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연관성과 삶의 상품]

작품과 삶의 관계

by이승섭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를 존경하는 것과 작품의 경외에 마음을 갖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왜냐하면 작가는 존경할 수 없으나 그가 쓴 작품이 훌륭한 것과는, 다르다는 견해가 옳은가 그른가는 비평의 안목에 따라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불란서의 도둑 시인 뷔용- 비록 감옥에서만 글을 썼지만, 그의 글과 그의 비행과는 달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연구에 목록으로 분석하는가에

여부에 따라 인생과 작품을 한데 묶어서 비평하는 경우와 따로 분리하는 경우와는 본질에서 다를 수 있지만 작품의 본질을 앞세우는 일은 당연한 의미일 것이다. 주관성만을 고집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객관만의 고집 또한 옳은, 판단은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감상 단계를 지나 가치로 도달하려는 열망을 가질 때 비로소 작품은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타락은 광고의 혼란 그리고 상업적 선전 함몰, 혹은 별난 행동의 에피소드로 유명해지는 경우 -


대부분의 작품은 가치 없는 경우가 많다. 불란서의 v. 유고는 박수부대를 동원하여 시 낭송을 했고 s. 모음은 작품의 주인공과 같은 사랑을 위해 광고를 내고 결혼하겠다는 선전으로 일약 유명 대열에 올랐지만, 작품으로써 명망을 지킬 수 있었지만, 작품 가치는 우선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bestseller"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허명을 많이 보아 왔지만, 그것들이 지금까지 생명을 이어온 경우는 희소하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일생과 작품의 성과가 어긋남이 없다면 이는 교훈적인 일이겠지만 이는 매우 희소한 일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인간의 삶은 백설같이 하얗고 얼음같이 차가운 이성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때로는 비난을 면치 못하리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틀린 비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국을 침범한 나폴레옹을 세계의 양심이라 칭하면서 그의 말발굽에 무릎을 꿇은 괴테의 경우나 나치에 협력한 하이데거의 경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이미 판정이 난 사실이다. 다만 모순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 가의 해답은 숨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사물 보기 <자아로)


1.

시를 쓰는 조건에 일차적인 관문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보다는 마음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범인들의 눈과는 다르다. 사물의 특징을 포착할 수 있을 때, 마음의 눈을 통하여 바라보는 방법 일게다. 왜냐하면 시인이 바라보는 사물은 화석화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습을 포착하는 물활적으로 보일 때, 시적 창조라는 말을 헌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이면을 바라보면 하나의 나무에도 철학이 숨 쉬고 있음을 포착하는 시인의 눈은 결국 마음으로 시를 쓰는 이유와 설명이 되는 것이다.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글일 때, 진정성의 감동을 잉태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2. 색채는 마음에 작용한다. 가령 천자문에서 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뜻으로 주 홍사의 4연 250구의 시 – 색채로 시작했다. 빛이 없으면 우주는 검은색이고, 중국의 正色(정색)은 황화를 닮은 누런색이다. 물론 색채는 민족마다 다른 상징을 갖는바, 우리는 죽음을 백색으로 상징하고 서구는 검은색을 상징한다. 색채는 시인마다 다른 시적 의도를 표현했으니, 이육사나 한용운의 청색은 각기 의미에서는 다른 시적 상징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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