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209/365)
결정과 돈: 회사가 "앤트로픽이 이걸 만든다면?" 질문에서 살아남는 법 via Geeknew 를 보고
최근 Nikunj Kothari의 'Decisions and Dollars'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AI 모델이 강력해질수록 순수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떨어지고, 결국 살아남는 회사는 판단을 위한 데이터를 쌓고 돈이 흐르는 길목을 장악한 곳뿐이라는 요지였습니다. 저자는 Cursor, Harvey, Shopify를 근거로 들었고, 그 매끄러운 논리에 처음엔 저 역시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글을 다시 읽어보며 몇 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원문의 통찰이 훌륭한 만큼, 지금 쏟아지는 수많은 버티컬 AI 회사들이 앞으로 직면하게 될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원문이 기반을 두고 있는 논리는 현재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지만, 다음 국면으로 넘어갈 때 변화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교정 데이터가 앞으로도 계속 희소성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Cursor나 Harvey가 가진 경쟁력의 핵심은 사람의 교정 데이터에서 옵니다. 하지만 모델이 자가 학습과 합성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를 개선하여 사람의 개입 자체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이러한 교정 데이터의 가치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둘째로, 개별 소프트웨어가 데이터를 방어하는 정적인 방식이 계속 통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이 하나의 상위 레이어로 통합되면, 사용자는 개별 앱에 직접 접근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가두려고 해도, 실질적인 판단은 이미 그 윗단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로, AI 연구소들이 핀테크나 규제 영역을 피할 것이라는 전제도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Stripe의 에이전틱 커머스 프로토콜이나 OpenAI가 자사 에이전트 거래에서 수수료 구조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자본의 흐름에 무관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문에서 강력한 사례로 든 Cursor, Harvey, Shopify를 다시 살펴보면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용자가 직접 결정을 내리고, 수정하고, 되돌리는 과정이 일어나는 '표면(Surface)'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코드를 작성하는 에디터, 법률 사건을 관리하는 화면, 매장을 운영하는 대시보드처럼 의미 있는 판단은 오직 이 고유한 표면 위에서만 축적됩니다.
반면, 현재 등장하는 많은 버티컬 AI 회사들은 이러한 고유의 표면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거대 모델의 API를 활용해 특정 업종에 맞는 프롬프트와 얇은 워크플로우를 덧붙여 제공하는 형태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표면 자체가 대체되기 쉽기 때문에, 원문의 논리처럼 깊이 있는 판단 데이터를 쌓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다른 서비스로 이동하면 교정하는 습관도 쉽게 넘어가게 되므로, 경쟁력은 단순히 버티컬을 지향한다는 것보다는 대체 불가능한 표면을 소유했는지 여부에서 판가름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왜 중요한지는 과거 SaaS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제와 같이 단단한 표면을 가진 버티컬 SaaS는 살아남았지만, 워크플로우만 가볍게 씌웠던 도구들은 결국 거대 플랫폼에 흡수되거나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가오는 AI 시대의 슈퍼앱은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터 자체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하나의 에이전트가 여러 버티컬을 넘나들며 사용자의 모든 결정을 하나의 거대한 표면에서 관찰하고 통합하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되면 개별 버티컬 서비스들이 가진 기능들은 하나로 모이게 되고, 얇은 표면만 가진 서비스는 독자적인 협상력이나 경쟁력을 유지하기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원문이 제시한 조언처럼 판단을 쌓고 돈의 길목에 앉는 것은 훌륭한 방향성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의 질문을 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쌓는 판단이 거대 플랫폼이 쉽게 흡수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단순히 프롬프트를 잘 다듬고 UI를 개선한 소프트웨어 워크플로우는 더 큰 자본과 데이터를 가진 거대 표면이 복제하기 비교적 수월합니다. 반면, 엄격한 규제가 따르는 금융 심사나 법적 바카라임이 결부된 법률 자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의료 진단처럼 물리적 세계의 복잡성과 얽혀 있는 판단은 쉽게 흡수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대체하려면 그에 수반되는 규제와 신뢰 관계까지 통째로 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문의 진단은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다만 그 훌륭한 통찰을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할 때는, 우리가 서 있는 표면이 과연 얼마나 단단한지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과정이 꼭 필요해 보입니다.
앞으로 버티컬 AI를 고민하는 분들의 질문은 조금 더 깊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판단을 제대로 쌓고 있는지, 돈이 흐르는 길목에 닿아 있는지,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지탱하는 표면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도 쉽게 휩쓸리지 않을 만큼 고유하고 단단한지 묻는 과정이 장기적인 생존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