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삼키다

by선비천사

수묵(水墨)으로 번지는 저녁,

너와 나, 개울가 풀숲을 헤치고 눕는다

입술에 물린 풀잎 하나가

흙비린 지상의 냄새를 겨우 붙들고 있다

등 뒤로 흐르는 물소리,

달력의 해묵은 숫자들을 씻어가고

다가올 계절의 무게마저

저 차가운 물결 아래로 가라앉는 눈꺼풀

그저 감겨올 뿐,

둥지로 돌아가는 새들의 날갯짓이

허공에 팽팽한 균열을 긋고 갈 때,

차마 뱉지 못한 말들이 자갈 틈으로 고요히 가라앉는다

망연히,

저무는 붉은 노을 속으로

자갈 틈에 가라앉은 침묵이

조금씩 우리를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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