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133/365)
밭갈이와 파종 — 해결바카라의 발견과 검증
시리즈 개요: 밭갈이와 파종
1장. 해결바카라에도 씨앗이 여러 개 필요하다 (이 글)
2장: 모순을 피하지 말고 풀어라
3장: 만들기 전에 심문하라
4장: 삽으로 팔 것인가, 포크레인을 빌릴 것인가
5장: 가장 싸게 틀려라
6장: 수확은 해석이다
문제를 잘 정의한 PM이 있습니다.
그는 현상과 원인을 분리했고, 5 Why로 뿌리까지 파내려갔으며, JTBD로 다시 사용자 곁에 올라왔습니다. 문제 정의문이라는 이야기로 팀을 설득했고, MECE하게 쪼개서 다룰 수 있는 크기로 만들었습니다.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문제가 뭔지는 알겠어요."
그리고 그 PM이 말합니다.
"그럼 이거 하면 되겠네요."
이 순간, 두 번째 다이아몬드의 절반이 사라집니다.
밭을 살피고, 흙의 산도를 재고, 물 빠짐을 확인한 농부가 — 씨앗은 고르지 않고 콩 한 봉지만 들고 밭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 콩이 맞는지 모릅니다. 팥이 나을 수도 있고, 수수가 나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한 해 쉬면서 녹비 작물을 심는 게 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콩을 골랐냐고요?
"제일 먼저 떠올랐으니까요."
1991년, 텍사스 A&M 대학교의 Jansson과 Smith는 기계공학과 학생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두 그룹에게 같은 설계 과제를 줬는데, 한 그룹에게만 예시 솔루션을 보여줬습니다. 결함까지 친절하게 지적하면서요. "이 설계에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결과는 직관에 반했습니다.
예시를 본 그룹은 그 예시의 특징을 훨씬 더 많이 반복했습니다. 결함이 있다고 분명히 알려줬는데도요. 예시를 보지 않은 그룹이 오히려 더 다양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경력이 방어막이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수년 경험의 전문가도 초보자와 똑같이 고착됐습니다.
이것이 인지적 고착(Design Fixation)입니다. 한번 해결바카라의 방향이 머릿속에 자리 잡으면, 우리 뇌는 그 주변만 맴돕니다. 변형하고, 개선하고, 다듬지만 —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은 보지 못합니다.
PM의 회의실에서는 이 현상이 더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리더가 먼저 해결바카라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 알림 기능 넣으면 되지 않을까?"
이 한 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팀은 알림 기능의 변형만 논의합니다. 이메일 알림, 푸시 알림, 앱 내 알림, 문자 알림. 전부 '알림'입니다. "알림 말고 아예 사용자가 확인할 필요가 없게 만들면?"이라는 방향은 이미 테이블에서 사라졌습니다.
씨앗 한 봉지만 들고 밭에 서면, 그 씨앗에 맞는 이유만 보이기 시작합니다.
Alex Osborn은 1953년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디어를 많이 낼수록 좋은 아이디어를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거의 공리(axiomatic)다."
그리고 후속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브레인스토밍 세션의 후반부에 더 나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뻔한 아이디어를 먼저 소진해야, 뻔하지 않은 아이디어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농부에게도 익숙한 경험입니다.
처음 밭에 서면 누구나 벼를 떠올립니다. 익숙하고, 수요가 많고, 재배법을 아니까. 하지만 그 밭이 실은 배수가 안 되는 점토질이라면? 벼보다 연근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근이라는 선택지는, 벼와 보리와 콩이라는 뻔한 선택지를 먼저 꺼내놓은 다음에야 비로소 떠오릅니다.
단작(monoculture)의 위험을 생각해보세요. 1845년 아일랜드 대기근.
감자만 심다가 역병이 돌자 나라 전체가 기아에 빠졌습니다. 반면 혼작(polyculture)을 하는 밭은 한 품종이 병에 걸려도 다른 품종이 살아남습니다.
해결바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해결바카라에 올인하면, 그 해결바카라이 빗나갔을 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 개를 탐색해뒀다면, 방향을 틀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 해결바카라을 떠올리세요"라고 말하는 건 쉽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떠올리느냐입니다.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자는 브레인스토밍은 실제로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Diehl과 Stroebe의 1987년 연구에 따르면, 개인이 따로 생각한 뒤 모여서 평가하는 방식(Nominal Group Technique)이 그룹 브레인스토밍보다 양과 질 모두 우수했습니다.
그래서 구조화된 도구가 필요합니다. 여기 네 가지를 소개합니다.
도구 1: How Might We (HMW)
HMW는 문제 정의에서 해결바카라 발산으로 넘어가는 다리입니다.
"How"는 방법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Might"는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열린 태도입니다.
"We"는 함께 풀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의 문제 정의문에서 여러 HMW 질문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해결바카라의 방향이 넓어집니다.
예를 들어, "신규 사용자의 온보딩 이탈률이 높다"는 문제에서:
HMW 사용자가 첫 3분 안에 핵심 가치를 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
HMW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쓸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HMW 온보딩을 아예 없앨 수 있을까?
