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006/365)
예전에 쓴 슬픔에 관한 소고 를 읽고
2024년 12월의 기억, 그리고 1년 후 2025년의 끝자락에서 지난겨울을 돌아본다. 2024년 12월 3일의 그 밤, 스마트폰 화면 위로 '비상계엄'이라는 비현실적인 단어가 떠올랐을 때를 기억한다.
교과서 속 흑백사진이나 80년 광주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던 단어가, 내가 숨 쉬는 서울 한복판의 실재(實在)가 되어 들이닥쳤던 밤. 국회 담장을 넘는 시민들의 입김과 총구 앞에 맨몸으로 선 사람들의 눈빛은, 역사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꿈틀거리는 현재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밤,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곤 떨리는 손으로 뉴스 화면을 끊임없이 '새로고침' 하는 것뿐이었다. 새벽녘 상황이 해제되고 안도감이 찾아왔지만, 그 뒤엔 어김없이 묵직한 부채감이 남았다. 2016년 촛불을 들었던 뜨거움은 어디로 가고, 나는 안전한 방 안에서 걱정만 하는 관찰자가 되었는가.
직선으로 달릴 수 없는 생활인의 무게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 파도 속에서도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하는 생활인이다. 2014년의 봄, 배가 기울어가던 그 시각에도 우리는 회사 식당에서 밥을 넘겼고, 2024년의 겨울, 민주주의가 위협받던 밤을 지새우고도 다음 날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길에 올랐다.
어느새부턴가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보다 전세 대출 금리와 카드값을 걱정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누군가는 이를 변절이라 부를지 모르고, 나 스스로도 비겁함이라 자바카라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이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삶의 무게라는 것을. 나에게는 혁명의 선봉에 서는 것만큼이나, 내 가족의 오늘을 건사하고 월급 통장을 지켜내는 '내전(內戰)'이 치열함을 부정할 수 없다.
우회(迂廻),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 직선으로 내달리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다. 역사에는 가장 앞에서 바람을 맞는 '창'과 같은 이들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 창이 부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받쳐주는 '자루'가 필요하고, 그들이 돌아와 쉴 수 있는 따뜻한 '대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밥벌이에 천착하며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는 시간은, 결코 목적지를 잊어서가 아니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 잠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것은 도망이 아니라, 비가 그친 뒤 더 멀리 걷기 위한 생존의 지혜다. 산을 넘을 힘이 부족할 때 산을 휘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더 오래 걷기 위한 '우회(迂廻)'다.
내가 선택한 우회로(路) 위에서도 나는 투쟁한다. 직업윤리를 지키며, 가짜 뉴스에 흔들리지 않고, 내 아이에게 올바른 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것. 직선으로 달리지 못해 조금 늦을지라도, 나는 이 길 위에서 민주주의의 물적 토대를 다지고 있다.
우리는 결국 만난다 그러니 지금 좀 돌아간다고 해서 자바카라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마음의 방향키를 놓지 않는 것이다. 부당함에 분노할 수 있는 감각을 무디게 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 앞에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2024년의 그 밤, 거리로 뛰쳐나갔던 이들이 직선으로 달리는 주자라면, 2025년의 우리는 굽이진 길을 짐을 지고 걷는 보급 부대다. 속도는 다를지언정 방향은 같다. 어떤 이는 직선으로 뚫고 나가고, 어떤 이는 곡선으로 돌아가지만, 멈추지 않고 걷는다면 우리는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목적지에서 반드시 만날 것이다.
우회하는 자여, 고개를 들라.
우리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몫을 다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