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차 영어 교사가 CHaT 루틴으로 공식 홈페이지를 만든 이야기
“선생님, 그 홈페이지는 어떤 AI로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CHaT 루틴 공식 홈페이지를 열었다고 알린 뒤, 여러 사람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곤 했습니다. 대답하기 어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나를 붙잡고 있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코딩도 모르는데 내가 무슨 홈페이지를 만들겠어. 홈페이지는 개발자들이 만드는 것 아닌가?’
나는 38년 차 영어 교사입니다. 코드는 한 줄도 쓸 줄 모릅니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내 이름으로 된 공식 홈페이지의 주소를 사람들에게 건네고 있습니다.
나는 CHaT 루틴 학습법을 창안하고 교육 현장에 적용해 온 작가이기도 합니다. CHaT는 읽고(Chunk), 질문하고(Havruta), 구조화하고(ThinkWise), 돌아보고(Reflection), 실천하는(Action) 다섯 단계의 배움의 루틴입니다. 바카라과 강의, 수업과 글쓰기를 통해 ‘질문하며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삶으로 옮기는 배움’을 꾸준히 나누어 왔습니다.
하지만 활동이 쌓일수록 아쉬움도 함께 커졌습니다.
얼마 전 세상에 내놓은 《질문하는 인문학》을 비롯해 CHaT 루틴으로 만든 바카라들은 바카라대로, 강의 자료는 자료대로, 블로그와 유튜브는 또 각자의 공간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CHaT 루틴을 접한 사람은 어디서부터 살펴봐야 할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흩어진 배움의 흐름을 한곳에 담아낼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궁금해하는 사람이 길을 잃지 않고 찾아올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공식 홈페이지’라는 답에 다다랐습니다.
문제는, 그 답 앞에서 내가 먼저 움츠러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아주 단순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내가 직접 코드를 작성할 수 없다면,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을 정확하게 설명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AI에게 무작정 “홈페이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홈페이지가 왜 필요한지,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방문자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발견하기를 바라는지부터 이야기했습니다.
“첫 화면에서 CHaT 루틴의 다섯 단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보였으면 좋겠어.”
“바카라을 단순한 판매 목록처럼 보여주기보다, CHaT 루틴이 교실과 삶에서 축적해 온 교육 실천의 결과물로 보여주고 싶어.”
“처음 방문한 사람도 CHaT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고, 바카라과 활동지, 강의 자료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해.”
내가 교육 철학과 방향을 말하면, 대화형 생성형 AI는 그것을 화면 구성과 문장, 코드의 형태로 제안했습니다. 나는 결과를 확인하고, 어색한 부분을 찾고, 다시 수정 방향을 설명했습니다.
한 번의 명령으로 홈페이지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고의 위치를 바꾸고, 브랜드 색이 마지막 화면까지 이어지는지 확인하고, 흐릿하게 들어간 바카라 표지를 선명한 것으로 갈아 끼웠습니다. 어떤 문장은 너무 기술적으로 보여 다시 썼고, 어떤 화면은 내가 전하고 싶은 온기와 맞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습니다. 버튼 하나의 색까지 바꾸며,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수십 번 다시 설명했습니다.
돌아보면 그 반복은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내 생각을 더 정확한 말로 옮기는 훈련이었습니다.
나는 홈페이지를 구성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완벽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홈페이지가 어떤 철학을 담아야 하는지, 방문자에게 어떤 경험을 주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기술을 모른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것을 끝까지 설명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AI를 사용했느냐”고 물으면 나는 세 가지 도구를 이야기합니다. 집을 짓는 과정으로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Claude와 나눈 시간은 설계자와 마주 앉아 도면을 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 설명하면 함께 도면을 그렸고, 다시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나는 코드를 몰랐지만, 어느 방에 볕이 들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GitHub Pages는 완성된 집이 서 있을 땅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도 세워 둘 공간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집을 만날 수 없습니다. 값비싼 서버를 빌리지 않고도 내 집을 세울 땅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비아에서 `chatroutine.kr`이라는 문패를 달았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고 찾아올 수 있는 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집을 완성한 것은 이 세 가지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끝까지 설명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Claude도, GitHub Pages도, 가비아도 아닙니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끝까지 설명하는 사람입니다.
