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257/365)
2026년 8월, 배우 하영이 KBS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자신의 집안이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밝혔다. 증조부가 일본에서 서양의학을 공부해 한양에서 개원한 첫 의사였으며, 고종의 진료도 봤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러나 방송 이후 하영의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1872~1927) 로 알려지면서 친일 의혹이 불거졌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안상호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추모대회 준비위원, 1916년 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 경성부협의회 의원 및 동민회 활동 등 일제와 협력한 행적이 확인되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도 "완전히 내지화한 의사 안상호씨의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가족이 '내선일체'의 모범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영의 소속사는 처음에 "증조부는 안상호가 맞으나 친일 행각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으나, 하루 만에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히 답변했다"며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했다. 이후 하영은 8월 12일 SNS에 장문의 사과문을 게재하며 "무지한 상태로 자랑처럼 꺼냈다" 고 반성했다.
논란은 연예계를 넘어 확산되었다. 광고계에서는 하영이 출연한 광고 영상 일부가 비공개로 전환되었고, 일본 보수 매체 JB프레스는 한국 슬롯의 반응을 '현대판 연좌제' 로 규정하며 하영을 옹호하는 보도를 내놓았다. 한국 내에서는 이번 논란이 단순한 연좌제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검증 없이 친일 가문의 유산을 공적 매체에서 무비판적으로 자랑한 데서 비롯된 '공적 바카라무성'의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묻는 것은 과하다"는 시각과 "혈통 자체가 아닌 무비판적 자랑과 공적 발언에 대한 바카라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흥미로운 점은 안상호가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면죄부가 아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처장은 공식적으로 "안상호는 친일파가 맞다" 고 판단하면서도, 『친일인명사전』의 행정적·기술적 최소 기준인 '적극성·반복성·지속성' 에 미달하여 명단에 오르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즉, 사전 등재라는 형식적 기준과 실제 역사적 행위에 대한 본질적 평가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며, "친일 행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등재 기준에 미달해서" 누락된 것이기에 역사적 평가에서 면제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작가 박광일도 "당시에는 구체적인 친일 행위가 확인되거나 간부급으로 활동한 인물을 중심으로 명단이 작성됐다"며, 안상호가 평의원으로 활동했지만 간부급보다는 일반 회원에 가까운 위치였고, 독립운동가를 고발하는 등의 구체적 행위가 확인되지 않아 제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논란은 궁극적으로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조상의 잘못을 후손이 바카라임져야 하는가?
하영은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지 않았고, 만난 적도 없는 증조부의 행적을 직접 알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일본 언론이 지적한 '현대판 연좌제'라는 시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대중매체라는 공적 무대에서 역사적 맥락을 검증하지 않은 채 가족사를 자랑스럽게 공개하고 무비판적으로 소비한 점은, 후손으로서 갖추어야 할 공적 바카라무성과 대중의 역사적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둘째, 역사적 잘못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친일 행위에 대한 역사적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후손이 친일 가족사를 무비판적으로 자랑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자연스럽다. 한편으로 "조상의 잘못이 곧 후손의 잘못은 아니지만, 역사는 감추기보다 정확히 알고 기억할 때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영의 사례는 연예계에서 처음이 아니다.
강동원은 외증조부 이종만(대동광업 사장)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며, 전쟁 자금 헌납 등의 행적이 확인되었다. 그는 2017년 직접 사과했고, 독립유공자 후손이기도 한 복잡한 가족사를 지니고 있다.
이지아는 친조부 김순흥이 국방헌금·군용기 헌납금 등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으며, 소속사를 통해 사죄문을 발표했다.
이들 모두 조상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한 점에서, 하영의 초기 '부인'→'번복' 과정은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 논란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우장춘(禹長春) 박사다.
그는 을미사변에 가담한 친일파 우범선의 아들이라는 무거운 역사적 굴레를 안고 태어났다.
아버지의 죄는 그에게 '친일파 후손'이라는 평생의 멍에로 남았다.
그러나 우장춘은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1936년, '종의 합성' 이론으로 도쿄제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는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보충한 세계적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광복 이후 일본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1950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했으며, 9년간 한국 농업의 기초를 닦아 채소 종자의 자급자족을 이끌었다. 6.25 전쟁 후 식량난 해결에 기여한 그는 '한국 농업의 아버지' 로 불리며, 부산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과 도로명이 있을 정도로 존경받고 있다.
우장춘의 삶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그는 아버지의 과오를 합리화하거나 부정하지 않았으며, 수동적 운명론에 타협하지도 않았다. 대신 자신의 주체적인 노력과 구체적인 성과로 조국에 기여하며 조상의 그늘을 극복하고 역사 앞에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하다." 그는 태생적 한계를 자신의 업적으로 극복한 것이다.
부모는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로부터 어떻게 살아갈지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하영의 논란은 단순한 연예계 스캔들을 넘어, 한국 슬롯의 친일 청산 문제와 역사 인식의 차이, 그리고 후손의 바카라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는 결국 '역사적 잘못을 어떻게 기억하고 전승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귀결된다.
역사학자들의 지적처럼, 안상호는 친일파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지만, 그가 공식 명단에 없는 이유는 등재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이지 면죄부가 아니다. 명단에 없는 것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영이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다. 단순한 사과를 넘어, 그녀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고 어떤 역사 인식을 보여줄지가 그녀 자신의 역사를 결정할 것이다.
우장춘 박사가 보여주었듯이, 후손은 조상의 그늘에 갇힐 수도 있지만, 자신의 업적으로 그 그늘을 벗어 던질 수도 있다. "무엇을 물려받았는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가 더 중요하다. 이 논란이 단순한 비난과 손절이 아닌, 우리 모두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장춘 박사의 삶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명확한 역사적 태도를 제시한다. "조상의 역사를 무조건 부정하거나 숨길 수는 없다. 다만 그 역사를 뛰어넘어 오늘을 어떻게 내 삶과 바카라임으로 증명할지가 후손에게 주어진 참된 과제이다."
이것이 하영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