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279/365)
사이먼 시넥의 골든서클을 처음 접했을 때는 꽤 강렬한 울림이 있었다. 사람은 이유에 움직인다는 명제, 조직은 존재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 ‘왜’를 먼저 말하라는 조언. 모두 맞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딘가 불편한 감각이 쌓였다. 많은 조직이 ‘우리의 Why’를 선언하지만, 그것이 존재 이유가 아니라 차별화 포인트처럼 쓰인다는 느낌. 비전과 미션이 나침반이 아니라 훈장이 되어가는 장면. 쉽게 말해, 꺼드럭대기 위한 도구가 되어가는 모습을 자주 봤다.
자랑하기 위한 비전과 미션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정받고 싶어 하고, 조직은 시장에서 돋보이고 싶어 한다. 그 자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자랑이 아니라 비교우위 획득이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우리가 저들보다 더 의미 있다”는 서사, “저 회사보다 더 진정성 있다”는 포지셔닝.
그 순간 비전은 전략이 아니라 순위표가 된다. 비교우위는 전략에서 필요할 수 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차별화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걸 존재 이유의 자리에 놓으면 공허해진다. 어려운 순간,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칭찬받지 못할 때 그 비전은 버려지기 쉽다.
그래서 “멋없다”는 감각은 나쁜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비전이 아니라 포지셔닝이고, 미션이 아니라 순위표라는 걸 감지한 것이다.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이 감각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직원들은 금세 알아차린다. 리더가 말하는 Why가 진심인지, 아니면 채용과 투자와 홍보를 위한 포장인지. 포장은 오래가지 않는다. 오히려 냉소를 낳는다.
그렇다면 진짜 뿌리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알고 있는 중요한 진실 중, 다른 사람들이 거의 동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틸은 이걸 ‘비밀’이라고 부른다. 위대한 기업은 비밀 위에 세워진다. 남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믿는 무언가. 아직 세상이 합의하지 않은 진실. 그것이 사업의 씨앗이 되고, 비전의 뿌리가 된다.
이 질문이 시넥의 Why보다 덜 멋없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남들의 동의와 비교우위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넥의 Why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목적과 신념과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면, 틸의 비밀은 “무엇이 참인가”라는 세계에 대한 비합의적 진실, 가설, 사업의 씨앗에 초점을 맞춘다.
비전은 그 진실이 실현된 미래이고, 미션은 그 진실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보면 이렇게 된다. 비밀이 먼저다. 남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내가 믿는 진실. 그것이 미션을 낳고, 비전을 만들고, 왜 우리가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서사가 된다.
조직에 적용해보자. 많은 기업이 비전과 미션을 먼저 정하려고 한다. 워크숍을 열고, 좋은 문구를 찾고, 예쁜 포스터를 만든다. 하지만 그 전에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조직이 알고 있는, 업계가 외면하거나 간과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고객이 말하지 않지만 실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술이나 시장에 대해 우리가 남들과 다르게 믿는 것은 무엇인가. 그 믿음이 틀렸을 때 어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한 비전은 장식이다.
비밀이 발견되면 미션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우리는 이 진실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문장이 된다. 비전은 그 진실이 받아들여진 미래의 모습이다. Why는 그 모든 것의 이유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Why는 비교 바깥에 있다. 남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당장 성과가 나지 않아도, 칭찬받지 못해도 조직을 움직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위표가 아니라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물론 틸의 비밀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비합의적 진실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꺼드럭이 될 수 있다. 진짜 비밀은 “우리가 특별하다”가 아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세상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함의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정체성으로 굳으면 또 하나의 배지가 된다. 비밀은 겸손하게 검증되어야 하고, 틀렸다는 게 드러나면 기꺼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의 리더라면 다음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길 권한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도 우리가 이 비전을 따를까. 비교우위가 전혀 안 생겨도 계속할까. 이게 어려운 선택에서 실제 판단 기준이 되나. 이걸 가진 뒤에 우리가 더 협력적이 되나, 더 우월해지나. 실패하고 망신당해도 이 Why는 남나.
“아니오”가 많으면 그건 Why가 아니라 브랜딩 소품일 가능성이 크다. “예”가 많으면 비교우위는 전략으로 쓰되, 존재 이유는 비교 바깥에 둘 수 있다.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비전과 미션을 남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가지려는 순간, 이미 비전이 아니라 순위표가 된 것이다. 멋있는 Why는 “나는 저들보다 더 의미 있다”가 아니라, “이 일은 내가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에 가깝다. 비교우위는 전략으로 두자. 존재 이유는 비교 바깥에 두자.
진짜는 비교 바깥에 있고, 실행으로만 증명된다. 조직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면, 훈장이 아니라 나침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 나침반은 남들이 동의하지 않는 진실, 즉 비밀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