며칠 동안 홈페이지를 수정하고 마침내 공식 주소로 화면을 열어 본 순간, 문득 웃음이 났습니다.
내가 홈페이지를 만든 과정이, 교실에서 학생들과 실천해 온 CHaT 루틴과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을 작은 단위로 나누었습니다.
Chunk
AI와 질문을 주고받으며 생각을 구체화했습니다.
Havruta
흩어진 바카라과 자료, 강의와 채널을 하나의 구조로 정리했습니다.
ThinkWise
완성된 화면을 살펴보며 부족한 점을 찾고 다시 수정했습니다.
Reflection
그리고 마침내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Action
C에서 A까지, 나는 홈페이지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내가 창안하고 실천해 온 CHaT 루틴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CHaT 루틴은 특정 교과에서만 사용하는 활동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막연한 생각을 구체적인 결과로 바꾸고, 질문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사고와 실천의 시스템이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는 CHaT 루틴을 소개하는 공간인 동시에, CHaT 루틴으로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질문하는 인문학》 역시 같은 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바카라 한 권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배움을 하나의 문화로 잇고 싶었습니다. 홈페이지도 그 연장선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AI에게 끌려가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AI가 제안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내 교육 철학과 맞는지, CHaT 브랜드의 방향과 일치하는지, 방문자가 이해하기 쉬운지 계속 질문했습니다.
나는 기술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사용자, 즉 User에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Wielder였습니다. 단순히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기술을 선택해 손에 쥐고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도구가 나를 이끄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도구를 이끄는 자리입니다.
AI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간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AI를 그 여정의 도구로 활용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힘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AI가 더 뛰어난지를 외우는 능력보다,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질문하고 판단하며 수정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생각에 머물지 않고 실제 결과물과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 필요합니다.
AI가 홈페이지 제작의 문턱을 낮춰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AI가 나를 대신해 CHaT 루틴 공식 홈페이지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담을 것인지, 어떤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마음을 건넬 것인지, 방문자가 어떤 순서로 CHaT 루틴을 이해하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습니다.
38년 동안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을 시도하고, 실패한 활동을 고치고, 다시 질문하며 쌓아 온 경험이 없었다면 홈페이지를 채울 내용도 없었을 것입니다.
AI는 경험을 대신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교육 철학을 대신 세워주지도 못합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대신 결정해 주지도 못합니다.
AI는 이미 존재하는 생각과 경험을 더 빠르게 구조화하고, 이전에는 기술적인 이유로 실현하기 어려웠던 일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였습니다.
AI는 홈페이지를 만들었지만, 그 안에 담길 이야기는 38년의 교실이 만들었습니다.
《질문하는 인문학》도 그 이야기의 한 조각입니다. 그러니 홈페이지는 바카라 한 권을 소개하기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지나온 수업과 그 안에서 던져온 질문들을 함께 담아낼 배움의 집이기를 바랐습니다.
결국 홈페이지를 만들며 나를 붙들었던 것은 기술에 관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 배움을 누구와 나누고 싶은가?’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무엇을 발견하기를 바라는가?’
‘내가 오랫동안 실천해 온 교육을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펼칠 것인가?’
그 질문들이 홈페이지의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코딩도 모르는데 무슨 홈페이지야.”
처음 나를 붙잡았던 말은 이제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코딩은 몰랐지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술은 부족했지만, 분명한 교육 철학이 있었습니다.
방법은 알지 못했지만, 질문을 시작할 수는 있었습니다.
새로운 도구들은 실행의 문턱을 계속 낮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서 누구나 같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도구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질문입니다.
기술보다 오래 남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경험입니다.
AI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AI를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사람의 방향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코딩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끝까지 설명하는 힘이라고.
정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는 사람으로,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구현하는 사람으로 나는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코딩을 몰랐던 한 교사의 첫 공식 홈페이지가 누군가에게 “나도 한번 시작해 볼까?”라는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질문하는 인문학》과 앞으로 이어질 CHaT 루틴 시리즈를 통해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질문으로, 질문을 구조로, 구조를 성찰과 행동으로 연결하는 그 여정에 CHaT 루틴이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다시 질문하는 용기인지도 모릅니다.
생각을 열고, 삶을 혁신하다.
글 · 이선(Edu Sunny)
CHaT 루틴 창안자 · 38년 차 영어 교사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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