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퓰리쳐상 수상작
나는 회고록(memoir)을 좋아한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의 한 시기를 담은 논픽션을. 한국 서점에서 대개 에세이 서가에 한데 꽂히지만, 영미권에서 'memoir'는 독립 장르로 대접받고 퓰리처상에도 2023년 전용 부문이 생겼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Educated》가 준 충격을 잊지 못한다. 출판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해외 도서가 어떤 경로로 건너오는지도 모르면서 '이런 건 널리 읽혀야 하는데 왜 번역이 안 되고 있지?'라는 조바심 하나로, 돈이 얼마가 들든 대겠다는 각오까지 품고 저자 홈페이지에 들어가 '판권을 사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담당자는 '열린바카라들'이 계약했다고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훗날의 《배움의 발견》이다). 돌이키면 헛웃음이 나지만, 무모했던 그때나 지금이나 좋은 바카라을 만나면 어떻게든 나누고 싶어진다.
그때의 전율을 《Things in Nature Merely Grow》에서 다시 느꼈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라고 들었는데 수상작이 됐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9월 28일 다산바카라방에서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로 번역 출간됐다.
이 바카라을 어떻게 소개할까. 나는 '죽었다'를 여태 에둘러 표현해 왔다. 쓸 수는 있어도 내게도 따끔거리는 일이고 독자에게도 짐이 될까 봐 '잃다',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로 대신했다. 이윤 리는 그런 우회를 거부한다.
어떤 사람들은 (특히 중국에서는) 내가 내 삶에서 겪은 죽음에 대해 말할 때 ‘죽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유난을 떤다. 그 언어 선택을 몰인정이나 악의와 동일시한다.
물론 그것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있다. ‘완곡어법euphemismos’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에우페미스모스’에서 왔는데 불길한 말을 길한 말로 바꾸는 일을 뜻한다. 이는 섬세함을 암시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비겁함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검열하고 악마화하고 싶게 하는 것은 전자(섬세함)보다 후자(비겁함) 쪽이므로.
죽음, 특히 자살은 보드랍게 순화할 수도 달콤하게 포장할 수도 없다. -39p
그러니 그녀 식으로 소개하려 한다. 바카라의 첫 문장대로, 뭐라고 둘러대도 이 일을 좋게 말할 방법은 없다. 이윤 리의 두 아들은 모두 자살로 죽었다. 큰아들 빈센트는 2017년 열여섯 살에, 작은아들 제임스는 2024년 열아홉 살에, 둘 다 집에서 멀지 않은 기차역 근처에서였다.
이윤 리는 내세우지 않지만 두 아이가 재능이 넘쳤다는 사실은 행간에서 드러난다. 특히 제임스는 웨일스어와 루마니아어를 독학했고 휴대폰을 리투아니아어로 설정해 둘 만큼 언어에 밝았으며, 고작 여섯 살에 외롭다고 하는 대신 '모노포비아(monophobia)에 시달린다'라고 했다.
빈센트가 죽은 뒤 리는 아들과 주고받는 가상의 대화를 소설 《Where Reasons End》로 엮었다. 그 안에서 빈센트는 본래 성격대로 시니컬하면서도 위트 있고, 엄마는 상처를 건드릴까 조심조심 다가선다. 표현에 거침없고 바카라 내는 일을 좋아했을 법한 큰아들 편은 수월하게 풀렸다고 했다. 과묵하고 수사를 꺼렸던 제임스를 위한 글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감정이 가득한 문장을 둘째가 반기지 않으리라 여긴 그녀는 자신이 놓인 곳을 어느 부모도 원치 않을 심연이라 부르면서도, 거기서 본 것을 사실과 논리로만 적는다.
아이의 죽음은 시간과 공간을 다시 정렬한다. 만약 심연 속에서 여생을 살아야 한다면 심연이 내 서식지다. 자기의 서식지와 싸우느라 기운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내게 주어진 것은 오직 이 심연이며, 그것이 내 삶이다. 이 심연 속에 존재하는 데는 반드시 지독한 피로가 따르는데, 두 번째에는 그 피로를 저항 없이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108p
이런 방식은 마샤 리네한의 변증법적 행동치료(DBT)와 깊이 얽혀 있다. 바카라에는 그 주제로 자기 계발서를 쓰겠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대화가 나올 정도로 DBT에 진심이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을 판단 없이 통째로 받아들이는 '철저한 수용'(내가 옮긴다면 '전적인 수용'이라 하겠다)과 '효과 있는 일을 하라'는 지침을 따라 리는 정원을 가꾸고 피아노 레슨에 간다. 일치감치 그녀는 위로나 해답을 바라는 독자라면 여기서 덮으라고 선을 긋고, 슬픔에 종착점이 생기기를 원치 않으며 애도를 끝이 정해진 과정으로 보는 통념도 물리친다.