HMW 친구가 대신 알려주게 만들 수 있을까?
같은 문제에서 네 개의 전혀 다른 방향이 열립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너무 넓지도, 너무 좁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HMW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는 너무 넓고, "HMW 튜토리얼 3단계를 2단계로 줄일 수 있을까?"는 너무 좁습니다.
도구 2: Crazy 8s
Google Ventures Design Sprint에서 나온 기법입니다.
종이를 세 번 접어 8칸을 만들고,
5분 안에 8개의 아이디어를 스케치합니다.
칸당 약 40초.
왜 효과적인가? 40초에 완벽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적 고착이 깨집니다. "일단 그려본다"는 태도가 강제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 작업이기 때문에, 시니어의 한 마디가 주니어의 생각을 잡아먹는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직급이 동등하게 8칸을 채웁니다.
PM이 팀과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발산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실제로 이 방법을 자주 씁니다. 10분이면 팀에서 수십 개의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대부분은 쓸모없지만, 그 중 하나가 모두를 멈추게 만듭니다.
도구 3: 반대로 생각하기 (Reverse Brainstorming)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더 악화시킬 수 있을까?"
해결하려고 하면 기존 프레임 안에서만 움직이지만, 악화시키려고 하면 프레임 자체가 보입니다.
온라인 쇼핑몰 이탈률을 높이려면? 홈페이지를 광고로 도배하고, 로딩을 느리게 하고, 검색 바를 숨기고, 카테고리를 비직관적으로 만들면 됩니다. 이 답을 뒤집으면? 깔끔한 홈, 빠른 로딩, 눈에 띄는 검색, 직관적 카테고리. 뻔해 보이지만, 정공법으로 접근했을 때는 오히려 떠올리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도구 4: SCAMPER
기존 해결바카라에 갇혔을 때의 탈출구입니다.
Bob Eberle가 1971년에 정리한 7가지 질문:
S(Substitute): 무엇을 대체할 수 있는가?
C(Combine): 두 가지를 합칠 수 있는가?
A(Adapt): 다른 산업에서 가져올 수 있는가?
M(Modify): 크기나 형태를 바꾸면?
P(Put to another use):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가?
E(Eliminate): 아예 없애면?
R(Reverse): 순서를 뒤집으면?
PM에게 특히 강력한 건 E와 R입니다. "이 기능이 정말 필요한가?"와 "사용자가 먼저 결과를 보고 나중에 설정하면?" 같은 질문은, 있는 것을 개선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발산이 끝나면 수렴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흔한 실수는 민주주의입니다.
"다 같이 투표하자." Dot Voting. 스티커를 붙이자. 가장 많이 투표받은 아이디어가 이긴다.
문제는, 투표는 '인기 투표'이지 '품질 투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아이디어, 발표를 가장 잘한 사람의 아이디어, 시니어가 은근히 지지한 아이디어가 이깁니다.
수렴에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Teresa Torres의 Opportunity Solution Tree(OST)는 이를 구조화합니다. 하나의 Outcome(우리가 달성하려는 지표)에서 출발해, Opportunity(해결하면 Outcome에 기여하는 미충족 니즈)를 나열하고, 각 Opportunity마다 최소 3개의 Solution을 두라고 합니다. 발산을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수렴할 때의 기준은 이런 질문들입니다:
이 해결바카라은 문제 정의문에 직접 응답하는가?
가장 위험한 가정은 무엇이고, 검증 가능한가?
가장 작은 단위로 시작할 수 있는가?
실패했을 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투표가 아니라 기준으로 좁혀야, "왜 이걸 선택했는가"에 대한 답이 남습니다.
지금 팀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 하나를 골라보세요.
혼자서 먼저 10분. 그 문제에 대한 해결바카라을 최소 5개 써봅니다.
질보다 양입니다. 말도 안 되는 것도 좋습니다.
팀에게도 같은 과제를 줍니다. 단, 리더(당신)의 아이디어를 먼저 공유하지 마세요.
각자 써온 뒤에 모입니다.
모인 아이디어를 벽에 붙이고, 투표 대신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문제에 직접 응답하는가? 가장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실패해도 배울 수 있는 것은?"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그럼 이거 하자"가 "그럼 뭘 할 수 있을까?"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바꿉니다.
숙련된 농부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씨앗 카탈로그를 펼칩니다. 올해의 기후, 토양 상태, 시장 수요, 그리고 지난 시즌의 교훈을 떠올리며, 여러 품종을 비교합니다.
그는 하나를 고르기 전에 여러 개를 봅니다.
왜냐하면, 고르기 전에 보지 않은 씨앗은 고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The best way to have a good idea is to have a lot of ideas." — Linus Pauling
다음 장에서는 해결바카라의 방향이 좁혀졌을 때 만나게 되는 또 다른 벽, 모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빠르게 vs. 제대로", "사용자를 늘리기 vs. 기존 경험을 지키기".
이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구조적으로 모순을 풀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도넛을 사는 농부의 밭갈이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