 두 종목이 시총의 절반이면, 그건 분산된 시장이 아니라 두 개의 레버리지된 베팅이다.


2차적 사고는 방향을 맞히려 하지 않는다. 파편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본다. GLP-1 한 알이 위스키 재고와 항공기 연료 효율까지 흔들 수 있다면, 엔비디아 실적 하나가 은퇴 계좌의 변동성으로 되돌아오는 경로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확률은 주어지고, 페이오프는 설계된다


그래서 도착하는 자리는 이렇다. 우리는 이 게임에서 어떤 카드를 받을지 정할 수 없다. AI가 인터넷급 혁명일지, 1999년의 반복일지, 그 확률은 시장이 우리에게 나눠준 패다. 통제 밖이다. 여기에 확신을 거는 사람은, 곰이든 황소든,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자아를 건 것이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확률이 아니라 페이오프, 즉 손익 구조다. 폭락이 언제 올지는 못 맞혀도, 한 종목에 얼마를 걸지, 어떤 조건에서 손을 털지, 되돌릴 수 있는 결정과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어떻게 나눌지는 전적으로 나의 설계다. 베조스의 표현을 빌리면, 되돌릴 수 있는 문(two-way door)은 빠르게 실험하고, 되돌릴 수 없는 문은 신중하게 연다. 전 재산을 한 서사에 거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문이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S&P500이 2026년 말 8,250까지 12% 더 오른 뒤, 2027년 말 6,500으로 21% 무너진다고 전망했다. 이 예측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그 숫자를 믿느냐가 아니다. 그 전망이 맞든 틀리든 살아남도록 포지션을 설계했는가다. 좋은 카드 플레이어는 다음 패를 예언하지 않는다. 어떤 패가 오든 파산하지 않을 베팅 크기를 고를 뿐이다.


버블이라는 단어는 사후에만 정확하다. 터진 뒤에야 우리는 그것이 버블이었다고 확신하고, 터지지 않으면 영원히 "새로운 시대"로 불린다. 그 라벨을 미리 붙이려는 다툼은 그럴싸한 이야기들의 경연일 뿐이다. 정작 지금 우리 손에 쥐어진 통제 가능한 변수는 이야기가 아니라 페이오프다. 이야기를 고르는 대신, 구조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폭락장을 읽는 유일하게 실용적인 방법이다.


참고한 이전 글

확률 vs 그럴사한 이야기 에 관한 글

운을 다루는 기술 에 관한 글

루딕 오류와 스타트업

GLP-1 및 2차적 사고


참고한 사실 (2026년 6~7월)


코스피 6월 23일 910.71p(9.99%) 하락, 8203.84 마감, 지수 하락 폭 역대 최대, 서킷브레이커 발동. 삼성전자·SK하이닉스 –12%(2008년 이후 최대), 두 종목이 코스피 시총 절반 가까이 — MBC뉴스, 파이낸셜뉴스


실러 CAPE 2026년 5월 약 41.6, 140여 년 만에 2번째로 높은 값(1999년 12월 44.2 다음). CAPE 40 초과는 1999.1–2000.9 구간에만 존재. CAPE 35 초과 시 이후 10년 실질수익률 0~마이너스 경향 — Fortune, NPR


마이클 버리 "1999–2000 버블의 마지막 몇 달 같다", "하루 종일 AI 얘기뿐"; 시장 집중도(2025년 말 5개 기업이 S&P500의 30%, 하이퍼스케일러가 지수의 1/3 이상) — Fortune, NPR


강세론 반박: 닷컴 당시 영업현금흐름 대비 투자 140% vs 현재 60% 수준. 캐피털 이코노믹스: S&P500 2026년 말 8,250(+12%) 후 2027년 말 6,500(–21%) 전망 — Fortune, KB자산운용


강세론(월가): 골드만삭스 S&P500 연말 목표 7,600→8,000 상향, 2026년 EPS +24%, AI 투자가 이익 성장의 절반. 모건스탠리 목표 8,000, "강세장 4년 차지만 여력 남음", 2028년까지 AI 인프라 약 3조 달러(80%+ 미집행) — TheStreet, Morgan Stanley


약세론(내부 회의론): 골드만삭스 리서치 총괄 짐 코벨로 — AI 투자 대비 수익 검증 시한(18개월~2년)이 지났으나 수익 미실현, 상위 10개 종목이 지수의 약 40% 차지해 오차 허용폭이 작음 — Fortune


국내 증권가: "약세 전환 아닌 일시적 조정, 매수 기회" 다수. KB증권 삼성전자 목표 17만 원, 노무라·NH투자증권 SK하이닉스 88만 원 상향. HBM 수요 지속·범용 D램 가격 상승 근거 — 카지노 게임한경, 뉴스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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