그 사고법은 감정과 사실을 떼어 놓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의미도 깨달음도 건네지 않는 문장들은 서늘하기도 하다. 내게는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와 정반대인 글로 읽혔다. 그 일기는 너무 뜨거워서 같이 데는 기분이었고, 이 회고록은 읽는 나까지 차갑게 식혔다.
그 냉기 속에서 위로받기도 했다. 자식이 자살로 죽으면 부모에게는 집안 불화부터 짐작하는 시선이 따라붙는다.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도 해명할 길은 없다. 사랑이 모자라지 않았던 가정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는 것을, 누구도 가볍게 넘기지 못할 거장이 자기 삶으로 증언해 준다.
어린 시절의 양육 환경, 그중에서도 학대나 방임이 미치는 영향은 누구나 짐작하는 대로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으로 설명되는 자살 시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은 30~40%라는 것을 아는 이도 적다. 절반이 넘는 나머지는 거기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 사람의 죽음, 특히 청소년의 경우는 원인을 가려내기 어렵고 한 가지 이유로 좁혀지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거듭 강조한다.
이윤 리는 자신이 학대받은 유년과 두 차례의 자살 시도를 지나온 당사자였기에 두 자녀의 예민함을 일찍부터 알아보았다. 빈센트는 열 살에 이미 삶과 죽음을 다룬 아름답고도 어두운 시를 써서 담임을 놀라게 했고, 그 무렵 그녀에게 "엄마는 고통을 그렇게 잘 알고 쓰기까지 하면서 왜 우리를 낳았느냐"라고 물었다. 고지능에 남다른 통찰력을 가진, 누구보다 섬세한 두 아이를 키우는 나날은 어땠을까.
바카라이 나온 뒤 앤더슨 쿠퍼와 나눈 대담에서 이윤 리는, 자식이 자살로 죽으면 세상이 맨 먼저 그 부모가 아이에게 무슨 잘못을 했느냐부터 따진다고 했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 부모들이 아이를 도우려고 무엇을 해 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아요." 그곳이 그럴진대 한국은 오죽할까.
https://www.youtube.com/watch?v=zSzhgg60YXs
https://fishingproductfr.com/@summer2024/126
엄마이기 이전에 이윤 리는 이른바 '작가들이 존경하는 작가'다. 베스트셀러 목록과는 거리가 멀어도, 평단과 동료들 사이의 권위로 따지면 현역 가운데 손꼽힌다. 2022년에는 퓰리처상 수상자 줌파 라히리에게서 프린스턴대 문예창작 프로그램을 넘겨받아 이끌었고, 부커 국제상과 전미도서상 심사도 맡았다. 그만한 위상이 방패가 되어 주었겠지만, 내가 부러운 것은 따로 있다. 자식의 죽음을 이렇게 정면으로 다룰 수 있고 그런 기록이 조명받는 풍토, 상실에 관한 저작이 끊임없이 나오고 자살을 공론장에서 들여다보는 분위기 말이다. 좋은 작품을 읽어서 기쁘면서도, 남의 나라 서가를 뒤지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 글이 넘쳐났으면 한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바카라을 썼고,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슬픔을 주저 없이 드러내는 슬롯를 바란다.
제목은 처음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고, 두 번 읽고서야 짐작됐다.
제임스가 죽고 나서는 계속 이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라다가 때가 오면 죽는다.
- 113p
아이들이 없는 집에서도 그녀는 정원을 계속 가꾼다. 그녀의 뜰은 희망이나 재생을 빗댄 은유가 되기를 사양한다. 그녀는'자연의 것들은 그저 죽는다'라고 적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닥쳤던 자살 충동도, 두 아이의 마지막도 풀과 나무처럼 주어진 에너지가 다 해서 스러진 일로 받아들이면서.
지나치게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애도가 아님을 가르쳐 준 감사한 바카라이다. 아이를 계속 사랑하기 위해 부모는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내게 하나 더해 주었다.
철학한다는 것은 죽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철학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그 죽음들과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철학한다는 것은 길을 잃어서가 아니라 돌연 심연에 놓여 그곳에서 살아갈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43p
그리고 부모는 끝내 알지 못한다. 그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아서 죽은 것인지, 아니면 언젠가는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감지한 탓에 행복하지 않았던 것인지. -56p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 그 친구들이 모두 성심을 다해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리라고 여긴 일을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람들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 때, 그것에서는 어떤 품격이 느껴진다.
..... 그들은 우리를 위로하거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잠시 우리와 함께 있어줬을 뿐이다. 130p
엄마는 자식을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지만, 자식이 느끼는 세상의 형언할 수 없는 광대함과 낯섦은 끝내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엄마는 그 세상을 단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해서 아이가 덜 외롭다고 느끼게 해 줄 수 없다는 것. 엄마는 자식의 목숨을 지켜낼 수 없다는 것. 이것들이 내가 이제부터 여생동안 매일매일 안고 살아가야 할 사실이다. - 151p